런던 템즈강변 남쪽의 사우스 뱅크(South Bank)에 위치한 내셔널씨어터(The National Theatre)는1976년과 77년 사이에 데니스 라스던(Denys Lasdun)의 설계로 완공된 영국을 대표하는 복합 공연장이다. 극장 운영의 주체인 내셔널씨어터 컴퍼니는1963년 <햄릿>을 처음으로, 극장의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올드 빅 극장(Old Vic Theatre)에 임시로 상주하며 공연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극장으로 옮겨온 후, 1988년 영국 여왕에 의해 극장은 ‘로열내셔널시어터’라고 불렸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내셔널씨어터’ 혹은 줄여서 ‘내셔널’, ’NT’라고 부르고 있다.
역사 깊은 전형적인 웨스트엔드 극장들과는 달리 딱딱한 무채색 콘크리트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내셔널은 극장이 건축된 70년대 당시의 건축 사조였던 브루탈리즘(Brutalism)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다. 그래서 많은 런던 시민들이 가장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건축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래 저래 취향 차는 있겠지만 해진 뒤 조명으로 비춰지는 내셔널의 또 다른 모습은 런던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서 손색이 없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 고전극에서 뮤지컬까지
내셔널씨어터에는 3개의 극장이 있다. 대극장인 올리비에 극장(Olivier Theatre), 중규모 극장인 리틀튼 극장(Lyttelton Theatre) 그리고 소극장인 콧츨로(또는 코테슬로) 극장(Cottesloe Theatre)으로 구성됐으며 각각의 극장이 모두 다른 형태의 무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150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올리비에 극장은 극장의 첫번째 예술감독이면서 유명한 배우이자 연출자였던 로렌스 올리비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고대 그리스 에피다우루스(Epidaurus)의 원형 극장을 모델로 하여 건축된 부채꼴 모양의 반 오픈 스테이지 형태의 극장은 어느 자리에서 보아도 공연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매우 가깝도록 설계되었다.

 올
올리비에극장 내부와 극장 플랜

두 번 째 규모의 리틀튼 극장은 극장 위원회의 초대 회장이었던 올리버 리틀튼의 이름을 땄는데, 전형적인 프로시니엄 형태(일반적인 극장의 모습으로 무대와 관객석이 분리되어있는 형태)의 극장으로 총 89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3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콧츨로 극장은 사우스 뱅크 극장 위원회의 회장을 지냈던 콧츨로 경의 이름에서 지어진 것으로 스튜디오 극장으로 객석의 형태를 변형할 수 있어 작품에 따라 무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내셔널은 전형적인 레퍼토리 극장으로 3개의 극장 각각에 한 시즌에 3개의 공연을 돌아가며 올릴 수 있다. 즉, 최대 9개의 공연들을 돌아가며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고전극에서부터 다른 여러 유명 극작가들의 연극, 현존 작가들의 신작,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올려지고 있다.

 
리틀튼 극장내부                                        콧츨로극장 내부

내셔널은 자체 워크숍을 통해 거의 모든 무대 세트와 코스튬, 소품을 직접 제작하고 있으며 이러한 제작 환경이 레퍼토리 극장의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막을 내린 공연의 코스튬 및 소품들은 다른 외부 공연들에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해 주기도 한다.

초대 예술 감독이었던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에서부터 피터 홀(Peter Hall), 리차드 아이어(Richard Eyre), 트레버 넌(Trevor Nunn) 그리고 현재의 니콜라스 하이트너(Nicholas Hytner)까지 세계 공연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들이 극장의 예술 감독을 수행하며 자신들이 직접 연출한 작품들을 수시로 무대에 올림으로써 극장의 명성을 다지고 있는 것도 이 공연장의 강점이다. 뿐만 아니라 외부 연출가들을 초청하여 고전 작품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현존하는 극작가들의 신작들을 과감하게 무대에 올림으로써 언제나 웨스트엔드 공연계 뿐 아니라 세계 공연계를 이끌어 나가는 주도적 역할을 한다.

다양한 티켓할인으로 대중과의 친숙함 높여
관객 입장에서 볼 때 내셔널의 가장 큰 매력 중에 하나는 양질의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종류의 티켓 할인 혜택이 연간 이루어지고 있는데 트레블렉스 티켓은 그 대표격이라 할 만 하다. 이는 2003년부터 트레블렉스(Travelex)사와 스폰서십을 통해 올리비에 극장에 올라가는 공연들 중 연간 약 10만석을 10파운드(약 2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제도로 티켓가격을 낮추려는 극장의 꾸준한 노력이 반영된 결과이다.
또한 일반 티켓들도 다른 웨스트엔드 티켓 가격보다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다. 학생, 노약자, 장애인, 단체에는 할인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연 당일 티켓을 할인해 주는 데이 싯(Day Seats)티켓과 매진되었을 경우 파는 스탠딩 티켓은 극장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다.

강변쪽 극장 앞마당은 여름에 정기적인 야외공연을 하는데 이용된다. 극장의 테라스와 현관도 특별한 실험적 공연을 위해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무대 공연 뿐 아니라 매일 진행되는 백스테이지 투어를 통해 내셔널 시어터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으며, 무료로 매일 저녁 공연 시작 전 진행되는 현관 음악 콘서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극장 건물 곳곳을 이용한 무료 전시회, 공연 관련 출판, 서점 등은 모두 극장이 대중들에게 공연 예술의 장르를 쉽고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노력하는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런던에 가고자 할 계획이 생긴다면, 그리고 공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웨스트엔드의 다른 유명 뮤지컬을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내셔널 시어터를 경험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상업성을 배제한 작품의 질로서만 승부하는 극장의 노력을 통해 세계 공연계의 흐름의 중심에 서보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