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영국에서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이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연말 연초의 영국의 극장가도 이에 맞춰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다양하면서도 색다른 공연들을 많이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웨스트엔드의 상업 극장들이야 대부분의 공연들이 오픈 런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특별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공연의 레퍼토리를 바꾸지는 않지만, 지역 극장들을 포함한 나머지 공공적인 성격의 극장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연들을 전통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의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ker)>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최근에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호두까기 인형>이 크리스마스 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발레 공연으로 자리잡았지만 특히 영국의 로열 발레단(The Royal Ballet)의 <호두까기 인형>은 세계를 대표하는 영국의 발레단답게 최고라는 자부심과 그에 걸맞는 공연의 질로 언제나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

발레에 대한 지식이 많이 없어도 가족들이 부담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한 <호두까기 인형>은 로열 발레단만이 가지는 퍼포머들의 세련된 테크닉과 연기, 무대 효과 및 극장 분위기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콜리시엄 극장(Coliseum Theatre)에서 볼 수 있는 잉글리쉬 내셔널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도 크리스마스 레퍼토리이지만 잉글리쉬 내셔널 발레단의 공연은 조금 더 현대적이고 위트가 있는 반면 가벼운 느낌이 단점이다. 이에 비해 로열 발레단의 작품은 안무가인 프티파(Marius Petipa)와 이바노프(Lev Ivanov)의 원작을 최대한 살린 영국 안무가 피터 라이트(Peter Wright)의 화려하면서도 서정적인 무대가 특징인데, 배우들의 세심하고 군더더기 없는 정교한 연기는 관객들의 눈을 한시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1막의 클라라(Clara)와 호두까기 인형의 원래 모습인 한스-피터(Hans-Peter)의 2인무와 두 사람이 눈의 나라로 가게 되면서 추는 집단 군무 장면은 영국식 <호두까기 인형>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고, 2막의 사탕요정과 왕자의 춤 또한 연기자들의 숙련된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는 극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올 해의 로열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더욱 특별한 것은 재일교포 발레리나 최유희씨가 로열 발레단의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승격하면서 공연의 주역인 사탕요정(Sugar Plum Fairy)으로 등장하며 극의 중심에 선다는 사실에 있다. 로열 발레의 <호두까기 인형>은 매년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크리스마스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공연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일찌감치 티켓을 예약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영국 왕실이 함께하는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Royal variety performance)

올해 80회째를 맞는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는 영국 여왕이 참석하는 가운데,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만날 수 있는 전통적인 갈라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다. 1912년 로열 커맨드 퍼포먼스(Royal Command Performance)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연이 시작된 이래로, 1921년부터 연례 행사로 정기화된 이 공연에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가수, 코미디언, 댄서들과 웨스트엔드의 공연팀 등이 쇼케이스 형식으로 참여하며, 공연의 수익금은 은퇴한 공연계 아티스트들과 가족들을 지원하는 자선의 목적으로 쓰여진다.


근래에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찰스 왕세자가 번갈아가며 참석하고 있는데, 관례적으로 TV제작사인 BBC와 ITV에서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공연 제작과 TV 방영의 책임을 맡는다. BBC가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면 ITV는 다음 해에 다른 지방의 지역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형식도 특이하다.

엘튼 존, 라이자 미넬리, 본 조비, 제임스 블런트, 로드 스튜어트 등 유명 가수나 배우들이 참여한 바 있는 이 공연은 참여하는 퍼포머와 지켜보는 관객들 모두에게 즐거우면서도 뜻 깊은 자리이다. 특히 올해 공연은 12월 11일 런던 팰러디엄 극장(London Palladium Theatre)에서 열렸는데 리하나(Rihanna), 테이크 댓(Take That), 푸시캣 돌스(Pussycat Dolls),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 더피(Duffy),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클리프 리차드와 섀도우즈(Cliff and The Shadows) 등의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곡을 선보였고, 웨스트 엔드 공연으로는 뮤지컬 라 카지 오 폴, 조로, 라이온 킹, 저지 보이스, 발레 트로카데로 드 몬테 카를로(Les Ballets Trockadero De Monte Carlo)팀이 참여하여 극 중 하이라이트를 보여 주었다. 또한 지미 카(Jimmy Carr), 마이클 매킨타이어(Michael McIntyre), 암스트롱 & 밀러(Armstrong & Miller), 로드 길버트(Rhod Gilbert) 등의 유명 코미디언들이 중간 중간에 나와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해 관객들을 사로잡기도 하였다.


발레 트로카데로 드 몬테 카를로
더불어 2007년부터 ITV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의 우승자에게는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2007년 공연에는 작년 우승자였던 오페라형 가수 폴 포츠(Paul Potts)가, 그리고 올 해엔 15세의 젊은 스트릿 댄서 조지 샘슨(George Sampson)이 공연에 참가할 수 있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2006년에는 우리나라의 <점프> 공연팀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올해만해도 BBC 1 채널에서 32%의 시청률과 약 750만 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았을 만큼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는 영국인들에게는 전통적이면서도 인기있는 공연이다. TV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는데 자선행사 성격의 공연이라 티켓 가격은 다른 일반 웨스트엔드 공연보다는 훨씬 높게 책정되어있다.

유쾌한 가족공연? 영국의 판토마임(Pantomime)

영국에선 흔히 줄여서 ‘판토(Panto)’라고 불리는 판토마임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판토마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아르테(Commedia dell’ Arte)와 깊은 연관이 있는 뮤지컬 코미디 형태의 가족극이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와 신년시즌에 각 지역의 아마추어 및 전문극장에서 공연되는데, 주로 가족들이 함께 극장에 찾아와 판토를 보는 것이 하나의 풍습처럼 되었다.


판토 <엄마 거위>의 한장면
영국 판토의 스토리는 대부분 어린이 동화를 기본으로 하는데 <알라딘>, <잭과 콩나무>,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미녀와 야수>, <백설공주>, <피터 팬>, <엄마 거위>, <딕 휘팅턴과 그의 고양이>, <로빈 후드>, <골디록스와 곰 세마리>, <장화신은 고양이>, <공주와 완두콩> 등이 현재까지 자주 쓰여지는 주요 레퍼토리이다. 즉 판토는 이 작품들의 기본적인 선과 악의 대립 구조에 기인한 스토리에 노래와 춤, 익살스런 농담, 슬랩스틱 코미디, 크로스 드레싱, 관객들의 참여, 가벼운 성적 풍자 등 여러 웃음 요소들을 덧붙여서 구성된 코믹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판토는 관객들의 재미를 위해 일반 공연들과는 다른 여러 필수 요소들을 가진다.

예를 들면 전통적으로 주인공의 엄마역과 같이 늙은 여자역은 주로 여장을 한 주연 남자배우가 맡아 극을 이끌어가는 공연의 사회자 역할도 겸하게 된다. 또 주인공 피터팬이나 딕 휘팅턴 같은 남자 소년역은 젊은 여자배우가 맡는 것도 관례이다. 판토의 노래들은 이미 잘 알려진 노래에 가사를 개사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에는 주로 유행하는 팝송이나 뮤지컬 노래들을 개사해서 부르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현재 유행하는 여러 문화적 요소들이 접목되기 때문에 역사가 오래된 레파토리 공연이지만 지루하다거나 고리타분하지 않다.

착한 요정은 언제나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하고 나쁜 마녀는 언제나 무대 왼쪽에서 등장하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배우들이 어린이 관객들에게 사탕을 나눠 준다던가, 극 중 악한이 객석에 물을 뿌리거나 하는 것도 모두 관객들에게 극의 재미를 주기위한 방법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의 모습도 자주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설픈 행동으로 난장판이 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그렇다.


판토 <알라딘>의 한장면
또한 판토는 관객들을 극에 참여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유도하는데 이러한 참여를 통해 관객들은 단지 공연을 보는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배우가 어떤 특정한 질문을 했을 경우 관객들이 특정한 대답을 하도록 극 초반에 약속한다거나, 또 무대에 악한이 나오면 언제나 야유를 보내고, 공주를 사랑하는데 거절당하는 남자 주인공에게는 ‘아~~’하고 애처로움을 표현하는 식이다. 극 중간에 배우들은 관객들을 좌,우 반으로 나눠 노래를 따라부르게 하는데 어느 쪽에 더 큰 소리로 부르는지 경쟁을 시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도 재미의 한 요소이다.

이러한 웃음 요소들은 매년 똑같지만 관객들은 전혀 식상해 하지않고 그저 한바탕 웃으면서 가족들과 뜻 깊은 시간을 갖는 경험으로 기억한다. 공연의 티켓 가격도 위에서 언급한 두 공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영국의 전통 크리스마스 공연 양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독특한 영국의 크리스마스 시즌 극장가 체험

웨스트엔드에서 흥행하고 있는 질 좋은 공연들을 보는 것도 커다란 행운이자 재미이지만, 만약 크리스마스 시기에 영국에 있을 기회가 있다면 영국에서만 볼 수 있는 위의 세가지 종류의 공연들을 경험하는 것도 즐거운 연말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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