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라는 용어가 있다. 영화의 제목으로도 사용되었고, 자연과학에서는 어떤 시스템의 상태를 표현하는데 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마음이 안정되어 감정의 평형 상태일 때를 설명하기도 한다. 마지막의 사전적 의미에서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쉽사리 정신적 이퀼리브리엄 상태를 이루기 어려운 사춘기를 겪는 10대들의 불안정성을 표현한 뮤지컬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91년 독일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Frank Wedekind)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은 19세기 말 독일의 10대 청소년들이 엄격한 도덕과 규율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기성 세대들과의 마찰과 반목속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성에 대한 자각과 혼란, 동성애, 원치않는 임신과 낙태, 부모로부터의 학대, 자살 등 청소년기에 대두될 수 있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어서 더욱 의미있다.

2006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시작된 이 혜성같은 공연은 올해 초 브로드웨이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이제 영국에 상륙하여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런던 서쪽의 리릭 해머스미스(Lyric Hammersmith) 극장에서 올해 1월 23일부터 유럽 초연을 시작한 작품은 여러 의미에서 생각해 볼 요소들이 많은 뮤지컬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연출자 마이클 마이어(Michael Mayer)를 포함한 미국의 제작진들이 영국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공연을 올리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관심을 끌었고, 원래 5주간 공연이 계획되었으나 많은 티켓 수요로 2주간 공연이 연장되었고, 과반수가 넘는 런던의 평론가들이 좋은 평가를 주면서 이제 웨스트엔드로 공연이 이전될 지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새로운 형식의 록 뮤지컬

우선 이 작품은 기존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통을 따라가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나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 솔직하면서도, 날것과 같은 새로운 느낌의 록 뮤지컬이다.

분명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다른 기존의 뮤지컬들이 가지지 못했던 대담함과 참신함, 나름의 표현 스타일을 가지고있는 공연이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불안정함 속에서 표출되는 10대들의 다양한 내재적 갈등과 열망을 록(Rock)이라는 음악적 장르의 특성을 이용해 표현하려 했던 점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무대 벽 위에 설치된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주인공 멜키어의 모습처럼 공연은 불안정한 10대의 존재감을 꾸밈없이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어떤 복선이나 복잡한 동선이 깔려있지 않은 매우 직선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모습은 연출자인 마이클 마이어의 캐스팅 과정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어른역할을 담당하는 두 명의 성인 배우들을 제외하고 17명의 젊은 배우들 중에 주인공들을 포함한 14명은 이번에 처음으로 프로로서 데뷔하는 연기자들이다. 이미 인지도가 있는 경험많은 스타 배우들보다는 이러한 신인 배우들의 프로무대에 대한 미경험에서 오는 신선함과 약간은 어설프고(?) 풋풋한 에너지를 연출은 공연 전체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한다.


한편으로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스티븐 세이터(Steven Sater)의 대본과 가사를 통해 다양한 브레히트의 기법*으로 관객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10대들의 고민과 방황, 좌절의 내재적 모놀로그는 그들의 자켓 안주머니에서 꺼낸 마이크를 통해, 인디 록(Indie-Rock) 스타일의 음악으로 발산된다. 잠깐이나마 현실을 빠져 나온 그들은 마이크를 꺼내 노래를 부르는 행위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표현한다. ‘The Bitch of Living’ 이나 ‘Totally Fucked’ 같은 넘버들이 바로 그들의 외적 현실과 내적 자아의 모순들이 통렬하게 맞닥뜨리는 순간일 것이다. 즉 이러한 록 콘서트의 형식은 극 중 인물들과 관객들의 직접적인 대화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솔직한 표현 방법은 객석을 포함한 극장 전체에 설치된 네온 조명으로 더욱 효과적이었던 케빈 아담스(Kevin Adams)의 조명디자인과, 미니멀하면서도 상징적인 크리스틴 존스(Christine Jones)의 세트 디자인으로 더욱 부각된다. 또한 빌 티. 존스(Bill T. Jones)의 독창적인 안무도 이러한 주인공들의 불안정한 심리적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여러 의미에서 작품이 2007년 토니상 8개 부문을 받는 것은 작품의 참신한 접근법에 대한 평가를 일부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뮤지컬로서 작품이 가진 미성숙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작품이 묘사하려 했던 10대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기존의 일반적인 뮤지컬의 틀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여러 가지로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드러나는 문제점은 기성세대와 10대를 권위집단과 권위에 반항하는 저항집단의 이분법적 구도로 갈라놓은 모습이 복잡다단한 사회상을 투영하기엔 너무 단순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이분법적 접근은 특히 극중 존재하는 모든 어른 역할을 단 두 명의 남녀 배우가 맡아서 연기하는 사실에서 인지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성세대에 대한 지나친 관점의 단순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10대 청소년들을 포함한 관객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멜키어 역의 애너린 바나드(Aneurin Barnard)와
벤들라 역의 샬롯 웨이크필드(Charlotte Wakefield)
또한 각 10대 캐릭터들이 나타내는 감정의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도 (좋은 의미에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혼란, 좌절, 분노와 같은 하나의 어두운 이미지를, 노래를 부르는 행위로만 귀결시켜 버린 면이 공연을 단조로워지게 한 원인인 것 같다. 거의 모든 곡들이 비슷한 톤으로 위에 언급된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뿐일까? 특히 스토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모리츠, 벤들라, 멜키어 세 명의 캐릭터가 각기 다른 모습의 개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커다란 작품의 분위기에 휩쓸려 혼돈과 불안의 상징성으로 단일화되어 굳어버린 느낌은 아쉽다.

작곡가 던컨 쉭(Duncan Sheik)이 싱어 송라이터로서 유명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가사와 곡들이 스토리의 전개나 각 인물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인물의 내재적 감정만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이러한 뮤지컬 안에서의 노래들의 기능적 상실은 곡들이 스토리를 전개하거나 각 장면을 묘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캐릭터를 평면화시키고 전체적으로 작품 전체의 리듬감을 잃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작품을 구조적으로 단순화시켜 버릴 가능성을 크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이 원작의 큰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겠지만, 내용면에 있어서 공연이 왜곡된 현실의 현상을 설명할 뿐 어떤 대안이나 희망, 또는 카타르시스를 관객들에게 제시하지 못하는 부분도 개인적으로 아쉽다. 극의 종반 멜키어가 벤들라가 자신과의 성경험을 통해 임신을 했고 부모에 이끌려 낙태 수술을 받다가 죽은 사실을 알고 좌절하여 자살을 시도하다가, 벤들라와 모리츠의 영혼을 만나 삶의 의지를 다시 결심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이 그다지 카타르시스로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는 멜키어의 삶의 연장이 어떤 희망에 대한 암시로 비춰지기 보다는, 그의 연장된 삶이 좌절과 방황의 연속성 속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져 있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극 전체를 통해 기성세대와 10대간의 소통과 화해의 가능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상업적으로는 이미 화려한 나비가 되어버린 작품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공연의 신선함과 대담함이 관객들을 끌어들이면서 작품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며, 미국 뉴욕 공연만 5천만 달러가 넘는 티켓 판매 수입을 벌어들였다. 또한 공연은 이제 런던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조만간 공연될 예정이다.

무대 뒤 벽면에 걸려있던 화려한 나비의 반쪽 날개마냥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일부러 완전한 이퀼리브리엄 상태의 추구를 부정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불안정한 공연의 형식을 통해 제작자는 극중 10대들이 가지고 있는 좌절과 분노, 혼돈이 더욱 증폭되어 표현될 수 있다고 믿었을 지도 모른다.

* 브레히트(Brecht)의 기법이란 쉽게 말해서 관객들이 극에 몰두하는 것을 어떤 의미에서 방해함으로써, 관객들이 극 자체에 몰입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극이 가지고있는 의미와 주제를 주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의도하는 극의 표현 방법을 말한다. 브레히트의 기법을 이용한 대표적인 뮤지컬로는 <카바레>, <시카고>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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