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3회째인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Laurence Olivier Awards) 시상식이 3월 8일 그로스베너 하우스에서 열렸다. 시상에 앞서 2월초 각 부문의 후보들이 발표되었을 때도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되었지만, 이번 올리비에 어워즈는 작년의 어려운 경제한파 속에서 웨스트엔드의 극장과 작품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작년의 웨스트엔드 작품들은 빈익빈 부익부의 모습이었다. 이슈를 만들거나,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은 표가 없어 못 팔 정도로 관객들이 몰렸고, 반대로 충분히 검증 받지 못한 작품들은 관객이 모이지 않아 예상보다 빨리 막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이는 주머니 사정이 홀쭉해진 관객들이 꼭 보고싶은 작품들만 선택해서 보려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웨스트엔드의 대표적인 소극장인 메니에 쵸콜릿 팩토리(Menier Chocolate Factory)와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가 각각 뮤지컬 부문과 연극부문에서 선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두 극장은 꾸준히 자체 프로덕션을 웨스트엔드의 대형 극장으로 연장 이전시키는 능력을 발휘하며 작품의 질이 결코 무대 크기나 제작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뮤지컬 부문

뮤지컬 부문은 여러 작품 중에서도 단연 메니에 쵸콜릿 팩토리의 <라 카지 오 폴, La Cage aux Folles>이 두드러져 보였다. <라 카지 오 폴>은 리바이벌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그 진가를 확인하였는데, 특히 남우주연상의 더글라스 호지(Douglas Hodge)는 작품 속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일찌감치 수상이 유력했었다.

2008년 초에 2달간 공연된 후 10월에 웨스트엔드의 플레이하우스 극장으로 연장 이전하여 지금까지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 작품은 전의 쵸콜릿 팩토리의 성공작이었던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리틀 숍 오브 호러스, Little Shop of Horrors> 그리고 현재 공연을 마치고 웨스트엔드의 게릭극장으로 이전되는 <어 리틀 나잇 뮤직, A Little Night Music>의 연장선 상에 있다.

2004년 문을 연 메니에 쵸콜릿 팩토리는 웨스트엔드에서 조금 떨어진 템즈강 남동쪽에 위치한 150석의 소극장으로 짧은 역사에 비해 질 좋은 작품들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거의 매해 작품을 웨스트엔드로 연장 이전시키는 모습으로 주목 받고 있는데, 특히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하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이 극장의 능력은 웬만한 상업 뮤지컬 제작자들을 능가한다.

신작 뮤지컬 작품상은 경쟁작이였던 <조로, Zorro>를 제치고 <저지 보이스, Jersey Boys>가 차지했다.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저지 보이스>는 주크박스 뮤지컬로서는 드물게 평론가와 관객들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2006년 토니상 작품상에 이어 이번 올리비에 상을 수상함으로써 상업적 성공뿐 아니라 작품성으로도 어느 정도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신작 뮤지컬 부문에 <저지 보이스>와 <조로> 단 두 작품만이 후보로 올라왔다는 사실에서 작년에 작품성 있는 신작 뮤지컬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분류에 있어서 조금 이상했지만 연극 <피아프, Piaf>에서 열연했던 엘레나 로저의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은 당연하게 보였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소피아 에스코바 <마거릿>의 루시 헨셸, <조로>의 엠마 윌리엄스도 각각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지만 작년 작품들을 통틀어 엘레나 로저 만큼 작품속에서 빛을 발했던 여배우도 없었을 것 같다.

뮤지컬 부문의 조연상은 <조로>에서 뛰어난 연기와 함께 특유의 카리스마를 뽐냈던 레슬리 마게리타(Lesli Margherita)에게 돌아갔다.

연극부문

올 해의 올리비에 상 연극 부문은 단연 돈마 웨어하우스의 성공적인 한 해였던 작년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이번 수상에 앞서 이미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즈(Evening Standard Awards) 4개, 크리틱스 서클 어워즈(Critics’ Circle Awards) 4개, 시어터고어즈 초이스 어워즈(Theatregoers’ Choice Awards)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올리비에 상에서의 이변없는 성공을 예상했던 돈마였다.

돈마는 13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초크 가든, The Chalk Garden>으로 연극부문 여우주연상(Margaret Tyzack)과 조명디자인상, <십이야, Twelfth Night>로 남우주연상(Derek Jacobi), <피아프>로 뮤지컬부문 여우주연상을 받는 결과를 내었다. 이번 성과는 꾸준히 질 좋은 작품들을 다른 웨스트엔드 극장으로 연장 이전하거나, 1년 장기 프로젝트인 돈마 웨스트엔드 시리즈처럼 영역을 넓혀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이 작은 소극장이 어느 대극장 못지않게 중요한, 웨스트엔드 변화의 중심에 서있음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돈마 웨스트 엔드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 <이바노프, Ivanov>에서 열연했던 캐네스 브래너와 <피아프>를 제외한 위의 작품들을 연출했던 돈마의 예술감독 마이클 그랑디지가 각각 남우주연상과 연출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사실은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열 세익스피어 컴퍼니(RSC)와 스코트랜드 국립극장(National Theatre of Scotland)도 각각 4개의 상을 거머쥐며 선전했는데 특히 스코트랜드 국립극장은 바비칸에서 공연되었던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한 연극 <블랙 워치, Balck Watch> 한 작품으로 신작 작품상, 연출가상(John Tiffany) 사운드 디자인상(Gareth Fry), 안무가상(Steven Hoggett)을 받으며 작품의 성공적인 런던 데뷔를 축하하는 모습이다. 특히 올해의 연극부문 신작 작품상은 <댓 페이스, That Face>, <더 핏맨 페인터스, The Pitmen Painters>, <오거스트: 오시지 카운티, August: Osage County> 등의 쟁쟁한 작품들이 경합을 벌였기에 <블랙 워치>의 수상은 더욱 특별했을 것이다.

반면에 내셔널 시어터(National Theatre)는 하나의 올리비에 상을 수상하는데 그쳐 작년의 7개 부문 수상과 비교되는 결과를 경험했는데, 더욱이 내셔널에 세트 디자인상을 안겨준 작품도 브로드웨이에서 건너온 <오거스트: 오시지 카운티>였기 때문에 이번 올리비에 상에서의 내셔널의 부진은 그만큼 작년 웨스트엔드의 연극 작품들간 경쟁이 치열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신작 코미디 작품상은 야스미나 레자의 <갓 오브 카니지, God of Carnage>가, 엔터테인먼트 작품상은 현재 런던 히포드롬에서 공연중인 <라 클리크, La Clique>가 받았다.

기억되는 두 명의 극작가

올 해의 시상식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극작가가 특별히 기억되었는데, 특별상을 받은 알란 애익번(Alan Ayckbourn)은 현존하는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이번 시상은 그가 36년간 예술감독으로 있다가 올 해 사임하기도 했던 스캐보로 스티븐 조셉 극장에 대한 공헌과, 그 동안 그의 작품을 통해 나타난 극의 열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한편으로는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생을 마감한, 노벨 문학상으로 빛나는 부조리극 작가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동료작가 데이빗 해어(David Hare)를 통해 이번 시상식에서 추모되어지기도 하였다.

호불호가 명확히 갈렸던 작년의 웨스트엔드

SOLT(The Society of London Theatre)에서 발표한 최근 자료에 의하면 2008년 웨스트엔드 박스 오피스 통계는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티켓 판매량은 1% 증가하고, 티켓 수입은 2007년의 4억 7천만 파운드에서 약간 증가한 4억 8천만 파운드를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경제 여파로 인해 웨스트엔드의 박스 오피스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란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의외의 결과는 관객들이 경제여건이 어려워도 질좋은 공연은 놓치지않고 보려는 경향과, 극장에서 잠시나마 어려운 현실을 잊어버리고 위로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의 올리비에 수상작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지만 어쩌면 이러한 외부적인 경제한파가 잘 만들어진 공연은 더욱 흥행하게 하고, 다듬어지지 못한 공연들은 더욱 빨리 문을 닫게 만드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거름종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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