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에 반한 웨스트엔드
뮤지컬 <마틸다, Matilda>가 화려하게 웨스트엔드에 입성했다. 언론은 “<빌리 엘리어트>을 잇는 수작이 나왔다”고 호평하며 영국산 신작 뮤지컬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몰아 주고 있다. 작년 가을에 시작한 공연은 지금도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시즌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 이하 RSC)가 자리잡고 있는 스트랏포드-어폰-에이본의 코트야드 극장(The Courtyard Theatre)에서 초연한 이 뮤지컬은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일찌감치 런던 진입을 예상케 했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시카고>가 공연 중이던 런던의 캠브리지 극장에 입성하며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 중에 하나가 되었다.

작용

영국의 유명 동화 작가인 롤드 달(Roald Dahl)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이 뮤지컬은 다른 흥행 뮤지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

착하고 재능 있는 어린 주인공이 주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행복을 찾는 이야기는 수없이 다뤄져 왔던 스토리텔링의 전형이다. <애니><올리버!>가 그랬고 <라이온 킹>, <빌리 엘리어트>가 그랬다. 이 진부할 수도 있는 작법은 실패하는 법이 거의 없다. 영국 관객들에겐 너무나 친숙한 달의 스토리 <마틸다>의 뮤지컬 버전은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콧대 높은 RSC에서 <레미제라블> 이후 오랜만에 뮤지컬에 다시 손댔다는 사실이, 평단을 비롯한 관객들에게는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안전성을 확보해 준 느낌이었을 것 같다. 실제로 대본의 데니스 켈리(Dennis Kelly)와 작사/작곡의 팀 민친(Tim Minchin)이 만들어 놓은 작품의 얼개는 비록 <애니>의 ‘투모로우’, <빌리>의 ‘일렉트리시티’와 같이 뚜렷이 각인될 만한 곡으로 방점을 찍지는 못한 느낌이지만, 주인공 마틸다 만큼이나 재치있고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작품의 시각적인 면은 충분히 효과적이다. 연출인 매튜 워커스(Matthew Warchus)와 함께 롭 하울(Rob Howell)이 알파벳 퍼즐을 아이디어로 만든 무대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가지며 교실, 도서관, 마틸다의 집 등 여러 장면들을 기발하게 구성해 내었다.

비록 뮤지컬이라는 다른 장르로 변이되는 과정에서 살이 덧붙여지고 조금은 과장되면서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던 상상력과 여백의 아름다움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무대 위에서 보여준 <마틸다>는 꽤 성공적이다.

반작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작품은 신선함이나 진화라는 단어보다는 아쉬움이나 후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 가고 있나 보다. 뮤지컬 <마틸다>는 이런 사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9.11 테러, 그리고 세계 경제의 출렁거림이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불안감으로 다가온 이후,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서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틸다>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패밀리 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과 악의 분명한 대립과 권선징악이라는 불변의 법칙 위에 세워진 여러 시청각적 효과들은, 관객들에게 고단한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고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가능케 한다. 특히나 작품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은 10살 안팎의 어린이들이다. 이 훈련된 어린 배우들은 여러 노래와 안무를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 내야 하고, 우리는 이 배우들의 일사분란함을 대견하듯 지켜보며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다음 장면과 대사를 기억해 내는 이들의 눈망울 속에서 자유로움 보다는 강박이 보였다면 이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뮤지컬 프로덕션들은 대형화되었고,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뮤지컬은 더 이상 실험의 대상이 아닌 수익이 보장되는 산업이 되어야 했다. 제작자들은 흥행이 보증되지 않는 무리한 실험은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다.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 <컴퍼니>의 지성이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스타라잇 익스프레스>가 시도했던 파격은 더 이상 발붙일 공간을 잃어버렸다. <시카고>, <카바레>의 신랄한 풍자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날선 아름다움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어져 버린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뮤지컬이 진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게 된 것일까?

사진: 공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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