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증발'
이스라엘 출시 안무가 헤르만 '트래시아트'
실생활 재료 끌어와 블랙유머로 풀어
무용수 9명의 과장된 몸짓 객석 압도

국립현대무용단 ‘증발’ 공연 모습(사진=국립현대무용단).

[심정민 무용평론가] 국립현대무용단이 무용계의 염원을 담아 출범한 지 3년을 훌쩍 넘겼다. 올여름에는 2대째 예술감독을 맞이하면서 미세한 예술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국립현대무용단이 추구하는 굵직한 방향에는 별 변동이 없을 듯하다. 국립무용단체로서 지향해야 할 기본 임무가 있기 때문인데 그중 다양한 레퍼토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필수불가결하다.

최근 국립현대무용단은 해외안무가를 초청하는 적극적인 노력 끝에 신작 ‘증발’을 지난달 22∼2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발표했다.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이디트 헤르만은 재활용 예술로 불리는 ‘트래시 아트’(trash art) 방식으로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소재와 재료를 끌어왔다. 막연한 미래를 추구하다가 실존한 현재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블랙유머로 풀어가는데 이러한 접근은 설득력 있게 보인다. 이를 위해 오페라 ‘카르미나 부라나’부터 만화영화 ‘로봇태권 V’에 이르기까지 잘 알려진 음악을 폭넓게 뒤섞어 놓았듯이 무대장치·소품·의상 등 역시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갖가지 대중적 소재와 재료를 활용하고 있다.

작품을 주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아홉 명의 한국무용수들이다. 각자의 성격이나 소망을 반영한 캐릭터들은 전지전능한 남자, 미래를 보는 남자, 사랑에 빠진 남자, 행운의 여자, 나쁜 여자, 결혼한 여자 등으로 구체화됐다. 그리고 이들은 사실적이기보다 극단적으로 과장되고 희화화되었다는 점에서 무대를 괴상한 분위기로 몰고 간다. 무용수들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교와 표현 모두에서 전문가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아직 완성형이 아닌 발전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를 더 기대케 만든다.

아쉬움이라면 말미에 무용수들의 독무가 길어지면서 작품 전체의 인상을 늘어지게 했다는 점이다. 무용수들에게 춤출 수 있는 자율권을 과도하게 준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국립단체의 작업이니만큼 작품성을 마지막까지 탄탄하게 유지하려는 사전 조율은 안무가에 의해 꼼꼼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증발’은 해외안무가 초청공연이라는 기획에서 드러나듯 새로운 창작물을 제작해 다양한 레퍼토리를 확보하려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의지를 반영한다. 다만 예술성이든 실험성이든 간에 국내 안무가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경우 굳이 해외안무가를 초청할 필요가 있는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내서도 세계적인 추세에 동참한 안무가들이 많은 데다가 헤르만의 창작이 예술적인 완성도나 급진적인 실험성을 갖추진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명성과 레벨의 해외안무가를 초청하기 힘들다면 중장기적인 플랜으로 30~40대 국내안무가를 집중육성하는 방안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더욱 기대되는 방안은 한국대표 안무가인 안애순 예술감독이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 만한 경쟁력 높은 신작을 내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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