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들어보지 못한 자가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곡 <햄릿>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고전의 무게와 셰익스피어의 기세에 눌려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사후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이 시공간을 초월해 여전히 팔딱팔딱 살아 숨쉴 수 있는 까닭은 언제나 관객을 먼저 찾아가는 다양한 무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The Complete Works of William Shakespeare)이 반갑고 고맙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총 37편의 희곡 및 소네트를 단 97분 안에 모두 보여주겠다는 기발한 발상 앞에, 영문학도들이 1년 동안 매달려도 단 한 편의 작품도 다 보지 못한다는 속설쯤은 날려버려도 좋다. 즐길 준비, 관객들이 할 것은 그것뿐이다.

비극도 웃음
1996년에서 2005년까지 웨스트엔드에서 9년간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운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이 2005년 3월 국내 초연에 이어 다시 한국에 찾아왔다. 이즈라 빅스, 팀 슈워트, 키이스 아담스 등 단 세 명의 배우가 숨가쁜 셰익스피어 열전을 펼친다.

공연의 매력은 <햄릿>, <오델로> 같은 비극들도 희극 못지 않은 엄청난 웃음으로 다가온다는 것. 유혈이 낭자한 복수극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는 요리쇼로 바뀌고, <오델로>는 절로 몸이 흔들어지는 랩으로 펼쳐진다. <한여름 밤의 꿈>, <십이야>, <헛소동> 등 10편이 넘는 작품들의 제목이 제맘대로 이어져 한 줄의 줄거리로 요약 될 때, 예상치 못한 내용과 인물들의 변신에 폭소가 터진다.

관객도 배우
한 낮, 야외공연으로 선보였던 셰익스피어 시대의 연극을 연상시키듯, 객석의 불은 종종 켜지며 관객들과 배우들이 그대로 얼굴을 마주한다. 몇몇의 관객은 등장인물이 되어 무대를 뛰어다니기도 하며, 공연 후반부엔 나머지 객석도 무사하지 못하다.

스피드가 주는 순간의 묘미를 느끼기에 자막이 따라붙는 센스가 조금 미진하다는 것이 흠. 반면 변화무쌍한 표정과 익살이 넘치는 배우들의 온몸 연기는 그 어떤 언어보다 소통 능력이 한 수 위임을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에서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여자 대신 여장 남자배우가 있었던 셰익스피어 시대와는 반대로 이번 공연에서 여자 역할을 도맡아 하고, 후에 관객이 자기 배역을 빼앗아가자 심통까지 부리는 팀 슈워트의 능청을 비롯하여 인형극 중간중간 근사한 노래로 목소리를 뽐내는 키이스 아담스, 두 배우를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 꽤나 빼는 이즈라 빅스 등 배우들의 매력이 극의 묘미를 한껏 돋구어 놓는다.

<햄릿>의 세 가지 버전까지 보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세익스피어는 우리에게 ‘대문호’의 위엄만으로 남지는 않는다. 걸작의 희화화가 아닌, 명작의 재 구성으로 오늘의 역사를 써가고 있는 후배 연극인들에게 셰익스피어는 무덤에서도 기꺼이 찬사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


글: 황선아(인터파크ENT 공연기획팀 suna1@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