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시즌 웨스트 앤드에서 건너온 연극 작품들이 적지 않은 브로드웨이지만, 그 중에서도 신선한 영국식 유머를 선사하며 기대이상의 선전을 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바로 지난 4월 7일 브로드웨이의 서클 인 더 스퀘어 극장(Circle in the Square Theatre)에서 막을 올린(4월 23일 공식 오픈) 알란 에익번(Alan Ayckbourn)의 1973년 작 <노만 콩퀘스츠>(The Norman Conquests)이다.

공간적 배열로 재구성된 2박 3일의 에피소드

이미 지난 1975년 브로드웨이에 소개되었던 이 작품은 지난해 런던 웨스트 앤드의 올드 빅 시어터(Old Vic Theatre)에서 제작된 리바이벌 프로덕션의 성공에 힘입어 다시 한번 뉴욕 관객을 찾게 되었다. 70년대 작품이지만, 에익번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녹아있는 이 작품은 2008년 올드 빅의 프로덕션이 웨스트앤드에서의 첫 번째 리바이벌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만큼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세련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노만 콩퀘스츠>는 토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2박3일의 일정 동안 세 쌍의 부부에게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시간적 순서가 아닌 공간적 배열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한 편의 작품 안에 세편의 연극이 독자적으로 전개되는 셈인데, 각각의 작품의 나름의 기승전결 구조를 갖고 있기에 관객들은 특별한 순서 없이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관람할 수 있다. 각 작품은 다이닝 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테이블 매너즈>(Table Manners), 거실이 주무대인 <리빙 투게더>(Living Together), 정원에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라운드 앤 라운드 더 가든>(Round and Round the Garden)이라는 부제와 함께 공연된다. 예를 들면, 토요일 저녁 같은 시간 다이닝 룸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대화는 <테이블 매너즈>에서, 거실에서의 사건은 <리빙 투게더>에서 그려지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한꺼번에 세편을 볼 수 있도록 공연일정이 짜여있기도 한데 총 7시간 30여분의 공연시간이지만, 에익번의 치밀한 구성에 매료된 관객들은 세 편을 하루에 보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냉소적 유머에 묻어나는 갈등과 고독
줄거리는 애니(Annie), 레지(Reg), 루스(Ruth) 남매와 그들의 배우자인 사라(Sarah)와 노만(Norman) 그리고 애니의 이웃인 톰(Tom) 등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병환이 있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애니는 딱히 새로운 일도, 즐거울 일도 없이 살아간다.



제대로 빗질도 하지 않은 머리카락이며 늘어진 스웨터를 걸친 애니의 모습은 꽤나 무기력해 보인다. 그런 애니의 주말 여행 계획으로 인해 그녀 대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애니의 집을 찾은 레지와 사라는 애니가 루스의 남편 노만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결국 그들의 여행은 무산되고, 약속시간보다 빨리 애니를 보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은 노만은 레지, 사라와 함께 그 집에서 머물게 된다. 하지만 그날 저녁 술에 취한 노만이 아내 루스에게 전화를 걸고, 결국 이튿날인 토요일 아침, 컨퍼런스를 이유로 집을 나선 남편이 애니의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루스가 등장하면서 마침내 여섯 명이 한 곳에 모이게 된다. 애니와 노만의 관계를 알게 된 루스를 노만은 특유의 임기응변과 넉살로 다시 자기편으로 만들고, 심지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사라까지도 노만에게 매료된다. 애니와의 관계 역시 루스의 등장에 아랑곳없이 지속된다.



남들에 비해 능력이 출중하지도, 그렇다고 외모가 빼어나게 매력적이지도 않은 노만이 결국 세 명의 여자들을 모두 유혹하는데 성공하는 과정이 각자 성격이 분명한 여섯 명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시종일관 코믹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각각의 캐릭터가 선사하는 웃음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지만 결코 쉽게 좁혀지지 않는 가족, 부부 간의 거리가 그리 닮아있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 안에서 그들 각자는 나름의 이유로 외로웠고 상대방과 소통하지 못했다. 그 오랜 상처가 어이없을 만치 단순하고 본능적인 노만에 의해 결국 밖으로 표출되는 셈이다. <라운드 앤 라운드 더 가든>의 마지막 장면에서 노만은 루스, 애니, 사라를 둘러싼 자신의 모든 행동의 이유를 “난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항변하지만, 결국 그들의 관계는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은 채 막이 내린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런던의 올드 빅 극장에서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원형무대에서 펼쳐진다. 비교적 단조로운 세트이지만, 배우들의 보다 자유로운 동선과 다양한 앵글로의 접근이 이 작품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웨스트 앤드 공연에서의 배우들이 고스란히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중인 <노만 콩퀘스츠>는 오는 6월 25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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