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씨 록 시티 그리고 또 다른 목적지들 (See Rock City & Other Destinations)>의 공연장 듀크 온 42가(The Duke on 42nd Street)>를 찾은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뮤지컬 작가 지망생들이 ‘우아~’하는 브로드웨이 작가들, 한국 관객들에게도 이미 익숙한 <씨 왓 아이 워너 씨>의 마이클 존 라큐시아, 뮤지컬 <작은 아가씨들>의 민디 딕슨,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의 멜 마빈을 비롯해 다수의 미디어와 사람들이 “이 쇼는 꼭 봐야 한다”고 해서다. 두 번째로 독특한 무대의 활용이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디벨롭 과정에서부터 이슈가 돼왔다.

‘리차드 로저스 어워즈’와 ‘제리 복 어워즈’ 수상작이며, 2008년 한국산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과 함께 ‘베링턴 스테이지 컴퍼니 뮤지컬 씨어터 랩’에서 공연됐던 작품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로드 뮤지컬
뮤지컬 <씨 록 시티 그리고 또 다른 목적지들>은 미국 각 지역에 사는, 혹은 그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엮은 한 편의 기행문 같은 로드 뮤지컬이다.


테네시에 있는 전설의 도시 ‘록시티’로 향하는 여행자 제스와 웨이트리스, 평생을 사랑한 여인을 추억하려고 손녀와 함께 알라모에 온 병에 걸린 할아버지, 뉴욕 코니 아일랜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 두 고등학교 남학생들, UFO를 찍으러 뉴멕시코 로스웰에서 밤을 새는 이반,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은 신부, 그리고 아버지의 유골을 뿌리러 알라스카 글레이설 베이로 향하는 선상의 세 자매 이야기까지, 뮤지컬은 이들의 이야기를 차곡 차곡 풀어내며, 관객들을 인생이라는 로드 트립에 참여하게 만든다.

관객과 배우를 하나로, 객석과 무대를 하나로
이 공연을 뜨거운 감자로 만든 일등공신은 잭 커밍스(Jack Cummings III)의 창의적인 연출방식과 (그는 연극 <더 보이스 인 더 밴드>로 올해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연출부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작품을 제작한 ‘트랜스포트 그룹(Transport Group)’의 그 유명한 자리배치 방식이다.

소문대로 극장부터 황당하다. 블랙 박스인데, 소규모 체육관 같기도 하고 사진 촬영 스튜디오 같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텅 빈 공간과 한 쪽에 수북히 쌓인 형형색색의 비치 체어들이 관객을 맞는다.

‘혹시 끝까지 서서 봐야되나? 아니면 제목이 록 시티인거 보니까 록 뮤지컬인 것 같은데, 춤을 춰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관객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배우들이 등장해 비치 체어들을 극장에 배치하기 시작한다. 또한 공연 시작 전, 배우들이 자기 해변 별장에 놀러온 친구들을 맞이하듯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 역시 이 뮤지컬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풍경이다.

잭 커밍스의 연출은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우선 객석과 무대라는 공간의 구분을 허물고 극장 전체를 하나로 무대화해 관객이 적극적으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오프닝에서부터 배우들은 객석의 사방에서 등장하고, 상황에 따라 난간에서, 무대 구석, 객석 사이 등 극장 곳곳에서 연기한다. 신기하게도 장면에 따라 무대 밖의 관객이 이야기 안의 관객이 되는, 또는 대사가 없는 배우가 돼서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또 하나는 배우들에게 직접 조명을 조작하도록 해 모던하고 전자적인 느낌의 쇼를 만들어낸다. 그 중 두 인물이 자동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역할이 없는 두 배우가 직접 가슴과 등에 조명을 부착하고 무대 바닦에 앉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실내조명으로 변신하는 아이디어는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의 정수만을 뽑아 무대화하는 트랜스포터 그룹
이쯤에서 우리가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게 이 뮤지컬을 제작한 '트랜스포터 그룹'이다. '작품의 정수만을 증류해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미션 아래 <씨 록 시티 그리고 다른 목적지들>의 연출가 잭 커밍스와 로빈 후사가 2001년 설립했다.


<더 보이스 인 더 밴드>
지금까지 마이클 존 라큐시아의 뮤지컬 <퍼스트 레이디 수트>를 포함, <크로싱 브룩클린>, <우리 읍내> 등 총 일곱 편의 연극과 여섯 편의 뮤지컬을 이들만의 방식으로 제작해왔다. 돋보이는 무대연출과 아이디어로 관심을 받기 시작한 이들은 마이클 존 라큐시아의 <퍼스터 레이디 수트> 같은 경우, 지금까지 제작된 프로덕션가운데 최고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더 보이스 인 더 밴드> 역시 뉴욕의 개인 아파트를 극장으로 이용해 화제가 됐다.

무대, 연출, 극장, 관객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고정관념과 공연계의 관습을 타파하는 이 재능있는 제작자들의 시도는 뉴욕 공연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비평가들의 혹평과 뮤지컬 팬들의 호평 사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씨 록 시티 그리고 또 다른 목적지들>의 경우는 창의적인 연출 형식이 작품의 색깔과 그닥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작곡가 브래드 알렉산더(Brad Alexander)와 작가 아담 마티아스(Adam Mathias)의 대본과 음악에 대해 몇몇 작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지만, 메이저 비평가들은 연출에 못미치는 식상한 내용과 음악이라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오프닝 넘버가 클리쉐(식상하고 진부한 내용)인 건 사실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흔한 주제니까.


비평가들의 혹평과는 상관없이 <씨 록 시티 그리고 또 다른 목적지들>은 뮤지컬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곧 브로드웨이 또는 좀 더 규모가 큰 극장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더불어 뉴욕 공연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는 연출가 잭 커밍스와 트랜스포트 그룹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도 주목해보면 좋을 것이다.

* 사진: 플레이빌닷컴(www.playbill.com Photo by Carol Rosegg), 트랜스포터그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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