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에 도깨비가 나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였을 것이다. 21세기 서울에서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한 것은.
양정웅의 <한여름밤의 꿈>을 보면서 그렇게 나는 셰익스피어는 언제 어디서나 동시대성을 가질 수 있는 놀라운 콘텐츠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2021년 <코리올라누스>. (7/14 관람)
그 어떤 극보다 셰익스피어 희곡 본연의 정통성에 충실한 정서감.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더 현재 우리들의 모습에 더 맞닿게 느껴지는지.
이것이 셰익스피어의,양정웅의 놀라운 지점인가 싶다.

굉장히 미니멀한 회색빛 벙커 무대. 마치 트루디텍티브의 톤처럼 하드보일드한 느낌.
거대한 환풍기와 거울이 서로 마주보며 더욱 숨막히게 하는.

이런 공간에서 어떻게 로마시민의 광장을 보여주지? 싶었는데
그건 알고보니 관객의 몫.
광장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광장을 내어준 거였다.
배우들은 객석과 통로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관객을 일순간 로마 시민으로 만든다.

광장과 벙커는 빠르게 전환이 가능하다. 두 공간을 오가며 사람들은 수시로 얼굴색을 바꾼다.
집정관도 호민관도 귀족도 시민도 누구도 예외는 없다.
정치의 겉과 속이란. 정치의 속성 자체가 저런 거야 라는 듯.

그런데 여기에 그게 잘 안 되는 한 인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주인공 코리올라누스다.
전쟁영웅에 엘리트 귀족인 그는 일단 멋있다.
첫 등장은 흡사 마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연극에서는 광장<->벙커 좌우 이동 못지 않게
무대 뒷켠의 큰 엘리베이터로 상하 이동을 자주 활용하는데,
회색빛 무대 위로 흰 조명과 장영규의 날선 음악이 반짝거리며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열리는데
이미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 벙커가 마치 엑스맨 시리즈의 한 공간이 된 것처럼 순식간에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것.
하지만 그는 그냥 겉만 번지르르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찐이다.
오피디우스와의 결투씬에서 우린 그의 능력치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몸과 몸이 부딪치며, 질척대는 진흙의 물성처럼 생생하게 전달되는 질감.
이러한 몸으로 와닿는 질감은 샤워씬까지 이어지고.
이 씬들덕분에 후에 코리올라누스가 내가 로마를 위해 ''몸바쳤다''고 할 때
저건 진짜 허언이 아닌데. 진짠데. 울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겐 압도적인 매력이 있다.
그런데 이게 또 함정이다.
이로 인해 그는 로마 호민관들에게도 볼스키의 군인들에게도 위험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에겐 인간적이게도 압도적인 약점 또한 있다.
그는 시민에게 오만하고 한편으로 가족에겐 나약하다.

개인적으로 이 약점들을 보여주는 두가지 결정적 장면에서 배우 남윤호의 매력이 잘 빛났다고 느꼈다.
1.큰맘먹고 시민 앞에 나선 장면
-귀족과 가족의 설득으로 (정말 싫지만) 큰맘먹고 거리에 나선(객석에 나선) 코리올라누스.
-코로나 시국에 맞게 손소독 후 등장하는 장면은 시국과도 잘 맞지만 코리올라누스 성격과도 일치되서 두 배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런 동시대성은 양정웅 특유의 느낌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거리에 나선 그는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와 시민은(관객은) 매료되는데,
그게 거짓이라는 데 시민은 상처받고, 그 호응을 금세 철회하는 데에 코리올라누스도 상처받는 상호 관계성이 좋았다.

2.어머니때문에 로마 공격을 포기하는 장면
-아 이 장면이 너무 슬펐다.
-코리올라누스 엄마의 가스라이팅은 엄청난데, 사실 두 모자의 애증은 극에서 확실하게 그려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덧. 많은 미드에서 주인공의 고난은 이런 고구마 가족들로 인해 벌어지는데 유독 한국 드라마에선 허용이 잘 안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씬에서 남윤호 배우의 연기로 그 심리를 납득했다.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배우의 눈에서 점점 차오르는 눈물을 보면서 점점 내 감정도 빌드업이 될 수 있었다.
''아, 어머니!''
이미 그는 이 선택으로 인해서 벌어질 미래의 비극을 다 알지만, 알면서도 이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결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 결함의 비애가 저 탄식의 숨결에 다 새겨져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가 예견했듯 그를 찾아온 비극적 엔딩.
서서히 그를 덮치는 주홍빛 죽음의 그림자.
좀처럼 다른 색의 가면을 쓸 줄 모르던 그는
생의 끝에서 처음 서글픈 주홍빛 색에 오버랩되며 스러져간다.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듯 서서히 흩뿌려지는 가루 속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셰익스피어가 보여줄 인간의 층위는 대체 얼마나 다양한지.
아직도 다 만나지 못했다는 감탄.
그리고 양정웅을 통해, 남윤호를 거쳐 또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로마에서도 한국에서도
기원전에도 2021에도
귀족도 서민도 마찬가지인 점.
내 성공도 내 장점에서 기인하고 내 실패도 결국 내가 가진 단점에서 초래되는 것.
그런 게 가장 인간다운 지점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오늘 만난 것은 ''인간'' 코리올라누스 구나. 멀고도 가깝구나.

현대사회와 로마시대를 적절하게 혼합하여 배우들의 연기가 빛났던 공연같습니다. 러닝타임이 길어 걱정했는데 무대전환이 굉장히 빠르고 부드러워 지루한느낌없이 즐겁게 관람했습니다.

연출 연기 메세지 작품성 재미까지 모두를 잡은 고전을 이렇게도 재미있게 볼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대작이였다 평점이 이것밖에...안되다니..?흑흑 이해 할 수 없다... 연출가님 더 많은 공연 올려주세요!!!!! 제발 너무 좋았습니당

연출 연기 메세지 작품성 재미까지 모두를 잡은 고전을 이렇게도 재미있게 볼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대작이였다 평점이 이것밖에...안되다니..?흑흑 이해 할 수 없다... 연출가님 더 많은 공연 올려주세요!!!!! 제발 너무 좋았습니당

연출 연기 메세지 작품성 재미까지 모두를 잡은 고전을 이렇게도 재미있게 볼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대작이였다 평점이 이것밖에...안되다니..?흑흑 이해 할 수 없다... 연출가님 더 많은 공연 올려주세요!!!!! 제발 너무 좋았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