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좋아해서 거의 해마다 보러 가곤 하는데,
눈여겨 보던 ''양손프로젝트''라는 젊은 연극인들이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게임>을 공연한다 해서
망설임 없이 예매!

난 극중 샘이 ''고도''가 아닐까 하면서 보았고, 때론 ''포조''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후반부에서 눈멀고 쇠약해져서 나타났을 때의 포조.) 그리고 어쩌면 (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이 되어도 좀처럼 직접 개입하지 않는 엄청난 자제력과 인내심의) 절대자가 바로 저런 모습(눈도 멀고 다리도 못 쓰는 신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리고 인간만큼이나 외롭고 인간만큼이나 무기력한건 아닐까 싶기도.

사무엘 베케트가 이 극을 <고도를 기다리며>의 후속편이라고 했다는데, <고도를 기다리며>의 팬이라면 이 연극도 마음에 들었으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고도를 기다리며에 비해 인간이나 세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에 좀 더 연민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 (엔드게임은 양손프로젝트의 연극으로 처음 접한 것이라 원작도 그러한지는 읽어봐야 알겠고...)

양손프로젝트는 다자이 오사무 작품을 주로 해 왔는데, 이번엔 사무엘 베케트라니, 취향이 완전 내 스탈이다 ㅎ
이번 엔드게임 공연도 이전 작들처럼 관객의 긴장을 풀었다 조였다 하며 웃기고 울리는 노련함이 보였다. 우연한 기회에(다자이 오사무 작품으로 첫 공연 준비를 하던 당시 내 홈피에 배우 분이 방명록에 공연 홍보글을 남기고 가신걸 기회로 - 아마도 내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관한 글을 올려놓은걸 검색해서 보고 찾아오신 듯) 알게된 이 젊은 연극인들은 작품마다 진지한 열정이 느껴져서 +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만 골라서 연극을 올리니, 공연 소식이 들리면 챙겨서 보게 된다.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작품으로 극장에서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그나저나,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 <Endgame>을 빨리 주문해서 읽어봐야겠다.

정말 연기도 너무 잘하시고, 베케트 작품이라서 난해하지 않을까, 엄청 걱정하고갔는데,

공연자체도 재밌으면서 무게감있게 진행되어서 인상깊었습니다.

다만 ..어제 밤을 새고 보러간지라, 중간에 살짝 루즈해질때 졸았네요..ㅠ...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졸다가 보다가 나중에 다시 잠깨서 다 봤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은공연이어서,
다음에 다시 공연올라오면 꼭 다시 재관람을 하기로 맘먹었답니다+ㅁ+...

오랜만에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 연극이었습니다.
베케트의 능력이겠죠?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힘없게 만들고 그러다 실실 웃게 만드는 연극이었습니다.
의미 없는 것에 대한 진지함이 우습기도 하지만, 정말 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정신적 스파를 즐기고 싶으신 분들에겐 좋은 연극입니다!
단, negative feedback을 얻고 온다는 것.

제가 받아들이기에 이 극은 무의미를 정말 잘 표현한 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목인 End Game은 정말 이 극과 딱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네요.
체스용어로 체스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는데,
이 극의 등장인물들이 딱 그렇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게임이라 본다면 그들은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질 수 있죠.
하지만 그 순간을 미루면서 무의미한 반복을 계속합니다.
마치 체스를 하다가 더 이상 움직일 말이 없을 때 의미 없이 룩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것 처럼요.
배우분들의 연기가 굉장히 좋아서 극중인물들에게 더 잘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엔 눈물이 나려고까지 하더군요.
극 자체가 단조로워서 어찌보면 좀 지루할수도 있겠지만 전 재미있게 잘 보고 왔습니다.
한번 더 보고싶은데 공연기간이 너무 짧아서 아쉽네요.
그리고 중간에 관객분들이 많이들 웃으시던데 잘 이해가 안갔습니다.
제가 봤을땐 웃긴장면들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오히려 슬프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장면들이었거든요. 관객들이 웃어서 극중인물들이 더 안타까워 보였던것도 같네요.

공연장 바로 밑이 카페라 식사를 못 하고 가신분은 그곳에서 드셔도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일 마치고 바로 가서 공연을 본 터라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내용 자체는 예상하던데로 조금은 어려웠지만 대사라던가 이런부분은 피식 웃을만큼 괜찮았어요. 마음 편히 보셔도 됩니다.
팁을 드리자면 좋은 자리는 중앙이 아니라 양쪽 사이드 제일 앞 중앙에 가까운 쪽입니다.
아 그리고 연기자분 사다리 위에 올라가는거 너무 아슬아슬해 보였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