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말기, 대략 1940년대 초반 즈음 만주국에 모여 사는 조선 출신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독립의 열의에 가득찬 젊은이들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조선인들의 나쁜 민족성에 좌절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체제에 철저하게 순응하여 그들과 하나가 되길 원하는, 심지어 그들의 아이를 완전한 일본인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그들 중 한명인 아스카의 사관학교(아마도 박정희도 졸업한 바로 그 만주군관학교인 듯 하다) 졸업을 격하게 축하해주기 위하여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이고, 조선 남부 지방에 있는 그의 누이까지 만주를 찾는 정도이다. 축하주를 드는 순간에도 일본의 방식과 자세를 따르고, 축하노래 역시 그들의 것을 부른다. 불륜의 결과로 만든 임신임에도 온전한 일본인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는 자들이니, 그들이 서로를 모두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별로 연극을 보기에도 하기에도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좁은 소극장에 정해진 자리보다 훨씬 많은 관객들이 통로까지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완전히 가동하는 것 같지만 모인 사람들의 체온조차 식히지 못하는 에어컨 덕에 가만히 앉아 보고 있는 관객들조차 땀이 흐를 정도였다. 하물며 강한 조명을 받으며 쉬지 않고 내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은 어땠을까. 셔츠뿐만 아니라 바지가 땀에 젖어 살에 들러붙는 것이 관객의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 연기하는 중간에 쓰러지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욱 그들의 연기가 돋보이기도 했다. 6명의 배우들이 모두 대단했지만, 특히 폭행과 실연으로 정신이 나가버린 장면부터 작은 연극을 준비하며 기뻐하기까지 하는 넓은 연기의 폭을 보여준 요시에 역의 정세라 씨가 인상적이었다. 예전에도 ''세자매 산장'', ''대머리여가수'', ''돐날'', ''콜라소녀''에서 연기를 본 적 있는 배우였는데, 역시나 매 작품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을 보여준 배우였다. 이래서 클래스는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나보다. 매우 강한 성격이지만 동시에 사모하는 여인의 극단적인 모습까지 품어줄 수 있는 또다른 성격을 보여준 아스카 역의 김은우 씨 또한 그의 감정이 객석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만큼 절절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들은 무언가 큰 에피소드나 감정의 변화가 있지는 않아서 돋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작품에 온전하게 녹아든 연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연극 ''만주전선''의 배우들은 모두 그런 수준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배우들의 혼신적인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 ''만주전선''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게 남지 못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을 주요 인물로 하는 작품답게 식민지 시대 지식인/청년들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물론 아니다. 연극 ''만주전선''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삶을 살고는 있지만, 일본인의 삶을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모국과 식민모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삶을 지향하였던 식민지 청년들의 좌절에 대한 이야기일까. 결론부터 보자면, 그렇지도 않다. 물론 일본인 간부와의 불륜을 통하여 얻은 아이를 일본인으로 키우고자 했던 요시에의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들 스스로는 절대 일본인으로 살 수 없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아닌 만주에서의 생활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 일본군이 아닌 만주군으로의 입대를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즉 요시에의 시도가 좌절되었다고 해서애초부터 애초부터 그들이 처했던 상황과 했던 생각들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 셈이다. 다시 말해서, 좌절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혹시 그렇게 식민시대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도 잘 살았다는 역설적인 부분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이 작품의 話者인 ''오늘날의 나''가 마지막에 부연설명하기를, 만주군으로 갔던 아스카조차도 해방된 조선에서 내내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하니 일견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작품의 주제라고 하기에는 연극의 공연시간 90분 동안 내내 그런 것에 관심 보이지 않다 마지막 3분에서야 찔끔 말하고 마는 것에 불과하니, 참 어설프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이 연극 ''만주전선''의 주제는 무엇일까. 그저 그 시대 그 공간에 살았을법한 젊은 사람 6명의 힘들었던 인생사? 이런 삶을 무대에서 그리고 보는 것 또한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작품에 ''좋았다''라는 감상을 얹어 주기에는 그들보다 더 힘들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았을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바로 그 시간/공간적 배경을 소재로 굳이 채택하여 할 이야기가 이 정도 수준이었다면, 이건 딱히 좋은 인상을 남기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아마 이 연극은 배우보다는 작가 겸 연출을 담당하였던 분의 명성으로 더욱 알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만큼 더 묻고 싶다. 연극 ''만주전선''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볼만한연극

두 번째 보는데 먹먹합니다. 정말 재밌습니다!!

정말 재밌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역발상? 극도 적당한 무게와 재미로이루어져서 좋았습니다~

역시 박근형 연출의 연극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배우 여섯명의 연기도 누구하나 빠지지 않고 좋았으며, 역사의 뒤안길에 있는 인물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노래 잘하는 여배우에 대해 검색질 하는중.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