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포인트도 적절히 들어가 있는데 너무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 않게 밸런스 조절이 좋았습니다.
김대곤 배우님의 괴벨스. 너무 연기를 잘하시고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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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일 저녁, 예술공간 혜화에서 연극 괴벨스 극장을 관람했 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후에도 자리에서는 일어났지만 상처받은 내 영혼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 다. 무대 위의 뜨거운 에너지와 차가운 메시지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마음이 묵직했기 때문이다.

이 연극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무겁게 할 뿐이다. 초연 때도 충격적이었지만, 이번 재연이 주는 감정은 좀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다. 왜 지금, 다시 괴벨스를 소환해야 했을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또 보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씁쓸하다.

괴벨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나치의 선전장관이자, 대중을 조종하는 데 능숙했던 인물.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군중심리를 꿰뚫었고, 언어와 이미지로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가 선동한 결과는 참혹했다. 수천만 명의 목숨이 사라졌고,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히틀러 혼자서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괴벨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전쟁도, 학살도, 나치라는 집단의 폭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어쩌면 괴벨스의 입이자 손발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대는 괴벨스의 세계이기도 했고, 우리의 거울이기도 했다. 연극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안에서 지금 이 사회의 풍경이 겹쳐졌다.

시인과 화가를 꿈꾸던 이들이 어떻게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뒤틀리고 망가질 수 있는지를 느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회의 무관심, 극단적인 경제 위기, 외면받은 계층, 실패한 정치는 결국 독재를 낳을 수 있다.

한국 현대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지금의 윤석열까지. 불안정한 시대와 권력욕은 언제나 결합하기 쉬운 조합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나 박완규의 연기였 다. 무대 위에서 단 한 순간도 텐션이 떨어지지 않았고, 괴벨스라는 인물을 온몸으로 담아냈다. 특히 길고 강렬한 독백 장면에서 흘러내리는 그의 땀방울이 조명에 반사되는 순간, 그건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해가는 장면 같았고, 한 명의 배우가 감당해내야 하는 무게가 맨 앞자리에서 피부로 느껴졌다.

그 땀은 단지 더위의 결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언어를 던지고, 감정을 폭발시키고, 관객을 향해 고함을 치는 그의 집중과 몰입의 증거였다. 그 에너지가 객석이 아니라 내 영혼에까지 전달되었다.

홍수민과 성노진 역시 각자의 캐릭터를 균형감 있게 해석해냈다. 그들의 역할은 격동하는 괴벨스의 심리와 충돌하며 극에 깊이를 더해줬다.

무대 구성도 인상 깊었다. 객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기역자(ㄱ) 형태로 배치된 자유석이었다. 처음엔 자리가 고르지 않아서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어느 방향에서든 관람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무대가 전방향을 고려해서 구성되어 있어서, 배우들의 동선과 연기가 모든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이번 공연은 풍자적 요소도 강했다. 초연 당시엔 ''쑨실''이었다면, 이번엔 ''건희''가 있었다. 일부 장면에서는 너무 직접적으로 현실을 겨냥한 대사가 나와서 극의 흐름이 다소 끊기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 불편함조차 연출의 의도처럼 느껴졌다.

풍자는 흐름보다 메시지를 우선시했고, 그 선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던 거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공연의 말미였다. 괴벨스는 말한다. “나는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 말은 단순한 극 중 대사가 아니었다. 마치 “나, 그리웠지?”라고 묻는 듯한 뉘앙스로 들렸다.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서, 소름이 끼쳤다.

괴벨스의 명언 중 하나가 떠올랐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이를 반박하려면 수십 쪽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반박할 때면 민중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이 말은 선동의 위험성과 그 파급력을 경고하는 동시에, 진실을 밝히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괴벨스 극장은 단순히 과거를 다룬 연극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향한 경고고, 미래를 향한 질문이 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반복을 막는 건 결국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이 아닐까 싶다.

진지함과 코믹을 잘 섞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