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미아!>는 여러가지로 특별한 뮤지컬이다. 스웨덴 그룹 '아바'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들어 1999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웰메이드 주크박스 뮤지컬인 동시에, 중년 여성이 주인공으로 때론 유쾌하고 때론 매력적인 로맨스로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기 때문. 그래서 '도나' 만이 느낄 수 있는 자부심과 즐거움, 그리고 부담감에 대한 사라와 최정원의 소통은 막힘이 없었다.

열광적인 한국 관객들! 막이 오르자 마자 눈물이 핑

사라: 정말 어메이징 해요. 사실 영국보다 한국 관객들이 조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모두들 따뜻하고 친절해서 정말 감동 받았어요! (웃음)

최정원: 한국 뮤지컬 역사는 짧지만 좋아하는 팬들은 너무나 많거든요. 정말 최고죠. (웃음)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보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맘마미아!>를 관객으로 본다는 게 저한텐 드문 일이잖아요. 며칠 전에 이번 내한 공연을 봤는데 'I have a dream'이 흐르면서 막이 올라가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라, 그 감정선에 내가 저절로 같이 가는 거죠.

사라: 맞아요. 영화나 뮤지컬로 많은 사람들이 <맘마미아!>를 이미 알고 공연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느낌을 무대 위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시간은 흐르고, 커버린 아이들은 집을 떠나고, 이런 정서가 세계적으로 다 같기도 하고요.


최정원: 상상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잖아요. 어느 나라건 딸과 엄마는 있고, 사랑이 이뤄지기도, 또 안 이뤄지는 일들은 존재하니까.

사라: 마치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사랑, 질투, 우정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게 <맘마미아!>에요. 아주 전 세계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죠.

최정원: 좋아하는 장면이나 넘버가 뭐에요?

사라: 'S.O.S' 부르기 직전의 장면을 좋아해요. 뭔가 스파크가 팍! 일어나는 느낌? 'Money, Money, Money'도 좋고, 피날레도 정말 좋아요. 마치 내가 록 스타가 된 것 같거든요! (웃음)

최정원: 'Dancing Queen' 가사를 너무 좋아해요. "신나게~ 즐겨봐~ 인생은 멋진거야~" (웃음) 나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고, 나의 즐거움으로 인해 상대방도 즐거워지고. 그래서 정말 그 노래를 할 때마다 객석으로 내려가서 한 분, 한 분 안아주면서 귀에 대고 "유 캔 댄스"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라: 맞아요! 처음에 그 장면의 안무를 짤 때 일부러 스텝을 그 누구든지 따라 할 수 있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손을 높이 들어 흔들거나 피아노를 치는 동작처럼 굉장히 쉽잖아요. 관객들이 보기에 "그래, 저 정도 춤은 나도 출 수 있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죠.

최정원: 울컥 눈물이 날 때도 있어요. 첫 도나를 맡아서 연습을 시작했을 때, 샘이 소피에게 "아가씨가 도나의 딸이군"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엄청 울었어요. 20년 동안 샘도 도나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는 게 확 느껴지니까.

사라: 맞아요. 춤과 노래도 좋지만, 대사 한 줄, 한 줄이 너무나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게 <맘마미아!>거든요. "도나가 아직도 도나야!"라는 대사도 정말 훌륭하죠.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은 모습이라는 게! 우리 팀의 한 앙상블은 그 대사를 듣고 막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여배우에게 '도나'가 된다는 의미

사라: 그런데 '도나'를 7년이나 쉬지 않고 했다는 건가요? 오 마이 갓! 이 힘든 역을 그렇게나 오래 했다는 거 자체가 감동적이에요.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아요?


최정원: 도나를 하면서 오히려 체력이 좋아졌는걸요? (웃음) (사라: 맞다! 정말 그래요!) 매일 30분씩 수영을 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오히려 공연을 안하고 있으면 몸이 아파요.

사라: 한국은 채소나 쌀 등 몸에 좋은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공연 전에는 잘 안 먹어요. 도나가 거의 퇴장하는 장면이 없고 움직임도 많아서 가득 먹고 공연하면 토 할 것 같거든요. (웃음) <빌리 엘리어트>에서 엄마 역을 할 때 공연 전에 버거를 하나 먹었는데 무대 위에서 트림을 한 게 마이크로 다 나갔어요. 그 때 끔찍했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았죠. (웃음)

최정원: 정말 <맘마미아!> 공연 전엔 뭘 먹을 수가 없어요. (웃음)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면 손이 떨려서 좀 더 조심하는 편이고요.

사라: 여자들이 돋보이는 뮤지컬은 있어도 중년 나이대의 여배우가 맡을 배역이 많진 않잖아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이모나 고모 등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도나'의 책임감이 굉장히 막중하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많은 스토리텔링이 작품과 도나 안에 들어 있고 그걸 최대한 잘 표현해서 전달하려고 해요. 그래서인지, 막상 공연을 할 때는 전혀 안 피곤한데 공연이 완전히 끝나고 나면 한 열흘 간 끙끙 앓아 누워요. 그간의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오는가 봐요.

최정원: 처음 도나 역을 제의 받았을 때는 안 한다고 했었어요. 그 때가 서른 여섯 살이었는데 도나의 감성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 역을 표현하기가 힘들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로지, 타냐 역을 맡았던 배우들이 지금까지 정말 친한 친구들인데 계속 같이 공연하자고 말하더라고요. 서른 아홉 살(2007년)에 그 친구들과 같이 <맘마미아!>를 하기 시작한 거죠.

사라: 난 2008년 서른 일곱 살 때 처음 도나 역을 맡았어요. 그때는 조금 나이가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도나 역을 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되어가는구나, 하는 걸 느껴요. 좀 더 성숙해지고, 도나가 가진 상실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더욱 절절하게 와 닿거든요.

최정원: 이번 <맘마미아!> 내한 공연을 보면서, 아, 저 부분에선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하는 디테일을 발견하니까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사라의 도나는 항상 입가에는 미소가 있지만 눈이 촉촉해 보였는데 그런 표현력이 너무 예뻤어요.

사라: 폴 게링턴 연출이 정원씨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었는데, 같은 대본을 가지고 우리 두 사람이 어쩜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아주 훌륭하고 멋지게 다르게 한다고. (웃음) 그래서 정원씨 무대도 너무 보고 싶어요. 나도 정원씨의 디테일을 찾아 낼 거야! (웃음)

용기 있는 그녀들, 그리고 그녀 앞에 펼쳐진 또 다른 무대

사라: 이번 투어는 서울에서 시작해서 대구, 부산도 가고, 또 스위스, 영국, 싱가폴, 홍콩에도 갈 예정이에요. 일부러 휴가를 내서 한국에 오기란 쉽지 않은데, 이렇게 일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에 가게 된다는 게 아주 좋아요.


최정원: 샘 역을 맡은 리차드 스탠딩과 부부라면서요? 공연을 보면서 사라가 샘 얼굴을 쓰다듬는 장난을 치는 장면을 보는데 뭔기 기분이 묘해서 '둘이 사귀나?' 생각했어요. (웃음)

사라: 남편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고 동료죠. 같이 공연한다는 게 좋은데 어쩔 땐 좀 따로 있고 싶을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여자들끼리 스파나 마사지를 하러 갈 때? (웃음)

최정원: 전 열 여덟 살 짜리 딸이 하나 있거든요. 가수 준비 중인데, 사람들이 제 딸을 보고 "언젠가는 소피를 하겠어"라고 말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세계 최초로 엄마와 딸이 <맘마미아!>를 하게 되는 셈이에요. (웃음)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못할 것 같기도 해요. 수중분만으로 낳은 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배우라 오감이 너무나 특별한 건지, 다른 건 다 조절할 수 있는데 딸로 인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은 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남편이 제게 절대 전화를 안 할 정도에요. 아마 무대 위에서 딸에게 소피 대사인 "엄마가 정말 자랑스러워요"라는 말을 들으면 펑펑 울 것 같아요.

사라: 아이는 없지만 친동생도 지금 영국에서 도나 역을 맡고 있어요. 내년 6월까지라 제가 투어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동생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리허설 할 때 갔었거든요. 그런데 리허설 시작할 때부터 감정이 물밀듯이 몰려와서 펑펑 울었어요. 동생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거든요. 가족을 무대로 만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최정원: 와, 동생도 배우였구나.

사라: 동생은 16살 때부터 배우를 시작했고 난 24살에 데뷔했어요. 무대에 정말 서고 싶었는데 쑥스러워서 숨기고 있었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배우를 하고 싶어! 해야겠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께서 항상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 같은 공연을 많이 보여주셨는데 객석에 앉아 있을 때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다시 막이 오르는, 그 순간이 너무나 황홀했어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면 생명이 시작되는 느낌이었죠. 지금도 공연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데 영국에서 배우가 된다는 건 아주 힘들고 고단한 일이라 어머니가 반대하기도 했어요. 학생 때 공부도 잘 했고, 당시 공연 마케팅 일을 하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엄마, 나 그래도 배우 할래"라고 말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이 나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각하고 진지한 역을 주로 많이 맡았었고, 동생과 같이 출연한 적도 있어요.


최정원: 배우로서 지금까지 걸어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저도 26년 동안 뮤지컬 배우로 한 길만 걸어온 게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워요. '라이브'라는 공연 매력에 매료되었기 때문인데, 이 점에 가장 많은 행복을 느끼고요.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서 다른 곳에 눈을 팔지 않은 것, 스스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사라: <맘마미아!> 피날레 장면에서 관객들을 처음으로 제대로 볼 수 있는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그들이 나의 기쁨을 느끼고 있고, 그 느낌이 내게 전해져서 또 나도 기쁨을 얻는구나, 느껴요.

최정원: 맞아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가 배우 이전에 철학자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나중에 우리가 같이 공연을 하게 되면 어떤 작품이 좋을까요?

사라: 뮤지컬 <위키드> 말고 오리지널 <오즈의 마법사>는 어떨까요? 초록 마법사를 해보고 싶어요. (웃음)

최정원: <맘마미아!>를 다시 한다면 사라가 도나를, 내가 타냐를 할게요! (웃음) 아, 우리 1월 26일에 <맘마미아!> 한국 공연 10주년 기념으로 같이 무대에 서는 거 알고 있어요?

사라: 네, 알고 있죠! 그날이 마침 제 생일이기도 하네요. (웃음)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디자인: 권미정(yuu@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