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작이 한 시간이나 훨씬 더 남았지만, 로열 알버트 홀의 이곳 저곳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들썩들썩 숨을 쉬고 있었다. 오늘만의 광경이 아니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는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을,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다양한 관객들이 즐기는, 그야말로 방대한 클래식의 향연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런던의 로열 알버트 홀을 중심으로 열리는 BBC Proms(이하 프롬즈)는 매년 7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약 8주간 계속되는 클래식 축제이다. 공연기획자이자 스스로가 음악을 공부하기도 한 로버트 뉴만(Robert Newman)이 1895년 처음 그 문을 열었으며 1927년부터 영국의 공영방송국인 BBC가 이 행사를 담당하여 ‘BBC Proms’라고 불리고 있는 이 축제는, 한 마디로 가장 높은 수준의 클래식 공연들이 가장 낮은 자세로 굽혀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BBC PROMS의 중심 극장, 로열 알버트 홀
‘Promenade Concert’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만큼, 관객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특별한 격식도 필요 없이 편안히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프롬즈 홈페이지나 공연 자료에서도 ‘청바지를 입고 와도 좋다, 누구나 편한 차림으로 오기만 하면 된다’는 문구가 종종 발견되는데, 로열 알버트 홀과 같이 위엄 있는 공연장에서 런던 필, BBC 필하모닉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연 실황이 BBC라디오를 통해 생중계되며,
프롬즈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다시 들을 수도 있다.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프롬즈의 풍경은 로열 알버트 홀의 명당인 1층 스탠딩 석에서 더욱 발견할 수 있다. 평균 2시간을 훌쩍 넘는 연주시간 내내 특별한 좌석 없이 그라운드에 서 있어야 하는 자리이지만, 인터미션 동안 힘든 다리를 쉬게 하며 살짝 누워 있거나, 혹은 이곳 저곳에 기대어 음료나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도 있는 풍경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가장 가까이에서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한 이 자리의 티켓 가격은 우리 나라 돈으로 1만원 정도이며 그 밖의 객석 역시 몇몇 공연을 제외하고 대부분 5만원을 넘지 않으니, 주머니의 자유도 보장해 주는 셈이다.

약 5500여 석 로열 알버트 홀에 가득한 관객들
하지만 프롬즈가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은 폭넓게 선보이는 프로그램 덕분이다. 특히 올해는 축제 기간 동안 로열 알버트 홀에서 76개의 콘서트를 비롯, 총 100개가 넘는 콘서트 무대가 이어지는데, 중복됨이 없는 프로그램들을 바탕으로 100회가 넘는 클래식 콘서트라니, 얼마나 많은 곡들이 청중과 만나게 되는 것인가.

공연장을 찾았던 날에는 PROM 64로 현대의 떠오르는 젊은 거장,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가 이끄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있었다. 지난 해 3월 한국을 찾아 피아니스트 백건우,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협연을 하기도 한 이들은, 이번 연주회를 통해 로열 알버트 홀에 데뷔하는 두 명의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특히 두 명의 피아니스트들은 프롬즈에 처음 선보이는, 일반 무대에서도 접하기 어려웠던 모차르트 소나타 라장조 중 ‘두 개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448번’을 선보여 그 참신한 구성에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라 두 명의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의 교합이 무척이나 긴밀한 짐머만의 ‘다이얼로그’를 선보임으로써, 기꺼이 찾아온 관객들에게 클래식의 맛과 멋의 깊이를 대단히 섬세하고 진중하게 선사하는 모습이었다.

공연 후 인사하는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유로프스키
8주간의 축제 기간 중 가장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공연은 아마 ‘BBC Proms in the Park’가 아닐까. 힐스보로우 성과 글래스고, 샐퍼드와 런던 등지에서 열리는 이들 야외 공원 공연 중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의 무대는, 축제의 마지막 날 저녁에 시작해 5시간 지속되는 음악회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클래식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보고 즐기는 동시에 그리고 까만 밤을 수 놓는 화려한 불꽃놀이까지, ‘이 무대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식과 음악에 맞춰 흔들 수 있는 깃발들,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친절한 주최측의 안내를 따라가면 어느덧 음악은, 클래식은 누구보다 가깝고 괜찮은 내 벗이 되어 있을 것이다.

뉴만은 프롬즈를 시작하며 “나는 밤마다 음악회가 이어지고 또 편안한 무대로 대중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대중적인 것이 가장 우선이며, 클래식 음악과 모던 음악을 즐기는 대중들이 점점 더 늘어가면서 그들이 즐기는 음악의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라고 그 뜻을 분명히 했다. 프롬즈가 원하는 것은 클래식이 소수 관객들의 전유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단순한 이지 클래식으로 단발적인 관객수 증가가 아닌, 친근하게 다가서는 폭넓은 기회와 탄탄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통해 평생 가까이 하며 마음을 키울 수 있는 클래식 동반자를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빛나는 프롬즈의 지혜이다.


글/사진: 런던=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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