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엔드는 지금 ‘TV 공개 오디션 중’
작성일2008.04.07 조회수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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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살면서 가끔 영국 친구들에게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곤 한다.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뮤지컬이라는 공연 장르를 새롭게 인식시킨 장본인이고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뮤지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그이기에, 영국인들이 실제로 그를 존경하는지 자랑스러워 하는지 알고 싶은 건 어쩌면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방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세번째 TV 공개 오디션
하지만 몇몇 지인들에게만 물어봐서인지 아니면 쉽게 속내를 들어내지 않는 영국인들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제 그들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로이드 웨버가 이루어낸 많은 것들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축적한 엄청난 부를 약간 시샘 어린 눈으로 보는 것 같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만들어 낸 작품들이 어떤 고도의 상업적인 마케팅에 의한 결과물 들이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많았다(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공감한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까지 받으며 전세계 뮤지컬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그이지만 정작 그의 나라인 영국에서는 조금 아쉬운 듯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다.
최근에 로이드 웨버가 관여한 BBC의 세 번째 TV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I’d Do Anything’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가 제작하는 리바이벌 뮤지컬 [올리버(Oliver!)]의 주인공인 낸시(Nancy)와 세 명의 어린 올리버를 약 석달 간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뽑는 형식이다. 프로그램은 황금시간대인 토요일, 일요일 오후 7시 30분에 나뉘어서 방송되고 있고 이미 12명의 낸시 최종 후보 중 2명이 탈락했다.
이전 프로그램들(2006년 ‘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Maria?’와 지난해 ‘Any Dream Will Do’)과 마찬가지로 패널로 나오는 웨스트엔드 전문가들과 로이드 웨버가 매주 각 후보들을 평가하고 시청자들이 전화 투표하여 최저로 표를 받은 두 후보 중 한 명을 로이드 웨버가 구제하고 한 명은 탈락시키는 꽤 재미있는 설정이다.
케빈 스페이시, TV 공개 오디션 정면 비판
논란의 원인은 이 모든 TV와 뮤지컬의 새로운 결합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너무나도 막강하다는 것에 있다. 지난 주 런던 올드 빅 극장(Old Vic Theatre)의 예술감독이면서 배우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케빈 스페이시(Kevin Spacey)가 이 프로그램의 형식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 사실은 현재의 TV 공개 오디션 형식이 모두에게 환영 받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판의 요지는 2006년의 ‘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Maria?’(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나 작년의 ‘Any Dream Will Do’(뮤지컬 조셉 &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그리고 현재의 프로그램이 모두 특정 웨스트엔드 뮤지컬을 위한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기 때문에 시장의 형평성 차원에서 다른 웨스트엔드 제작자들에게(특히 연극 제작자들에 있어서는) 매우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이슈는 특히 이 세 프로그램들이 모두 공영방송인 BBC 채널에서 방송된다는 사실에 있다. 시청자들로부터 가구 당 일년에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25만원이 넘는 시청료를 받아서 운영하는 BBC 방송은 자사 프로그램들의 공정성과 질을 자부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시청자들에겐 자신들이 낸 시청료가 상업적인 목적의 웨스트엔드 공연이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어버리는 결과가 그리 탐탁치 만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모든 논란의 중심에 로이드 웨버가 서 있다. 마리아역의 코니 피셔(Connie Fisher)를 찾아낸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조셉역의 리 미드(Lee Mead)를 선택한 [조셉 &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모두 로이드 웨버가 제작한 리바이벌 뮤지컬들이기 때문이다. 관련한 TV 프로그램들이 사전에 인기몰이를 충분히 한 덕분에 두 공연의 흥행은 최근 몇 년간의 웨스트엔드 티켓 판매에서 두드러질 정도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로이드 웨버의 두둑한 주머니를 더욱 채워줬다고 할 수 있다.
막대한 홍보 효과
실제로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흥미로운 이런 프로그램의 설정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뮤지컬 제작자에겐 엄청난 혜택이다. 우선 일차적으로 2달 넘게 TV에 그것도 소위 말하는 황금 시간대에 1시간 가까운 공연 홍보를 무료로 하는 것 만으로도(로이드 웨버는 출연료도 따로 받았겠지만) 제작자에겐 커다란 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로이드 웨버를 주축으로 공연계의 전문가들로 꾸려진 패널들이 시청자들의 선택에 많은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전화로 투표하여 자신들이 지지하는 배우의 꿈을 이루게 해줄 수 있다는 만족감의 이면에는 검증된 배우를 선택해서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려는 쇼 비즈니스의 마케팅 전략이 함께하고 있으니 제작자들이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까? 또 이 모든 것들이 극장 박스오피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에 스페이시가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것도 한편으론 수긍이 간다.
실제로 TV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코니 피셔와 [죠셉…]의 리 미드의 영향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물간 고전 뮤지컬의 범주에 넣어도 될 만한 두 작품이기에 공연의 커다란 흥행은 온전히 두 주인공들 때문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 하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옳고 그르다고 누가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이것이 소위 말하는 쇼비즈니스가 아닌가? 거기에다가 공연 문화에 관심없었던 사람들에게 공연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극장에 찾아오게 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좋은 현상임에 틀림없다. 또한 기존의 오디션 형식으로 발견해내지 못한 새로운 준비된 스타를 대중들이 찾아낸다는 설정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TV라는 매체와 공연이라는 예술 장르를 결합한 형식은 현재 전세계적인 TV 리얼리티 쇼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캐나다, 독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이 페어 레이디],[제너두],[헤드윅]의 공연에 TV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을 접목시킨다는 기사를 보면 당분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I’d Do Anything’의 12명의 낸시 후보와 사회자 그레이엄 노튼
현실적으로 프로그램의 특성상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기존 뮤지컬을 다루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새로운 창작 뮤지컬이나 다른 공연 장르를 위한 프로그램도 고안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참고>
1. 카메론 매킨토시 제작의 2009년 [올리버(Oliver!)]는 그의 1994년 프로덕션(샘 멘데스 연출)을 리바이벌 하는 작품이며, 올해 로렌스 올리비에상 연출상을 받은 루퍼트 굴드와 백조의 호수로 잘 알려진 매튜 본이 공동 연출을 맡고(매튜 본은 안무도 맡음.) 파이긴(Fagin)역으로 미스터 빈으로 친숙한 배우 로완 앳킨슨(Rowan Atkinson)이 출연을 확정하여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2. ‘I’d Do Anything’에서 3명의 어린 올리버들은 시청자의 투표 없이 로이드 웨버를 포함한 판정단에 의해 선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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