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초에 보았던 영 빅(Young Vic Theatre) 프로덕션의 <마술피리(Magic Flute)>는 안타까움과 실망감의 2시간 반이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남아프리카의 느낌으로 재해석했다는 이 작품은 20여명의 배우들을 모두 흑인들로 캐스팅하며 올 해 올리비에상 뮤지컬 리바이벌상을 받는 등 새로운 시도에 커다란 주목을 받았던 작품.

하지만 공연 내내 200년 전 모차르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요새 말하는 ‘안습’ 그 자체였다. 굳이 유명 작품의 재해석의 시도를 부정하거나 가볍게 보진 않지만, 공연 내내 연출자의 이력이 궁금했던 가장 큰 이유는 왜 흑인 특유의 리드미컬하면서도 자유 분방하고 감칠맛 나는 느낌을 전혀 가질 수 없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공연 후 연출자가 백인이었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갇혀있는 모습을 보기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영 빅(Young Vic Theatre)의 마술피리 한 장면

앞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듯, 웨스트엔드의 공연은 백인 이외의 사람들을 향한 문은 넓지 않다고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나 알란 에익번(Alan Ayckbourn), 그리고 최근의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의 공연에 이르기까지 소위 전통적인 연극들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관객들부터가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을 찾기가 힘든 건 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만의 잔치?
SOLT(The Society Of London Theatre)가 제공한 통계에 의하면 웨스트엔드 관객의 92%가 백인이고 나머지 5% 정도가 흑인, 아시아인 이라고 한다. 90% 이상이 백인인 영국 전체 인구 비율을 보았을 때 위의 관객 비율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런던의 인구 비율은 백인 70%, 13%가 인도, 파키스탄을 포함한 서 남 아시아인, 11%가 흑인, 3% 정도가 중국, 일본, 한국 등의 동 아시아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웨스트엔드 관객 비율은 백인들에 치중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같은 통계에서 웨스트엔드 관객의 1/3 정도가 런던 시민이고 나머지 1/3이 런던에 거주하지 않는 영국인들, 그리고 나머지가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의 여행객들이라는 통계를 보면서도 이러한 백인들의 압도적인 웨스트엔드 선호 현상은 어떤 이유에서건 웨스트엔드가 흑인, 아시아인들로 대표되는 비 백인들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니거나 심리적 접근성이 쉽지 않음을 나타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영국의 공연계가 다른 인종들에게 열려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제일 크지 않을까 한다.
인디펜던트 극장 위원회(Independent Theatre Council)와 런던 아츠(the London Arts), 런던 행정 위원회(the Association of London Government)의 주관으로 행해진 2002년 연구 조사는 영국 공연계에 종사하는 86%의 흑인 및 아시안계 관리자들이 인종적 불평등을 경험했다고 답변하였다. 또한 공연계 종사자 중 25명 중 1명만이 흑인, 아시안계라는 수치는 아직까지도 영국의 공연계가 소수의 민족이나 인종들에게 있어서는 높은 장벽을 세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종적 배타성이 숨어있는 웨스트엔드 문화
2001년 잉글랜드 예술 위원회(Arts Council of England) TMA(Theatrical Management Association), 노팅엄 플레이하우스 주최의 ‘공연계의 인종차별을 금지를 위한 전략 개발 회의’의 결과 보고서 또한 영국 공연계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이기도 하다. 보고서에서는 현재의 영국 공연계의 인종차별의 모습들과 함께 대응 방법 및 개선 사항 등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

덧붙여서 TV 드라마들을 제작하며 영국의 문화 공연 예술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BBC 텔레비전도 이런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의 논란에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최근 영국의 유명 TV 프로듀서 찰리 헨슨(Charlie Hanson)이 BBC 드라마에 종사하는 흑인 연출 제작자의 수가 거의 없다는 사실과 BBC가 지난 15년간 이 문제에 특별히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도 영국 공연계의 인종에 대한 편견이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영국 공연계의 모습은 결국 여러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굳이 앞에서 언급한 개별 공연에 내재한 문제들이나 관객 비율의 편향성뿐 아니라, 흑인 그리고 특히 아시안계 배우 및 제작자들의 기근 현상은 공연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한 영향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과연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널리 알려진 실력 있는 동양 배우를 언급한다면 누구를 말할 수 있을까?

공연 예술이 텍스트를 비롯하여 연극, 댄스, 음악, 시각 예술 등의 복합예술로서의 문화적 다양성을 대표하는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 웨스트엔드는 이런 배타적인 차별의 모순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백인들만의 문화에서 세계인들에게도 환영 받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