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웨스트엔드의 마지막 신작 뮤지컬로서 기대를 받았던 <이매진 디스, Imagine This>가 기대와는 정반대로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으며, 조만간 큰 변화가 없을 경우 저조한 티켓 판매로 인해 예정보다 일찍 막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의 유태인들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이 크리스마스 시즌 전에, 그것도 경제적 상황이 밝지 않은 웨스트엔드에서 초연을 한다고 했을 때 공연의 성공을 크게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공연의 질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부분이 많아 굳이 작품을 다루는 것이 의미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공연의 평가가 냉정하리만치 나쁘게 나온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여러 사실들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작품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회 문화적인 현상의 이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서 공연이 가진 문제점을 살펴보려 한다.

홀로코스트 유태계 뮤지컬 <이매진 디스>

우선 공연의 스토리는 시대적 배경만 알면 의외로 간단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에 나치가 세운 유태인 집단 수용소 게토(Ghetto)에는 약 45만 명의 유태인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그들 중 다니엘 워쇼스키(Daniel Warshowsky)가 운영하는 극단은 극장이 폭격을 맞아 버려진 기차역에서 리허설을 준비하는 작은 유태인 극단이다. 다니엘은 980명의 유태인들이 만 여명의 로마군사에 맞서 싸우다 항복대신 자살을 택했던 2000여 년 전의 고대 예루살렘의 마사다(Masada) 언덕에 대한 내용으로 뮤지컬을 만들 계획을 한다.



한편 나치에 쫓기는 레지스탕스인 아담(Adam)은 우연히 리허설 중인 극단에 숨어 들어오고 다니엘은 그를 배우로 위장해 나치로부터의 위기를 모면한다. 아담 대신에 극단의 단원이 나치에 끌려가자 아담은 당분간 배우로 위장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결국엔 다니엘의 딸인 레베카(Rebecca)와 함께 ‘마사다’의 주인공 역을 맡는다. 나치하에서 공연을 만들어 선보이는 것이 과연 게토 안의 유태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놓고 다니엘과 아담, 레베카는 다른 의견을 보이지만, 2000년 전의 그들의 조상들이 로마군에 의해 침략당했던 ‘마사다’의 모습에서 현재의 나치하에서 핍박받는 유태인들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리허설은 진행된다. 한편 로마군의 대장으로 분한 아담과 유태인 리더의 딸로 분한 레베카는 공연이 진행되면서, 극중에서와 같이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기에 이른다.

‘마사다’ 공연 중 나치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중단되고, 나치는 게토의 모든 유태인들이 내일 새로운 보호소인 트레블링카(Treblinka)로 이송될 것임을 예고한다. 새로운 보호소로 떠나는 것에 들뜬 사람들과는 달리 아담은 트레블링카가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죽음의 캠프인 것을 알리려 시도하나, 나치는 아담의 정체를 밝혀내고 다니엘과 아담은 체포될 운명에 처한다. 나치는 공연을 끝내 유태인 관객들이 아무 동요없이 내일 아침 트레블링카로 떠나게 된다면 다니엘과 가족들을 해하지 않는 조건을 내걸게 되고, 단원들은 공연을 계속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을 하게 된다. 공연은 다니엘의 의지대로 계속되고 ‘마사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들은 나치의 예상과는 달리 관객들에게 내일 기차를 타지 말 것을 알리며 막을 내린다.

공연의 역사적 배경과 문제점

분명 당시 게토에는 수용된 유태인들의 현실도피를 목적으로 나치가 의도적으로 허용한 극장들이 여러 개 있었다.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유럽의 유태인 커뮤니티 중 가장 컸으며, 도시 인구의 약 30%가 유태인들이었다. 반유대주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그들은 폴란드인들과 함께 전쟁 초기 독일에 대항하며 평안한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1939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고 바르샤바를 공중과 지상에서 폭격하기에 이르고, 후에 바르샤바가 독일에 접수된 후 나치는 유태인들을 수용하는 게토라는 특별구역을 계획하여 모든 유태인들의 팔에 유태인임을 표시하는 흰 천에 파란색 별이 그려진 완장을 차게 만들었다. 더불어서 유태인 학교도 폐쇄되며 그들의 모든 재산은 압수되었고, 16세에서 60세까지의 유태인 남자는 강제 노동을 착취당했다. 약 40만 명의 유태인들이 폴란드 게토에 수용되었으며 기아와 질병에 고통 받았고, 나치의 잔인한 살상도 자행되었다.


당시 바르샤바 게토에서의 공연모습
하지만 공연의 역사적 배경이 충분히 개연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극중 ‘마사다’라는 유태인의 민족적 의미가 담긴 내용의 공연이 나치하에서 묵인되어 공연 되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자의 로마군과 나치의 모습을 중첩시키려는 노력은 지나친 욕심으로 보이는 것이다.

불분명한 공연의 의도

출연했던 대부분의 캐스트들의 탄탄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공연 자체는 또 다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굳이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카바레>에서 묘사되는 나치의 모습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유태인들과 나치를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몰고 간 것은 이번 공연이 가진 가장 커다란 문제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문제는 단순히 플롯상의 문제가 아니라, 심지어 공연의 제작의도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태인 제작자들의 역사 수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만들게 한다. 또한 2000년 전 고대 예루살렘의 마사다 언덕에서 로마군에 점령에 자살을 선택했던 유태인들을 다룬 극중극의 구조는 단순히 비슷한 스토리의 반복이외에는 어떤 다른 역할로 작용할 수 없어 보인다. 이러한 모습들이 어쩌면 관객들에겐 홀로코스트의 참혹했던 역사에 대한 교육이나,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의심스러운 제작 의도는 유태계 미국인 제작자들에 의해서 이번 공연이 기획되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조금 더 가능성을 찾는다. 공연의 프로듀서인 미국의 독립 TV 프로듀서이자 유태계인 베스 트라첸버그(Beth Trachtenberg)는 전에 한 번도 뮤지컬 제작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또 공연의 초기 아이디어를 생각했던 유태인 작곡가 슈키 레비(Shuki Levy)도 <형사 가제트>나 <파워 레인저>와 같은 주로 어린이용 TV 프로그램을 위한 작곡가로 유명하지 뮤지컬을 써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프로듀서는 여러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 수업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이고 단지 어느 평범한 가족의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했었다.



덧붙여서 신기하게도 이번 공연에 투자한 투자자의 4분의 3이 전에 공연에 투자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이번 공연에 투자한 이유는 작품의 스토리가 어떤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프로듀서는 언급하고 있다.(물론 투자자가 누구인지는 프로듀서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녀의 인터뷰를 통해 투자가 어느 정도 유태인 투자자들에게서 나왔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이러한 원인은 평론가들의 공연 평가가 아주 나쁘게 나온 상태에서, 공연의 작품성을 놓고 관객들의 반응이 분명하게 둘로 갈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쪽은 분명히 평론가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쪽이고, 다른 한쪽은 평론가들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며 공연의 작품성이 뛰어났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다. 특히 이러한 상반된 모습은 후자에 속하는 관객들이 웨스트 엔드와 관계한 주요 웹 사이트에 공연의 문제점보다는 장점을 부각시켜 홍보(?)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분명 홀로코스트라는 커다란 교훈은 인류 전체에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아프고도 소중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번 공연의 문제점은 이러한 교훈이 제작자들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남용되었다는 점에 있다. 비 유태인 관객들에게는 역설적으로 유태인들의 시오니즘의 결과물로 건국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억압하고 제한하는 모습이 과연 로마군과 나치가 역사적으로 유태인들에게 자행했던 행위와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 반문하게도 하는 것이다.



뮤지컬은 또 하나의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유태인을 소재로 한 뮤지컬 중에 가장 성공한 작품은 아마도 <지붕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일 것이다. 이 작품이 비 유태인들을 포함한 대중들에게 크게 사랑 받았던 이유는, 아마도 작품이 러시아의 유태인 가족에 대한 소재로부터 출발했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전통의 보존과 세대간의 의식차이, 편견과 이해라는 보편적 주제가 작품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멜 브룩스(Mel Brooks)의 뮤지컬 <더 프로듀서스, The Producers>에서는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의도적인 쇼의 대실패를 위해 ‘나치’라는 최악의 소재를 선택하게 된다.(멜 브룩스도 유태계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나치쇼는 동성애라는 소재가 첨가되면서 나치를 풍자하는 모습이 되고 극중 예상치 못한 커다란 성공으로 이어진다. 50만 파운드라는 제작비가 들어갔던 이번 신작 뮤지컬의 커다란 실패는 프로듀서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이번 실패의 교훈을 통해서 작품이 어떠한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질 때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지를 보여준 값진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뮤지컬이라는 공연 예술을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의 영역 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서도 다루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작품이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고, 또한 그런 의미에서 하나하나의 작품이 사회 문화적으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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