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이가 만으로 26세를 넘지 않았다면 영국에선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도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여러 공연들을 골라서.

무가지 메트로(Metro)와 연계한 잉글랜드 예술 위원회(Arts Council England)는 2009년 2월부터 ‘A Night Less Ordinary(평범하지 않은 하룻밤)’라는 다소 긴 정책 이름을 가지고 26세 미만의 젊은이들에게 코미디, 연극, 댄스, 뮤지컬, 서커스 등 다양한 극장경험을 할 수 있도록 무료로 티켓을 제공해주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영국 잉글랜드 전역의 약 200여 개 극장에서 2011년 3월까지 약 2년간 시행될 예정인 이번 정책은 2백 5십만 파운드(약 50억원)의 예산으로 진행되며, 약 61만 8천 여 개의 무료 티켓이 발행될 예정이고, 26세 미만이라면 어느 누구나 티켓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기회를 가지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사업에 참여하는 극장들이 무료 티켓을 매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티켓을 할당하는 공연일이 극장마다, 공연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공연을 예약하기 전 소정의 예약 절차와 더불어 일정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으로 손쉽게 티켓을 예약할 수 없는 극장들도 있기 때문에 젊은 웹 세대들에게는 약간 불편할 수도 있다.


이번 정책에 참여한 바터씨 아트 센터(BAC)
이번 정책의 계기

이러한 다소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하게 된 계기는 전체적으로 노령화되고 있는 영국 극장의 관객 구성비율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다. 영국의 공연장들을 가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점이지만 우리나라의 공연장 분위기와 다르게 관객의 대다수가 50대 이상의 장년층 관객들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젊은이들이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이러한 관객 비율은 런던 밖의 지방 극장으로 갈수록 심해지고, 또 뮤지컬이나 코미디, 댄스 공연보다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연극 공연의 경우 더욱 심해지는데, 이렇게 공연 예술이 영국 젊은이들과 멀어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다른 즐길 거리에 비해 비싼 티켓 가격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관객 노령화 현상은 영국 공연계의 미래가 그리 밝지 못하리라는 공연계 전반의 심각한 우려를 낳게 만들었고, 걱정은 각 공연을 만드는 공연 기획자에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정책상 극장을 매개체로 한 공연 예술 산업의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적 측면에서도 매우 부정적 신호이기 때문에, 이번에 영국 정부가 내놓은 공연 티켓 무료 배포 정책은 그 성공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이번의 실험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영국 정부의 목표는 당연히 극장에 새로운 젊은 세대의 관객들을 만들려는 노력에 있다. 이러한 의도는 주요 대형 박물관과 갤러리를 일반에게 무료로 개방하면서 결과적으로 2배 이상의 입장객 증가를 보이며 성공적으로 정책을 이끌었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영국 문화부 장관인 앤디 버넘(Andy Burnham)은 말한다.

200여 개의 참여 극장 중 런던에도 상업극장들을 제외한 돈마, 리릭 해머스미스, 로열 코트, 영 빅, 시어터 로열 스트랏포드 이스트, 알메이다, BAC 등의 주요 극장들이 이번 정책에 참여하고 있다.


영국 문화부 장관 앤디 버넘과 배우 셔리던 스미스, 루퍼트 펜리-존스
이번 정책에 대해 셔리던 스미스, 루퍼트 펜리-존스, 에디 이자드, 케빈 스페이시 등의 많은 공연계 인사들은 지지를 표시했고, 현재까지는 정책이 큰 무리 없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또 이번 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젊은 관객들의 평가도 아직 많은 반응들이 나오진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점

한편으로는 이번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 정책이 발표되었던 작년 9월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이 적지않은 예산이 전부터 정기적으로 공연장을 찾았던 젊은 시어터고어(Theatregoer)에게 가기보다, 처음으로 공연문화를 경험할 젊은 관객들을 찾는 방법으로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다.

보수당의 문화정책을 맡고 있는 에드 바이지(Ed Vaizey)는 이번 노동당의 정책에 대해 의문점을 남겼는데,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조급하게 결정된 이번 정책에 사용될 2백5십만 파운드의 돈은 정책이 효과를 가지기에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정책이 급하게 시행되어 실패했을 경우, 미래의 다른 관객 개발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며 어떻게 정책을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연구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예술을 위한 전국 캠페인(National Campaign for the Arts)을 이끌고 있는 루이스 드 윈터(Louise de Winter)도 정책이 급하게 시행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욱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이번 정책을 통해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두었는지를 예술위원회가 어떻게 모니터할 것이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정책에 대한 반대의견은 또한 여러 각도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독립 극장 위원회(Independent Theatre Council)의 샬롯 존스(Charlotte Jones)는 이번 정책은 공연 산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관객 개발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느낌이라고 주장한다. 덧붙여 이번 정책은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단기적으로 풀려는 시도이며 따라서 성공가능성이 불확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반대 의견에 대해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잉글랜드 예술 위원회의 알란 데비(Alan Davey) 또한 어느 정도 공감한다며 단지 무료 티켓을 주는 것이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는 데에 충분하지는 않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아이디어를 통해 젊은이들이 단지 무료 티켓에 중독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들이 극장에서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번 정책과 더불어 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을 시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문화 예술에 대한 가치의 인식이 중요

이번 무료 티켓 배포 정책은 그만큼 영국 공연계가 관객 비율의 노령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영국 공연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디언(Guardian)지의 공연평론가 린 가드너(Lyn Gardner)의 이번 정책에 대한 조언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뿐더러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데, 그녀는 티켓 가격만이 젊은이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단지 공연 예술은 그들을 위한 문화가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생각이 조성된 것 또한 커다란 문제라고 지적하며, 젊은이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그들만을 위한 공연 문화와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그들이 공연을 보러 극장에 왔을 때 편안하고 환영 받는 느낌을 주어야 하며, 또한 근본적으로는 교육 시스템이 시험 성적이나 학교 순위에 신경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소년들의 창의성이 예술과 더욱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분명 이번 영국 정부의 실험적인 정책은 아직은 시행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사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또한 하나의 정책만으로 눈으로 나타나는 어떤 커다란 성과를 거두기에도 어려움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의 교육적, 산업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켜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국민과 정부가 있는 이 나라가 조금은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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