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의 토니상 결과는 뮤지컬과 연극을 통틀어 영국 작품들이 강세였던 것 같다. 뮤지컬 부문의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의 독주를 예외로 하더라도, 연극부문의 <노만 콘퀘스트(Norman Conquests)>는 물론,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가드 오브 카니지(God of Carnage)>도 런던 작품이 브로드웨이로 옮겨간 경우이다. 이밖에도 의상 및 사운드 디자인 부문에서도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선전하면서 브로드웨이에서 웨스트엔드의 파워를 보여준 한 해였다.

그런데 이러한 웨스트엔드의 브로드웨이에서의 선전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이후 특별한 대형 신작 뮤지컬이 없어 고민중인 웨스트엔드이지만, 연극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 웨스트엔드는 또 한번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웨스트엔드 전문가들 사이에서 흥행 작품들의 수에 있어서나, 관객 점유율, 티켓 판매가 연극이 뮤지컬보다 상대적으로 빈약해 웨스트엔드 연극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걱정들이 약간의 엄살(?)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공식적으로 나온 런던 극장 협회(SOLT) 통계에 의하면, 올 해 1/4분기 웨스트엔드의 극장 관객점유율은 작년 같은 시기에 비해 5%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나, 5월 중순까지의 2/4분기 첫 6주간의 점유율은 오히려 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시기 뮤지컬의 경우 관객점유율이 3% 하락한 것에 비해, 연극의 경우, 관객점유율이 29%나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시적인 반짝 상승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지금의 웨스트엔드를 들여다보면 연극 시장이 활발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골라보는 재미 - 누구를 보러갈까?

시어터 로열 헤이마켓에서 공연중인 사무엘 베켓의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는 올 여름 웨스트엔드 연극 시장의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웨스트 엔드의 두 베테랑 이안 맥켈런(Ian Mckellen)과 패트릭 스튜어트(Patrick Stewart)가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역으로 분하여 콤비플레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관객들의 끊임없는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은, 일찌감치 2주 연장 공연을 발표했었다.

우리에게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와 <스타 트렉>의 피카드 선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안 맥켈런과 패트릭 스튜어트이지만, 두 사람은 영국의 대표적인 셰익스피어 배우로서 명성이 높다. 20세기 부조리극의 대표작인 이 작품에, 몇 주 전 70세의 생일을 맞은 이안 맥켈런과 그보다 한 살 어린(?) 패트릭 스튜어트의 앙상블은 웨스트엔드 관객에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돈마 웨어하우스 프로덕션의 두 작품도 관객들이 뮤지컬 티켓 대신 연극티켓을 구매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윈덤 극장에서 공연 중인 돈마의 웨스트엔드 시리즈 마지막 작품 <햄릿 (Hamlet)>은 영국의 미남배우이자 헐리웃 스타 주드 로(Jude Law)가 출연하면서 많은 팬들, 특히 여성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의 이번 햄릿역에 대한 해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분분하지만, 그의 연기를 무대에서 직접 만나려는 관객들의 관심은 이미 전 공연 티켓을 매진시켰다.

또, 돈마 웨어하우스에서 공연 중인 입센의 <인형의 집 (A Doll’s House)>도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작가 지니 해리스(Zinnie Harris)의 각색으로 노르웨이에서 런던으로 배경을 옮긴 이번 공연은, TV 시리즈 <엑스 파일, X-files>에서 스컬리 요원역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질리언 앤더슨(Gillian Anderson)이 주인공 노라역으로 출연,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올드 빅 극장에 올려진 브릿지 프로젝트(Bridge Project)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샘 멘데스(Sam Mendes) 연출로 동시에 올려지는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The Winter’s Tale)>와 톰 스토파드 버전의 체홉의 <벚꽃 동산(The Cherry Orchard)>이다. 미국과 영국의 능력 있는 배우, 프로듀서, 디자이너들의 공동 작업의 결과물인 이번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시도이기도 하다.

여배우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의 남편이기도 한 연출가 샘 멘데스는 지금의 돈마 웨어하우스의 명성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며, 현재는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 헐리우드를 넘나들며 전 방위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세계적 연출가이다. 특히 지금 작품이 공연되는 올드 빅 극장의 예술감독 케빈 스페이시와는 영화 <어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에서 연출가와 배우로서 작업을 같이 해 인연이 깊다.


이번 두 공연에 출연하는 지적인 배우 에단 호크(Ethan Hawke)를 보려는 관객들의 열의는 대단해 보인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위대한 유산> 등의 영화로 유명한 배우이자, 작가, 연출가로서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춘 그의 연기를 무대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런던에서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골라보는 재미 - 무엇을 보러갈까?


작품 자체만으로도 보고 싶은 연극들도 많다. 작년 내셔널 시어터의 최대 히트작 <워 호스( War Horse)>도 현재 웨스트엔드의 뉴 런던 극장으로 연장 이전하여 감동적인 스토리로 관객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으며,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지적이면서도 재치 넘치는 1993년작 리바이벌 <아카디아 (Arcadia)>도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이번 여름 웨스트엔드의 연극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한 작품이 될 것 같다.
더치스 극장에서 동시 공연되고 있는 로널드 하우드의 <테이킹 사이즈(Taking Sides)>와 <콜레보레이션 (Collaboration)>도 새로운 작품 스타일은 아니지만, 주제의 진지함 때문에 관객들의 인기가 많다. 독일의 나치 정권하에서 음악가로 활동했던 두 실존인물의 모습을 그린 이 연극들은 우리에게 예술과 예술가의 도덕성의 관계, 예술과 정치가 쉽게 분리될 수 없는 연장선상에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내셔널 시어터에서 올려지는 연극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다. 헬렌 미렌(Helen Mirren)이 주연을 맡은 연극 <페드라, Phedre>와 셰익스피어의 <끝이 좋으면 다 좋아, All’s Well That Ends Well>는 무대뿐 아니라 전세계 20여개국의 영화관을 통해 공연실황을 상영할 예정인데 이러한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가 내셔널 시어터의 장점이다. 또한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서 올려지고 있는 전통 셰익스피어극들과 오픈 에어 극장(Open Air Theatre)의 레퍼토리도 여전히 관객들에게 인기있는 여름 시즌 야외 공연들이다. 조지 오웰의 <숨쉬러 올라오기, Coming Up for Air>, <1984>가 발간된지 각각 60, 7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위해 트라팔가 스튜디오에서 진행중인 <오웰 ? 셀러브레이션, Orwell ? A Celebration>도 오웰의 작품을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잘 맞아떨어진 제작자의 열정과 관객들의 요구

그런데 지금 공연 중인 연극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면, 어느 작품 하나 가볍게 볼 수 있는 공연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관객들에겐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뮤지컬을 통해 지금의 어려운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진지한 연극들을 통해 찬찬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이렇게 웨스트엔드의 연극시장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모습은 연극 제작자들의 질 좋은 작품 제작에 대한 열정과 적절한 스타 마케팅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연극 작품들이 관객들을 유혹할지 지켜보는 것 자체로 흥미진진한 웨스트엔드의 여름 시즌이다.

*사진 제공 : 각 프로덕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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