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히트했던 유명 가수의 곡들을 사용하여 만든 뮤지컬을 흔히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성공 예인 [맘마미아] 이후, 뮤지컬 프로듀서들에게 낯익은 멜로디들을 다시 사용한다는 의미는 새로운 곡들을 작곡하여 관객들에게 인식시켜야 하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뒤집어보면 주크박스 뮤지컬의 제작이 다분히 위험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가사와 곡들이 서사적 개연성 없이 만들어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원곡들을 가공의 플롯에 끼워 맞추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치보이스의 [굳 바이브레이션스(Good Vibrations)], 엘비스 프레슬리의 [올슉업(All Shook Up)]이 그랬고, 최근 한국에서 공연되었던 퀸의 [위윌록유(We Will Rock You)]도 현재 런던서 6년째 공연 중이지만 곡들이 스토리와 잘 결합한 경우라고는 볼 수 없다.

프랭키 밸리와 포 시즌스의 자전적 이야기
이러한 시선에서 보자면 [저지 보이스]가 2월 28일부터 런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프리뷰를 시작한 사실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록앤롤 그룹 프랭키 밸리(Frankie Valli)와 포 시즌스(The Four Seasons)의 곡들을 바탕으로 가공의 이야기가 아닌 그룹 멤버 본인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스티븐 애쉬필드(밥 고디오역), 글랜 카터(토미 드비토역), 필립 벌콕(닉 매시역), 라이언 몰로이(프랭키 밸리역)

비치보이스와 함께 60년대 비틀즈의 미국침공(the British Invasion)에 대항하여 주옥 같은 명곡들을 만들어냈던 프랭키 밸리와 포 시즌스를 잘 모르신다면 지금 당장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 보시라.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비롯하여 ‘셰리’(Sherry), ‘오 왓 어 나잇’(Oh What a Night), ‘빅 걸스 돈 크라이’(Big Girls Don’t Cry), ‘마이 아이스 어도어드 유’(My Eyes Adored You), ‘웍 라이크 어 맨’(Walk Like a Man) 등 귀에 익숙한 곡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저지 보이스]의 작가인 마셜 브릭맨(Marshall Brickman)과 릭 앨리스(Rick Elice)를 필두로 영리한 제작진들은 이러한 주크박스 뮤지컬의 약점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에 매진한 거 같다. 새로운 플롯에 곡들을 접목시키기보다는 그룹 포시즌스의 살아온 이야기를 풀려고 했으니. 그러면 굳이 곡들을 스토리에 접목시키는데 애쓸 필요가 없어지고(달리 말하면 영리한 포기라고 할 수 있겠다) 곡들은 곡 자체로서의 힘을 고스란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저지보이스]는 5,60년대 미국의 뉴저지에서 자라났던 이탈리안계 미국 아이들의 성장통과 가수를 향한 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룹 포시즌스의 이른바 백스테이지 스토리(Backstage Story)를 보여주려는 의도는 충분히 관객들에게 전달되었고, 공연은 브로드웨이 뿐 아니라 시카고, 라스베가스 등 미국 전역을 돌아 런던 웨스트엔드까지 오게 되었다. 상업적인 성공뿐 아니라 2006년 토니상 뮤지컬 부문 남우 주연상, 남우 조연상, 조명디자인상과 함께 베스트 뮤지컬상도 함께 석권함으로써 그 해 브로드웨이의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는 명예를 얻기도 하였다.

낯익은 성공 스토리, 장황한 전개는 약점
2번의 토니 연출상을 받았던 경력의 연출자 데스 맥어너프(Des McAnuff)가 ‘이 뮤지컬은 뮤지컬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뮤지컬’이라고 말한 것은(이 말은 손드하임이 자주 자신의 작품들을 가지고 하는 말과 비슷하다. 배경은 다르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 작품이 몇 가지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 그룹이 스타덤에 오르기 전까지 꿈이라는 단어를 품은 채 고생하다가,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기회를 통해 빅 히트곡를 만들어내고, 이어 연이은 곡들의 성공으로 정상의 위치에 오르지만 그룹 멤버들 사이에 충돌로 문제가 생기고, 시간이 지난 후의 갈등의 해소… 이런 스토리는 근래에도 많이 보아왔던 레퍼토리가 아닌가? 최근에 영화로 만들어진 뮤지컬 [드림걸스(Dreamgirls)]가 그랬고, 레이 찰스와 바비 대린을 영화화한 것도 생각이 난다.

     왼쪽부터 라이언 몰로이(프랭키 밸리역), 프랭키 밸리,밥 고디오, 스티븐 애쉬필드(밥 고디오역),

게다가 멤버들의 어릴 적 만남부터 스타가 되고 난 후의 몇 십 여년의 세월을 2시간 반이라는 짧은 순간(?)에, 그것도 각 멤버의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려는 다큐멘터리식 전개의 압박감은 뮤지컬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했다. 덧붙여 1막에만 무려 22곡이 소화되었듯이 너무 많은 씬(scene)들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기에 잦은 무대 장치와 소품의 이동은 약간의 안쓰러움을 느끼게 했고,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60년대 팝아트 스타일의 그림들(여러분들도 최근에 본적이 있다)을 이용해 3개의 스크린으로 부가적인 상황설명을 해주는 친절함도 뱀에 다리를 붙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기에다가 이 모든 블루컬러 태생의 아이돌 성공신화는 어쩌면 미국에서, 미국인들에 의해서, 미국인들을 위해서 생겨나야만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어느 순간 들어버린다. 찬찬히 펼쳐놓고 보면 보수적인 토니상 수상에서부터 미국인들이 믿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전형적인 또 하나의 표본이 이 작품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건 단지 지나친 확대 재해석일까.

진한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러 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프랭키 밸리와 포시즌스에 대한 진한 향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따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성과 가성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개성 있는 목소리를 가진 프랭키 밸리와 많은 히트 곡들을 쓴 멤버 밥 고디오(Bob Gaudio)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회상하고자 공연을 보러 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퀸의 주옥 같은 명곡들을 느끼러 [위윌록유]를 보러 가는 것이지 록의 정신이 미래의 빅브라더에게 어떻게 대항했는지 알고 싶어서 공연을 보러 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

브로드웨이에서 존 로이드 영(John Lloyd Young)이라는 새로운 진주가 발견된 것에 많은 미국 언론들이 주목했던 것처럼 런던 공연의 프랭키 밸리역인 라이언 몰로이(Ryan Molloy)도 무난한 출발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원곡들이 공전의 히트를 했던 명곡들이고 배우들의 캐스팅도 원조의 그룹을 닮으려는 노력이 이번 작품 제작의 하나의 중요한 요소임을 알기에 새롭게 재창조된 어린 포시즌스의 노래들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뚜렷한 주도적 흐름이 없는 현재의 웨스트 엔드 뮤지컬 시장에 저지 보이스가 어떠한 역할을 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이 작품이 런던에서 크게 성공한다면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앞에서 지적했던 문제점들 이상의 보편적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성과 흥행성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뮤지컬 프로듀서들이 머리를 맞대고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던 명곡들을 추려가며 성공의 가능성을 보여줄 힌트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