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웨스트엔드 공연계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미국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영국 뮤지컬 제작자들이 지나치게 정부의 공적 지원금에 의존한다고 비판한 기사였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영국 뮤지컬시장이 브로드웨이를 앞서기 위해서는 제작자들이 조금 더 사업성과 네트워킹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상업적인 공연과 비상업적인 공연이 공존하고 있지만, 일단 정부의 예술 분야에 대한 공적 지원금이 적을 뿐 아니라 지원금도 공연 단체보다는 각각의 프로젝트에 집중하기에 조금 더 미국의 공연 제작자들에게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공연 제작을 시도하도록 하고 있다는 평가다.

역사적, 문화적 환경이 다른 미국의 공연예술분야 지원금 정책이 영국의 상황과는 다르겠지만 ‘올드 빅 극장’(Old Vic Theatre)’에서 열린 ‘영국 뮤지컬 시어터에 관한 회의(Musical Theatre Matters UK conference)’에서 언급된 이런 시각은 현재의 웨스트엔드가 안고 있는 고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단 뮤지컬 분야뿐 아니라 영국 공연시장 전체에 공적 지원금이 순기능으로만 작용하는지, 아니면 역기능적인 측면이 많은지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웨스트엔드로 대변되는 영국 공연산업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공적 지원금 문제가 위기의식의 전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올해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통해 이 고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 같다.

뮤지컬 부문, '[헤어프레이] 주목’
올해 로렌스 올리비에상 뮤지컬 부문은 단연 <헤어스프레이(Hairspray)>의 선전이 돋보였다. 남자 주연 배우상에 에드나(Edna) 역의 마이클 볼(Michael Ball)이 생애 처음으로 이 상을 수상하였으며, 여자 주연 배우상도 트레이시(Tracy)역으로 웨스트엔드에 데뷔한 리앤 존스(Leanne Jones)가 거머쥐었다. 특히 셔리던 스미스(Sheridan Smith), 서머 스트랄렌(Summer Strallen)등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을 거머쥔 22살 에섹스(Essex)출신의 리앤 존스는 드라마 학교를 졸업한 후 은행 콜센터에서 일을 하며 배우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오디션에 계속 응시했으나 실패하다가 이번 헤어스프레이 런던 공연에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올리비에 상까지 수상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연출해 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헤어스프레이로 올리비에 상을 받은 리앤 존스, 마이클 볼과 트레이시 베넷

조연 배우상도 극중 벨마(Velma)역으로 열연한 트레이시 베넷(Tracie Bennett)이 차지하였다. 특히 작품이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드라우지 샤퍼론(The Drowsy Chaperone)>, <퍼레이드(Parade)>를 제치고 최고 신작 뮤지컬에 선정되면서 작품의 인기는 당분간 상종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리바이벌상은 <리틀 숍 오브 호러스(Little Shop of Horrors)>, <지붕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을 제치고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남아프리카의 리듬으로 새롭게 각색하여 주목을 받은 영 빅(Young Vic Theatre) 제작의 <마술피리(The Magic Flute)>가 받았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특별상
연극부문의 남자 주연 배우상은 33세의 치웨텔 에지어포(Chiwetel Ejiofor)가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 제작의 강인한 <오셀로(Othello)>의 모습으로 수상하였다. 이아고역으로 이완 맥그리거와 함께 출연하여 호평 받았던 이번 작품에, 그가 다른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경쟁했던 <킹 리어>의 이안 맥켈런(Ian McKellen)과 <맥베스>의 패트릭 스튜어트(Patrick Stewart)를 물리치고 수상함으로써 의미를 더했다

최고 여자 주연 배우상은 로열 코트 극장(The Royal Court Theatre)에서 공연된 <갈매기(The Seagull)>에서 열연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Kristin Scott Thomas)가 수상하였다.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English Patient)로 친숙한 47세의 배우 크리스틴은 극중 아카디나(Arkadina)역으로 역시 막강한 경쟁자였던 앤-마리 더프(Anne-Marie Duff) 와 페넬롭 윌튼(Penelope Wilton) 을 물리치고 수상하여 기쁨을 더했다.
한편 지난해 치체스터 페스티벌 극장에서 웨스트엔드 기엘굿 극장(Gielgud Theatre)으로 옮겨온 <맥베스(Macbeth)>는 연출상(루퍼트 굴드)과 조명 디자인상(하워드 해리슨,Howard Harrison)을 가져갔다. 특히 연출자 루퍼트 굴드(Rupert Goold)는 작년 같은 작품으로 이브닝 스탠다드 시어터 어워즈(Evening Standard Theatre Awards)와 평론가들이 주는 크리틱스 서클 어워즈(The Critics’ Circle Awards) 연출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사운드오브뮤직의 마리아 역을 맡고 있는 서머 스트랄렌(Summer Strallen)과 올해의 특별상을 수상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올해의 특별상은 지난 몇 십 년간 전세계적으로 웨스트엔드 뮤지컬의 위상을 한단계 높인 공로로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에게 주어졌다. 그는 최근에도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흥행이 좋은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과 <조셉 &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에 텔레비전을 통해 공개 경쟁 오디션(‘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Maria?’와 ‘Any Dream Will Do’)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공연들의 커다란 성공을 이끌어 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돌아와서, 수상작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두 좋은 작품들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의 웨스트엔드가 가지고 있는 고민도 엿볼 수 있다. 24개의 올리비에 상들을 살펴보면 된다.
- 국립극장(The National Theatre), 연극 부문 리바이벌상을 포함하여 7개 수상.
- 로열 오페라 하우스(The Royal Opera House), 4개 오페라와 댄스 부문 모두 수상.
- 바비칸(Barbican), 신작 연극상과 신인상으로 2개 수상.
- 로열 코트 극장(The Royal Court Theatre), 최고 여자배우상 포함 2개 수상.
-치체스터 페스티벌 극장(Chichester Festival Theatre) 2개,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 영 빅(Young Vic)에서 각각1개 수상.

이처럼 진정한 의미에서 정부지원금에 의존하지 않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헤어스프레이] 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수입작으로 [헤어스프레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들이 정부의 공적 지원금을 직,간접적으로 받아서 운영하는 극장들에 의해 제작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분명 지원금은 작품의 질을 높이거나 티켓 가격 할인, 상업적 제작자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작품들을 제작하는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공연 예술 문화의 보급, 발전 및 교육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제작자 및 관객들에게 충분히 환영 받을 만한 일이다.

      
연극 부문 최고 배우상을 수상한 치웨텔 에지어포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하지만 한편으로 지원금을 받는 공연장들이 질 좋은 작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 가격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는 사실은 상업적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분명 불리한 출발선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상업적 공연 제작자들에 비해 공적 지원금을 받는 제작자들은 너무 큰 이점을 가지고 가기에 불공평하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좋은 작품을 싸게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 잘못일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원금의 혜택을 받은 작품들만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웨스트엔드 시장을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상업적 제작자들의 안주하는 모습도 요인
이런 로이드 웨버의 의견에 대해 국립극장의 예술 감독으로 있는 니콜라스 하이트너(Nicholas Hytner)가 공적 지원금은 웨스트엔드를 활성화시키는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반박한 것도 아직까지 지원금이 과연 웨스트엔드에 약인지 아니면 독으로 작용하는지 논란의 중심에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웨스트엔드 관계자들이 ‘상업적 공연 제작자들이 전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라는 시각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도 있다. 80년대 매킨토시와 로이드 웨버의 작업들이 웨스트엔드의 커다란 발전의 기반을 만든 것은 사실이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라이온 킹], [시카고], [블러드 브라더스] 등이 장기 공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웨스트엔드 제작자들이 더 이상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원금에 관한 고민은 결국 현재의 웨스트엔드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상업적 공연 제작자들도 조금 더 공격적인 자세로 작품 제작에 임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노 리스크, 노 리워드(No Risk, No reward)란 말처럼. 결국엔 참신하고 질 좋은 공연에 관객들이 몰리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