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상의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의 [햄릿]과 [맥베드]가 11월 1일부터 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이미 두 차례의 전석 매진 내한공연[햄릿](2000년 서울연극제), [오델로](2002년 LG아트센터)-로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높은 명성을 입증한 바 있는 그가 자신의 대표작 2편과 함께 다시 한국 팬들을 찾는 것이다.
20여 년 전 네크로슈스의 작품 [피로스마니 피로스마니]을 처음 본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는 그를 ‘연극 천재’라고 칭하며 ‘잊을 수 없는 밤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리투아니아어라는 언어적 한계 때문에 그의 명성이 가려질까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현재 네크로슈스는 오히려 가장 리투아니아적인, 그리고 네크로슈스적인 독창적인 연극 언어로 전 세계 연극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대한 언어를 절제하는 대신 물, 불, 흙, 돌 등 자연적인 요소들을 통한 은유와 상징이라는 새로운 연극언어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러시아의 황금 마스크상, 스타니슬라브스키 국제연극상, 유럽극장협회의 뉴 유러피언 시어터 리얼리티즈 상 등 연극계 최고 권위 상을 휩쓸었다. 특히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각종 상징들은 비밀스럽고 복합적인 인간 감정을 백 마디 말 보다 더 절묘하게 표현해 내며, 강렬한 긴장감과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잔상 그리고 감동을 동시에 남겨 왔다.
특히 [햄릿](1997), [맥베드](1999), [오델로](2001)로 이어진 일련의 셰익스피어 비극 시리즈는 발표될 때마다 전 세계 연극계에 화제를 일으키며 그에게 ‘셰익스피어 비극의 대가’라는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햄릿]과 [맥베드]에 대한 네크로슈스와의 인터뷰.

[햄릿]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연출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
네크로슈스 매우 강한 자신감이 들면서, 자신의 환상을 믿기 시작하는 시기가 온다. 그 때가 비로소 셰익스피어 작품을 착수할 수 있을 때다.

‘햄릿’ 역에 록가수 안드리우스 마몬토바스를 캐스팅한 이유가 무엇인가 
네크로슈스 햄릿 역에서는 배우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특성(personality)이 가장 중요하다. 매우 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나는 연극을 전공했느냐 아니냐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연극인들만이 연극작품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각미술이나 문학 등 다른 다양한 예술장르의 경험들을 연극작품 속으로 끌어들일 때 그 작품은 훨씬 더 흥미롭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할 때에 보다 더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연극의 규칙도 모르고 연극적인 표현방법이나 절차 등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음악에 비유하면 언제 잘못된 음을 칠 지 자신도 모르는 거다. 그럴 때에 비로소 순수한 진실이 발현된다. 나는 “순수한(genuine)”이라는 단어를 항상 매우 강조하는 편이다.
[햄릿]이 어딘가에서 공연된다고 하면 항상 먼저 묻는 게 있다. 햄릿 역을 맡은 배우가 몇 살이냐는 건데, 때로는 40세, 50세라고 듣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역할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연출가의 몫이므로 할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햄릿은 연기 경력의 정점이나 끝에서가 아니라, 젊었을 때 연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햄릿’은 이 모든 살인사건들 속에서도 때때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깨닫지 못한다. 복수심이 이성의 논리를 잠재울 때조차도 말이다. 젊은 사람의 경우 분위기나 생각 등 모든 것이 좀 더 빠르게 움직인다. 따라서 젊은 사람이 햄릿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네크로슈스 <햄릿>에서 ‘오필리아’ 역에 대해 설명해 달라
네크로슈스 만약 누군가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먼저 그의 일대기를 보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가 물에 빠져 죽는다면 그것은 다른 일이다. 물 속에서의 죽음이란…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오필리아가 물 속에 몸을 던져 자살했기 때문이다. 내 공연에서는 모든 것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얼음, 물… .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마감하려는 오필리아는 의식적으로 매우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결정한 것이다. 아마도 운명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본래 불행한 삶을 사는 것으로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오필리아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고, 아버지 곁에서 자랐는데 이러한 점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이번 작품에서 이제는 거의 신화적인 존재처럼 되어버린 오필리아의 캐릭터를 좀 더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임무는 그녀를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감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게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속에서 얼음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네크로슈스 왜 얼음이냐고? 그것은 과거와 연관되어 있다. 차가운 것은 0도 아래의 온도에서 모든 것을 보존하기 때문에 한 덩어리의 얼음 속에는 수세기의 시간이 보존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한 얼음은 물체 그 자체로도 매우 아름답다. 반짝반짝 빛나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녔으며, 물이 형태를 바꾼 것이다. 나는 그러한 모든 점이 좋다. 복수, 날카로움, 투명함, 파괴 등을 품고 있다. 이렇듯 나는 한 가지 사물 안에서 어떠한 짜임새를 찾고 무대 위의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의미 없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다른 것이 연결되어 따라 나온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모호한 것들이 사라지게 된다.

무대 위의 상징들을 어떻게 고안하게 되었는가
네크로슈스 나는 나의 감각을 따른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본능적으로 묻는다. ‘이것이 무대 위에서 유용한가, 아닌가? 혹시 단순히 형식적으로 맞추기 위한 것인가?,’ 라고 말이다. 내 공연에서 등장하는 모든 사물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일례로, 어떻게 해서 이 낡고 오래된 압착 인쇄기를 무대 위에 올리게 되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작품 중에 햄릿이 ‘쥐덫’이라는 연극을 하는 장면이 있다. 아마도 다른 연출가들은 다른 단어들을 발견했겠지만, 나는 바로 ‘쥐덫’이란 단어를 잡은 거다. 쥐덫이 뭐지? 우리가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 그대로 쥐덫을 세워야 하는 건가? 그러다가 문이 달린 녹슨 압착 인쇄기를 쥐덫처럼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압착 인쇄기는 약간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그러한 사물들을 무대 위로 가져갔고, 배우들도 나도 모두 매우 만족했다.

[맥베드]에 대하여

[맥베드]를 연출 동기는 무엇인가
네크로슈스 [맥베드]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가장 짧은 이야기다. 그렇게 수많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데도 왜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까? 그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들을 품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문학작품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들을 악한 캐릭터인 맥베드의 입술 위에 놓았을까? 난 잘 모르겠다.
‘마녀’라는 존재와 같이, 이런 것들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다. 모든 것이 머리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모든 사람의 머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맥베드]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잘 설계되어 있다.

당신이 표현한 ‘맥베드’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네크로슈스 무엇보다 ‘맥베드’란 인물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자신의 원칙들에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다. 그의 성격의 금욕적인 면을 나타내기 위해 ‘극기(stoicism)’란 단어를 쓸 수도 있을 만큼 말이다. 분명히 그는 위대한 사람이다. 셰익스피어조차도 이 캐릭터를 매우 많이 편애했던 것 같다. 이 극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들을 맥베드의 입을 통해서, 그것도 그의 독백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늘에서부터 가장 낮은 곳까지 닿을 만큼 거대한 진폭의 말들을 말이다. 맥베드는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무언지 스스로 알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맥베드’와 ‘레이디 맥베드’와의 관계가 이 작품에서는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둘을 극단의 사건으로 몰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네크로슈스 사랑이란 감정은 매우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감정이다. 예측할 수 없다. 대게 긍정적인 감정은 그 한 편에는 또 다른, 통제할 수 없는 면 또한 가지고 있는 법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마치 자연(nature)이 그러하듯 결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매우 깊은 동시에 잘 파악해 내기 어렵다. 따라서 ‘사랑의 극치’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가장 위험한 감정일 것이다.
이 세계나 우리의 삶 모두 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는 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가 사랑의 파괴적인 힘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감상적인 면보다는 불길한 면을 다루고 있다. 마치 베수비오산의 폭발처럼 극적인 사건들과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 작품들 속에는 내가 언급하거나 발전시키지 않은 많은 다른 주제들이 있다. 권력에의 투쟁 뿐 아니라 많은 다른 주제들도 함께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들 중에서 내가 선택한 주제를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연출가들 또한 이 중에서 다른 강력한 주제들을 선택할 것이고 다른 것들은 남겨둘 것이다.

네크로슈스의 <맥베드>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마녀들이 전통적으로 공연되어 온 늙고 추한 모습이 아니라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설정을 하게 되었는가?
네크로슈스 아름다운이란 것은 매우 매혹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여배우들을 마녀로 선택했고 연기하는 동안 이렇게 좋은 면을 구현해 내도록 이끌었다. 그들이 아름다워도 똑같은 효과를 끼친다. 결국 아름다운 것은 매력적인 동시에 사람을 현혹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 작품에는 안개 자욱한 숲 한가운데에서 만난 ‘예언된 운명’이라는 분명한 주제가 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 또는 마녀들의 소원들이 사람 마음 속에 너무도 깊게 각인되어 때로는 자신에게 운명 지워진 것을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완성시키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뒤를 돌아보게 된 후에야, 맥베드는 자신이 피로 가득 찬 바다 한 가운데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범죄 다음에 아주 길고 긴 반성과 숙고가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맥베드를 미워할 수가 없다. 살인 자체는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반면 참회는 매우 오랫동안 전개되고 발전된다.

자료 : LG아트센터
정리 : 송지혜(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운영마케팅팀 song@interpar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