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면 둘 중 하나로 나가게 되죠. 청소년기의 꿈과 사랑을 다루거나 아니면 그 정반대의 좌절과 고통을 다루거나. 이 작품은 후자입니다. 정확히는 왕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소재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이 작품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면이 하나 있습니다. 보통 왕따를 다룬 작품들이 왕따의 피해자나 왕따의 가해자를 주로 다루는데 반해 이 작품은 특이하게 왕따의 방관자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우린 누구나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왕따를 목격한(혹은 경험한) 적도 한번쯤은 있을 법 합니다. 한반이 30명이 있다면 피해자나 가해자는 대략 4~5명 수준일 것이고 나머지 25명 정도는 그냥 수수방관한 방관자들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그 방관자들의 이야기를 사건이 벌어진 13년 후의 시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저에겐 이 작품이 여러모로 참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20년 전에는 고등학생이었고 10년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였거든요. 제 학창 시절에도 왕따가 있었고 제 교사 시절에도 왕따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감정이입을 해서 볼 수 밖에 없었네요. 특히나 극중 기간제 교사이자 13년전 왕따 사건의 방관자였던 자희에게 말입니다.

제가 교사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교사를 그만둔 지금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이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사만큼 편하고 좋은 직장이 어디있냐? 방학때 펑펑 놀고도 월급 따박따박나와, 퇴근도 빨리 해, 사회적 인식도 좋아..바깥에서 본 교사는 굉장히 편하고 안정적이라 생각될 수도 있겠습니다. 뭐 실제 그런 교사들도 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한번이라도 학교 현장에서 강사나 기간제 교사로 일해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얘기 못할 겁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드센 이 시기라면 더욱 그렇구요. 정규직이 아닌 눈치를 보고 재계약에 목을 메야하는 기간제 교사라면 더욱 그렇지요. 제가 그걸 겪어봐서 그런지 왕따로 자살한 동창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진술을 해 달라는데 냉정하게 거절하는 자희의 모습이 이해가 가더군요. 그녀의 나이 30에 정규직 임용을 바라고 있는 기간제 교사인데 그렇게 눈 밖에 나는 행동을 선뜻 한다? 현실적으론 참 어려운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쓴 이보람 작가가 현실 반영을 참 잘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이 좋았던 것은 어떤 내용을 강요하지 않아서 였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자, 피해자를 보살피자, 정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자 라고 역설하지 않고 아픔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남겨진 가족들,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방관자, 죄의식은 이미 없어저버린 가해자를 담담히 보여줌으로서 가장 큰 비극은 잊어버리는 것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언가 강요하고 설교하는 듯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이런 식의 작품이 제 취향엔 아주 잘 맞았습니다.

공연 정보엔 80분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 공연 시간은 딱 1시간. 60분 이었습니다. 굉장히 짧아서 부담도 없는 작품이니 다음에 또 공연이 올라간다면 한번쯤 보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주말 오후 좋은 공연 잘 봤습니다.

다시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작가의 전작들에 대한 기대를 안고 관람한 이번 작품 역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공연 내내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누구나 익숙할 수업과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변주한 음악도 작품과 잘 어울렸다.
다만, 재공연을 하게 된다면 공연 초반 교실에 외부인이 들어오는데 선생님이 전혀 막지 않는 설정은 바꿨으면 한다. 학교 현실을 잘 모르고 쓴 게 아닌가 싶었다. 복도에 나가 얘기를 하다가 억지로 교실에 들어오려는 식으로 장면이 구성되어도 될텐데 너무 설득력이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좀 더 큰 무대에서도 보고싶습니다

올해 플래시온 창작플랫폼의 마지막 작품인 네가 있던 풍경을 연우소극장에서 만나고 왔어요.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러닝타임이 약 60분으로 짧지만 등장 인물도 많고 내용이 상당히 진지해서 몰입도는 최고였답니다.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 그리고 왕따를 당하는 학생의 자살.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스스로 지우고 살아가지만 또 누군가는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엄연히 현실에도 잊어질수 없는 과거의 일이 있지는않을지?

왕따를 묵인하는 사회 그리고 학교, 그리고 친구들. 자살을 선택할수 밖에 없는 그런 친구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었고 당시 우리가 서 있던 자리가 옳았던 것인가? 이런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소년의 아버지가 당시 소년이 다녔던 반의 모든 학생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이 원했던 건 누군가의 처벌이 아니라 그냥 진실을 그대로 누군가 용감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뿐인데도 누구 하나 그날의 기억을 제대로 기억하지않으려합니다.

침묵과 그냥 묵인, 그리고 지나쳐 외면해 버리려 했던 것들.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과 언어가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좌절을 안겨줄수도 있지는않을지?

소년은 옥상에서 힘든 자신에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를 걱정해 주더군요. 누군가 좀 더 손을 내밀었다면 피할수도 있었던 그날의 기억들.

진지하게 왕따 문제를 다룬 수작이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너가 있어야할 자리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환호성을 지르고 축제를 즐기고 있지만 세상의 또 다른 곳에서는 비참하고 슬픈 일이 엄연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