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망설이다가, 1900년대 초반 얘기를 워낙 좋아하는 지라 보았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고 만족했습니다.
이상과 구보의 이야기.
큰 사건은 없지만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어가는 스토리는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더군요. 연기도 다들 뛰어나시고, 특히 에이꼬역의 연기는 정말 탁월했습니다. 빠져드는 그 느낌.
마지막 날 보아서 그런지 프로그램북이 다 떨어져서 없다고 하더군요. 너무 속상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공연의 프로그램북은 꼭 소장하거든요.
극단 관계자분들, 혹시 남는 프로그램북 있으면 제가 살테니 연락주세요. bobbyryu@네이버 입니다.
이런 좋은 공연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극단, 연출, 배우분들께, 정말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연극 부탁 드립니다.
2008. 12. 28
두산아트센터
연극 깃븐우리절믄날
앞자리 맨 끝에 앉았다. 연극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보는 것이 감사했다.
연극을 보기에 참 괜찮은 공간이다. 이곳은
이 연극은 창작이다. 난 그 점을 높이 산다.
경성의 모단보이 3명과 1명의 모단걸이 나온다.
그들은 답답한 현실을 잊고 살고 싶은지 옥상에서 주로 만나고 이야기 한다.
미츠코시 백화점의 공중정원 까페에서 고히를 마시면서 시작되고
이것은 도서관옥상, 다방옥상, 영화관 옥상, 신문사 옥상 등등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미츠코시 백화점의 공중정원에서 끝을 맺는다.
근데 너무 피곤해서 깜빡 졸았는데 전병욱 배우가 뚫어져라 바라본다.
우왕 미안해서 내가 먼저 눈을 피했다.
이 연극을 볼 때 안내팜플릿을 먼저 봤다.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시절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말투는 옛 서울말이고 쓰는 단어나 어법은 우리랑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들어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배움에 대한 열의가 담겨있다. 이 답답한 조국의 현실을 벗어나
서양의 문물을 들이마시는 것 처럼 알고 싶다는 열망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2등인 것 처럼
아무리 일본말을 쓰고 문학을 하고 신문을 읽어도 우리는 2등이다.
그것을 느꼈다.
대사의 3할 정도는 일본어이고 나오는 배우들은 요즘과 사뭇다른 어법을 구사하는
것이라 다른 연극의 배 이상 외웠어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배우들의 몰입, 연기, 의상, 소품, 전체가 다 잘 어울리고 참 고상했다.
좋은 연극이라고 추천하고 싶고 다음 시즌에도 또 했으면 한다.
깃븐우리절믄날 크리스마스 이브날 공연을 보고왔습니다.
프로그램북이 정말 독특해요.
대본같기도 하고(물론 대본이 수록되어있어요.) 오래된 노트 같기도 하고..
무대는 그렇게 크지 않았구요,
좀 특이했어요.
무대를 삼면으로 나눠서 객석도 왼쪽,중간,오른쪽 이렇게 확연히 구분되었어요.
연극 내용은 이상과 구보 박태원, 그리고 그들의 친구 정인택과 권영희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구보 박태원인것같은데....(;;)
전 이상이라는 인물이 더 끌리더라구요.
악동같은 이미지에 뻔뻔한 연기도 너무 재미있었고..
아, 이 연극은 1935년의 경성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배우들의 대사가 다 20세기 초반의 조선말입니다.
자미있다(재미있다) 쌍큐(쌩큐) 아후리카(아프리카) 등등
말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예뻤어요^^
그리고 도중도중 일본어로 대사가 나오는데 뒤에 배경에 자막이 나온답니다.
특이하죠?
막 하나하나 넘어갈때도 배경에 장소 설명이라던지
그 시대의 신문기사나 자료, 노래들이 흘러나오던데 너무 좋았어요.
소품 하나하나 다 세심하게 신경쓴 티가 났어요.
한 여섯 막 정도였구요, 공연 시간은 두시간 반 정도였어요.
배우는 총 다섯분이 나왔구 애드립이랄까? 이런것도 조금씩 있어서 재미있었네요.
지루했다는 블로그 글이 많던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구요, 오히려 재미있었고 끝에 약간의 여운이 남아서 좋았어요.
많은 분들이 가서 보셨으면 좋겠는데,
31일이 마지막 공연이라 아쉽네요.
도중도중 웃기고 재미있는 장면도 많이 있었고 시대극답게 그 시대의 말투를
맛깔스럽게 연기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다만, 제가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연극 전체적으로 미스테리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해명이 없이 끝나버리는것 같습니다.
주제가 그런것이 아니었다면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결론이 없이 끝나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1930년대의 청년들도 청춘이다.
시대적 상황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식민지 땅에서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 시대의 청년들도 여전히 피가 뜨겁게 끓고,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청춘들이다.
그리고 그 청춘들은, 고단한 시대에 사랑을 하고 고민을 하고 좌절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매서운 시대를 살아간다.
이제 막 문명을 날리며, 작가로서의 자긍심이 하늘을 치솟는 박태원에게도...
요상한 시라는 악평을 들으며 침잠해 있는 우울한 이상에게도...
천재 문우들 틈에 현실적인 삶을 살면서도 늘 꿈을 꾸는 정인택에게도...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고, 일생의 사랑을 꿈꾸는 모던걸 에이꼬, 권영희에게도...
차가운 머리만큼이나 뜨거운 가슴이 있기에,
서로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염탐하며 의심하고 미워하다 사랑한다.
그게 청춘이다.
하지만 청춘은,
마냥 아름답고 눈부시지만은 않기에,
그래서 청춘일 것이다.
영희와 문학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며 산책을 즐기던 구보 박태원.
그 역시 결혼이라는 관문 앞에서는 모던걸인 영희 대신 치마저고리에 쪽진머리가 어울리는 음전한 아내를 얻었다.
부유한 약국집 아들답게 구하기 어려운 수면제를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상에게 건네주고,
가난한 시인에게 값비싼 커피 한 잔 사면서도,
이상의 글에 대한 칭찬에는 파르르 떨며 질투심을 숨기지 못한다.
야심차게 시작한 <청춘송>의 비판을 들으며, 자신의 글을 몰라보는 민중의 우둔함을 취중에 씹어대고 만다.
늘 사람 좋고 샤프해 보이는 그의 뒷면엔 스스로를 글에서조차 담아내지 못하고 숨기고 마는, 솔직할 수 없는 모습이 숨어 있다.
무색무취의 모습으로 주변인들에게 속내를 감춘 채 늘 관찰자적 모습을 보이는 그는, 30년대를 차갑게 응시하고 있다.
여러 가지 모습을 한 몸 안에 담고 있는 이상 김해경.
화려한 여성 편력과 시대를 앞서나가는 천재성을 지녔으나,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인지 인정받지 못하는 불운함까지 지니고 있다.
여러 여자를 전전하면서도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이상주의자.
어찌 보면 억압적이고 숨막히는 30년대의 경성과 가장 이질적인 인물은 그가 아니었을까?
날개를 단 채 훨훨 자유로운 세상으로 달아나길 꿈꿔 온 그에게
1930년대라는 시대와 식민지 조선이라는 공간은,
마냥 답답하고 피로한 제약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랬기에 늘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는, 30년대를 부정하고 있다.
가장 일상적인, 가장 평범한 남자 정인택.
좋은 가문과 인정받는 직장, 뛰어난 일본어 실력.
한때는 소설까지 당선되어 문장력까지 겸비한 그에게 단 하나 부족한 것은,
바로 자신감이다.
어디 내놔도 모자람 없는 그이지만, 천재적인 문우들을 둔 탓에
늘 그들 틈에서 스스로를 숙이고 낮춰야만 했던 남자.
늘 2등만 했기에 1등이 부러웠고, 사랑마저 2등인 현실을 참을 수 없었던 사람.
가장 소심하고 평범한 그였기에, 한순간의 일탈의 파장은 크기만 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오직 하나, 사랑을 탐한 그는, 30년대 속에 잘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특별한 세 남자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매력적인 여급, 권영희.
누군가는 그녀를 자유연애사상에 물든 모던걸에 콜론타이걸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신과 문학적 견해가 맞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벗이라 생각한다.
또 누군가는 소심한 자신을 세심하다 봐 주는 그녀에게 연인으로 다가서고 싶어 한다.
모두가 가지길 원했지만,
결국엔 누구도 그녀의 속까지는 가지지 못했던 여자.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그녀, 에이꼬.
속내 한 번 시원스레 드러내지 못하고 감정 다툼을 하는 사내들 틈에서,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마음을 다독이는 그 여자.
누구도 놓지 않고 손에 쥔 그녀는, 30년대를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극은 세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치정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읽기엔 1930년대라는 시기가,
식민지 조선 중의 경성이라는 공간이,
그리고 그 속의 지성인들이라는 캐릭터가 답답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만 한 것일까, 하는 의문점이 물음표로 다가온다.
그들의 청춘이, 젊음이 기쁘고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거란 느낌이 확신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자꾸만 생각을 곱씹게 된다.
경성에서 가장 화려하고 모던한 공간인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
일본 백화점을 본딴 옥외 인공정원이 주는 그 생경하고 이질적인 느낌이 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다.
가장 일본적이고 모던한 공간인 미쓰코시 옥상 카페에서 신문을 읽고 고히를 마시며 그들은 카페 여급의 안부를 묻고, 새해 인사를 나누며, 불면증을 공유한다.
끊임없이 일본어와 영어와 불어를 뒤섞은 대화를 나누고, 일본에서 건너온 문학잡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지만 그 대화는 마냥 공허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들이 때때로 말하는 혼네, 가짜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그들이 스스로를 지식인이자 작가, 지성인이라 말해도 조선의 청년들이기에 2등일 수밖에 없다.
박태원의 취중진담처럼 조선 1등이 세계 1등일 수 없는, 어떻게 해도 식민지 조선 청년으로밖에 보일 수 없는 그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쓰고 먹고 마시는 것뿐,
어지러운 세상에 대항할 힘도, 의지도 없는 그들이기에
아프고 쓰린 본심은 감춘 채 딱딱한 얼굴로 웃음을 보일 뿐이다.
작가는 자기 작품에서 맨얼굴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그 작품 속에서조차 자신을 관찰자로 둔 채 의식적으로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박태원.
허랑방탕하고 난잡하게 연애나 즐기며, 친구들의 주머니를 털고 다니는 듯 보여도 어떤 말이 진실이고 진담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상.
누구를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관심 있는 사내가 누군지, 정말 그를 존중하는지 헷갈리게 세 남자 사이를 줄타기하는 권영희.
그들 모두 자신의 속마음을 여실히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연애도, 그들의 감정도,
세 가지 시선에서 각기 달리 보이는 정인택의 음독자살미수 사건도,
쉽사리 진실이 뭔지 속 시원히 밝히기 힘들다.
어쩌면 모든 것이 진실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고도의 계산적인 각본일 수도 있는,
본인들만이 알 수 있는 진실.
그 진실이 세 사람의 입을 통해 박태원에게 전해진다.
그렇기에 이상과 인택, 영희는 한 번도 무대 위에서 마주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박태원을 통해서만, 박태원과의 대화와 만남을 통해서만 자신을 증명한다.
자신의 감정과 일상을 드러낸다.
이 순간조차 박태원은 철저히 청자의 입장을 보여 주기만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지 못한 채, 말들을 공중 위로 내뱉고 만다.
작품 속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자살미수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지만,
그것이 아쉽거나 안타깝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사각관계의 진실을 쫒는 것 외에도 자미난 점들을 무궁무진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 7막 중 각기 막이 시작할 때마다 스크린 속을 흘러가는 장면들.
마치 무성필름을 보는 듯한 재미를 주는 그 장면들.
미쓰코시 백화점 정경을 드러내기도 하고, 당시 경성 풍경을 보여 주기도 하고,
원고 청탁 리스트가 뜨기도 하고, 당시 가계부나 물가가 보여지기도 하며,
30년대 풍속사를 보는 것 마냥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막이 시작할 때마다 지지직거리며 울려나오는 음악들이란...
잡음이 섞인 구식 레코드판 소리가 30년대 경성 한복판, 미쓰코시 옥상 위에서 그들과 함께 고히를 마시는 듯한 생생함을 불러일으킨다.
깍듯이 격식을 차리는 듯하면서도,
서로의 속내를 읽으려 건네는 말과 말 사이의 뼛조각을 찾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말과는 달리 숨길 수 없는 그들의 표정도 참으로 자미나다.
지금과는 다른 언어와 단어의 생경함 속에서 당시의 기분을 느껴 보는 것도 새로운 일 중 하나이다.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 속에서 30년대를 느낀다.
당시 지식인들의 패배의식, 자조감과 모멸감, 우월감과 열등감, 그리고 끝없는 허무.
이 모든 게 잘 짜여진 극본 안에서 농밀하게 여물어 있다.
그 속에 배우들 역시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레 녹아들어가 있다.
그 시대, 그 인물처럼 보이게끔 말투며 동작 하나하나까지 세심한 배려가 들어 있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정말 30년대 경성 바닥을 휘젓고 다닌 모던보이, 모던걸로 느껴질 정도다.
잘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처럼, 잘 짜여진 극 속을 거침없이 오가는 배우들의 몸짓에 눈길이 절로 쏠린다.
그래서 이 작품은 보는 것만큼 듣는 자미가 탁월한 연극이다.
관객의 촉수를 톡톡 건드려 반응하게 하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스스로 재미를 찾게끔 만드는,
뭔가 생각할 꺼리를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때문에 1930년대 3부작의 마지막 편이 궁금해진다.
<조선형사 홍윤식>까지 치면 근대 4부작으로 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 매력적인 4인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다시금 그들의 다과상 앞으로 바짝 다가앉아, 내밀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싶다.
그래도 청춘이기에...
그들의 청춘과 문학, 삶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다.
이들과 함께 뜨겁고 쓴 고히 한 잔 앞에 두고, 함께 울고 웃고 싶다.
그렇게... 그들이 살아낸 우울하지만 치열했던 1930년대를 조금이나마 느껴 보고 싶다.
그들의 깃븐 청춘에 인사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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