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모든 것 - 플레이DB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재창작한 <레이디 맥베스>는 1998년 국내 초연 이후부터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공연되었다. 1999년 당시에는 서울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등을 수상하며 그 권위를 입증한, 그야말로 수작이다. 그 후에는 폴란드 콘탁 페스티벌을 포함한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일본으로부터 초청되어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8년에는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설문조사에서 관객이 선정한 ''최고의 연극'' 1위에 꼽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깊숙이 탐구하여 표현해내는 거장 한태숙 연출가는 이미 <레이디 맥베스>를 통해 꾸준한 호평을 받아왔으나 이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바로 이번에는 <레이디 맥베스>가 창극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몽유병으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어가는 맥베스 부인을 궁중의사 전의가 치료한다. 맥베스 부인은 그가 유도하는 최면 속에서 부당하게 왕권을 찬탈하고 매일 매일을 불안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살인을 저지른 맥베스도 예외는 없다. 그는 자신의 축하연 중 죽은 정적들의 허상을 보며 공포에 떤다. 한편 맥베스 부인은 남편으로 하여금 왕을 살해하게 했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자신이 파멸에 이르렀음을 고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공연장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궁금증을 유발하는,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무대였다. 경사가 있으며 간극이 고르지 않은 계단과 비스듬한 벽은 죄의식으로 사로잡힌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불안정한 상태를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그 정확한 용도에 대해서는 공연이 시작하고서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쓰임새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고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불규칙적인 높이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이를 즐거워하는 마녀들의 모습은 혼이 빠진 상태로 앉아있는 맥베스 부인의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고, 심지어 어떤 때는 계단의 뒤로 가 머리만 내밀어 맥베스 부부를 옥죄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연극으로 공연될 때부터 줄곧 얼음, 흙, 밀가루와 같은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활용해 인물들의 심리와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왔다. 그래서 무대 오른쪽에 위치한 비스듬한 벽의 용도도 오브제들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이번 창극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오브제들의 쓰임이 한층 더 과감해졌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오브제는 숯을 이용한 물감이었는데, 시종들은 벽과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판에만 오로지 자신들의 몸을 의존하여 물감으로 덩컨 왕의 초상을 그린다. 그들은 무거운 물성을 지닌 짙은 색 물감을 덩어리째 벽에 바르며 마치 맥베스 부인의 내면을 더욱 둔탁하고 어지럽게 휘젓는다.

*자세한 내용은 http://artmconcert.com/220898382409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재창작한 <레이디 맥베스>는 1998년 국내 초연 이후부터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공연되었다. 1999년 당시에는 서울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등을 수상하며 그 권위를 입증한, 그야말로 수작이다. 그 후에는 폴란드 콘탁 페스티벌을 포함한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일본으로부터 초청되어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8년에는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설문조사에서 관객이 선정한 ''최고의 연극'' 1위에 꼽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깊숙이 탐구하여 표현해내는 거장 한태숙 연출가는 이미 <레이디 맥베스>를 통해 꾸준한 호평을 받아왔으나 이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바로 이번에는 <레이디 맥베스>가 창극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몽유병으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어가는 맥베스 부인을 궁중의사 전의가 치료한다. 맥베스 부인은 그가 유도하는 최면 속에서 부당하게 왕권을 찬탈하고 매일 매일을 불안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살인을 저지른 맥베스도 예외는 없다. 그는 자신의 축하연 중 죽은 정적들의 허상을 보며 공포에 떤다. 한편 맥베스 부인은 남편으로 하여금 왕을 살해하게 했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자신이 파멸에 이르렀음을 고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공연장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궁금증을 유발하는,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무대였다. 경사가 있으며 간극이 고르지 않은 계단과 비스듬한 벽은 죄의식으로 사로잡힌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불안정한 상태를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그 정확한 용도에 대해서는 공연이 시작하고서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쓰임새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고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불규칙적인 높이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이를 즐거워하는 마녀들의 모습은 혼이 빠진 상태로 앉아있는 맥베스 부인의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고, 심지어 어떤 때는 계단의 뒤로 가 머리만 내밀어 맥베스 부부를 옥죄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이디 맥베스>는 연극으로 공연될 때부터 줄곧 얼음, 흙, 밀가루와 같은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활용해 인물들의 심리와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왔다. 그래서 무대 오른쪽에 위치한 비스듬한 벽의 용도도 오브제들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이번 창극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오브제들의 쓰임이 한층 더 과감해졌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오브제는 숯을 이용한 물감이었는데, 시종들은 벽과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판에만 오로지 자신들의 몸을 의존하여 물감으로 덩컨 왕의 초상을 그린다. 그들은 무거운 물성을 지닌 짙은 색 물감을 덩어리째 벽에 바르며 마치 맥베스 부인의 내면을 더욱 둔탁하고 어지럽게 휘젓는다.

이처럼 미술적 측면에서는 상징성이 큰 오브제를 사용했다면 음악적 측면에서는 크게 국악 사운드, 국립국악원 연주자들, 그리고 가수들의 소리의 조화를 통해 창극이라는 장르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구현했다. 연주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극의 성격을 소리로 들려주는 낮은 음역대의 콘트라베이스였다. 비록 서양 악기이지만 가야금, 피리, 북과 같은 국악기와 타악기 사이에서 이질감 없이 극 속으로 스며들었다.

가수들 측면에서도 변화된 부분이 보였다. 바로 연극에는 없었던 도창이다. 도창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염경애 명창이 맡았으며 그녀는 극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인으로서 작용한다. 실제 그녀가 하는 역할은 굵직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주인공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평과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소리시종 박진희의 정가를 포함해 맥베스 부인을 끊임없이 압박해 오는 데는 마녀들의 소리도 있다. 그들은 맥베스가 오기 전에는 ‘맥베스 만세, 곧 왕이 되실 분’을 여러 번 반복하고, 맥베스가 왕이 된 후에는 ‘맥베스 만세, 이제 왕이 되신 분’을 강약을 조절하며 외친다. 이들의 소리는 맥베스 부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쫓는, 커져만 가는 죄의식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레이디 맥베스 역을 맡은 국악인 정은혜의 창은 맥베스 부인의 복잡한 심리를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막이 오른 직후 많은 사연과 감정을 한가득 품고 있던 맥베스 부인의 모습부터 막이 내리기 전의 속죄와 죽음의 순간까지, 그녀의 표정은 노래와 가미되어 살아있는 레이디 맥베스를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권력에 눈이 멀어 파국으로 향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과정을 관객들의 눈앞에서 생생히 증언하는 것이다.

극의 작품성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에는 ‘안무’도 있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안무는 참신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배우들은 각기 다른 동작을 하지만 그들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몸의 움직임이 추상적으로 다가오지만 이내 관객들은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 긴장감 넘치는 서사 속에서 안무가 주는 메시지를 알게 된다. 바로 안무를 통해 맥베스 부인의 복잡한 심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시작 부분부터 나타난다. 혼령들은 모두 머리를 맞대고 돌기 시작한다. 그러면 조명에 비친 세 번째 혼령의 머리가 두 혼령의 몸 사이로 보인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이는 심리극이라고도 불리는 <레이디 맥베스>의 분위기를 맥베스 부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캐릭터들을 통해서도 형성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이내 이들은 홀로 남아있는 맥베스 부인의 곁으로 간다. 모두 검정색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달리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흰색 옷을 입은 맥베스 부인은 그렇게 어둠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게 된다.

창극 <레이디 맥베스>에서 배우들의 신체적 동작은 너무나 신비롭다. 마녀, 전의, 시종, 그리고 뱀마저 맥베스 부인과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때론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때론 그녀를 둘러싸며 진실을 위해 계속해서 그녀를 추궁해온다. 특히 극의 후반부에서 뱀의 역할을 맡은 이형훈 배우의 몸동작은 상반신 탈의를 통해 맥베스 부인을 압박하는 과정을 더욱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려낸다. 이렇게 처음에는 흩어진 음악, 미술과 등장인물들은 점차 한 곳으로 수렴해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레이디 맥베스의 양심의 문을 수없이 두드린다. 그 에너지는 관객들에게도 전이된다. 우측 벽이 점점 흰 도화지를 잃어갈수록, 배우들의 호흡이 가팔라질수록, 몸동작이 격렬해질수록 관객들의 숨소리 또한 들쑥날쑥해진다. 그리고 어느덧 레이디 맥베스와 함께 죄의식으로부터 도망치고, 끝내 속죄하는 우리를 발견한다.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을 맞이해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그의 작품들이 무대에 많이 올랐다. 그 중에서도 <레이디 맥베스>는 인간의 어두운 면과 한국적 정서, 정확히 말하자면 창극만이 줄 수 있는 비감한 감정을 음악, 미술, 안무, 무대, 등 다양한 방면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을 탐하다 파멸에 이른 맥베스 부인의 이야기를 담은 <레이디 맥베스>는 공교롭게도 현 시국과 많이 닮아있다. 한태숙 연출가는 연습공개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안하면서 상실감마저 느껴지는 현 시국이 권력에 대한 과한 탐닉은 결국 종말을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과 닮아있다.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많은 공감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이어서 맥베스 역을 맡은 정동환 배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에서라도 주체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한 욕망, 탐욕에 대한 경계가 우리 작품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와 함께 정동환 배우는 이전에 <레이디 맥베스>를 공연할 때는 숭례문 화재가 났다고 덧붙인다.

그렇다. 어쩌면, 아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의 삶은 ‘희노애락’ 중 ‘노’와 ‘애’를 피해갈 수 없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쉽게 답하지 못하는 질문들 속에서 선을 넘는 과한 탐닉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한 정동환 배우의 말이 스쳐지나간다. 이처럼 <레이디 맥베스>는 현실과 공연의 연관성에 대해, 나아가 우리는 과연 공연이 끝난 후 무엇과 함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혹자는 공연은 현실과의 관련성이 먼 단절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로든 스탭으로든 관객으로든 공연의 ‘일원’이 될 가치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이는 몽유가 아닌 현실임을. 그런 의미에서 창극 <레이디 맥베스>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더 놓치면 안 되는 공연이었다. 긴 설명이 없이 이것으로 창극 <레이디 맥베스>, 더 크게는 공연의 의의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나 싶다.

[출처] 몽유가 아닌 현실, 창극 <레이디 맥베스>|작성자 아트엠콘서트

더 자세한 내용은 아트엠콘서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artmconcert.com)

ㅠㅠㅠ

정말 멋진 예술작품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다루는 레이디 맥베스가 얼마나 설득력있게 느껴질지 궁금했는데 매우 만족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