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화된 연극의 형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1회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의 참가작 중 하나이다.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일본인이 철수하면서 두고간 임업회사를 관리하던 이중생이라는 사람이 그 회사를 완전히 불하받고 제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이런저런 수를 쓰다 사기를 당하고, 가진 재산마저 몰수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걸 모면해보고자 이중생이 변호사와 작당하여 이런저런 모사를 꾸몄는데, 실행하던 중 이래저래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면서 망해버렸다...라는 이야기 되겠다.

어쨌거나 기본적으로는 코미디.
이 작품에서 웃음을 주는 코드는 약간 과장되어 있는 인물들의 연기, 이중생의 의도와는 점점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구도, 마치 시처럼 운율을 맞춰 사정없이 쏟아내는 빠른 박자의 대사 등이다. 이 중에서 이야기는 이중생을 죽고 살리는 부분까지 가야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니, 그 전까지는 대사와 과장된 연기가 포인트가 된다. 그래서 마치 약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느낌과 비슷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넘어지거나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대사를 하지는 않으니 완전한 슬랩스틱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보다는 과장된 걸음걸이, 시조를 읊는 듯한 대사의 운율 같은 것은 마당놀이에서 보던 것과 더 비슷해보인다.
그래서인지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가한 작품이지만 폭소를 터뜨리거나 정신없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내내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웃으면서 보는 작품에 더 가깝다. 그리고 결말까지 가면 뭔가 심각해지는 분위기 마저 연출된다. 그리고 그 점이 조금 불편했다.

이중생이 등장하기 전까지 연극의 첫머리는 사실 그다지 재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들은 지금 시대에서 웃음을 낼 수 있는 코드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랬던 연극이 이중생의 등장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타기 시작하여 끝무렵으로 가기 직전까지는 내내 불필요하게 무게 잡는 일 없이 코미디 연극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으로 보였다. 이중생의 무대를 압도하는 얼굴에서의 카리스마와 상반되게 과장된 연기와 말투는 보는 내내 재밌었고, 보는 것만으로도 웃긴 변호사나 작은 몸짓 대사 하나하나마저 신경 쓰며 유머를 전달해주려 하는 큰딸과 사위는 이중생 못지 않은 작품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분장 마저 작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마치 액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차림으로 이중생의 아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영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같은 결론이라도, 같은 의미라도 충분히 너무 무겁게 분위기를 가져가지 않고서도 전달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그 타이밍에 그런 차림의 아들이 어색하게 돌아와서 직접 그런 식의 대사를 쳐야 됐을까. 예전에 한국 코미디 영화를 보면 잘 웃기다가고 꼭 마지막에 감동의 눈물 코드를 넣는 바람에 어색해지곤 했었는데, 이번 '살아있는 이중생각하'가 비슷하게 잘 나가다 마지막에 괜한 진지 코드를 넣어 어색해져버렸다.
이 작품이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가한 것이라는 전제 조건을 빼고 보았다면 어땠을까. 코미디라는 틀에 가둬두고 보지 않을테니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래도 마지막 그 아들의 등장은 어색했을 것 같다. 코미디가 아니라는 점을 넘어서, 그 앞까지 이어왔던 작품의 전반적인 틀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 세대가 어떻고 미래 세대가 어떻고, 그런 무거운 주제라 하더라도 차라리 끝까지 비슷한 어조로 이끌어갔다면 좀더 작품에 집중하여 그 메세지를 전달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주제가 무겁다고 보여주는 방법까지 무거울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좀더 유연한 접근이 아쉬웠던 셈이다.

사족을 좀 붙이자면...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을 자주 보는 편이지만, 사실 이 극단의 작품이 나에게 완전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연희단거리패의 작품을 망설임 없이 고를 수 있는건 작품이 어떻던간에 배우들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역시 그 중에서도 가장 최고였던 배우는 큰딸을 연기한 하지은 씨다. 작은 몸짓, 표정 하나 허투루 하는 법 없이 최선을 다하기도 하고, 그런만큼 실수가 보이지 않을뿐 아니라, 인물의 소소한 점까지 전달해줄 수 있는 배우다(물론 이 분을 중심으로 연극을 봤기 때문에 유독 그렇게 보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_-;).
주연 이중생 역의 이승헌 씨나, 이중생 부인 역의 배미향씨, 변호사 역의 홍민수 씨, 그리고 '코뿔소'에서 인상적인 연출을 보여줬던 오동식 씨까지,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을 볼 때 드문드문 보았었던 배우분들은 한 무대에서 같이 보니 반갑기도 하고 그렇더라. ㅎㅎ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는 진정 살아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나를 건드린다.

그 명성 그대로...
예상했던 만큼 짜임새와 배우들의 호흡이 완벽했던 연극.

국어 교과서에 나와서
한 번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교과서에 나온 희곡 원본은 무거운 코미디였던데
슬랩스틱이 대세라고 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