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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이었어요. 예전에 같이 일하던 형과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던 도중에 그 형이 제 가방 안에서 꺼낸 [삼등병]입장권을 보더니 풋 하고 웃더군요. 보여주려고 해서 보여준 게 아니라 그때 저는 뭘 찾을 게 있어서 가방 안에 있는 잡동사니를 식탁 위에 끄집어 내야 했죠. 공연이고 영화고 자주 보다 보니 가방마다 입장권 천지입니다. 전에는 쌓이기 전에 가방 정리를 미리미리 했는데 요즘은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 한계에 다다르면 되는대로 분리해서 봉투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아놓고 맙니다. 영화 표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공연 표는 보관하고 있죠. 영화 표는 은행 볼 일 볼 때 겸사겸사 꺼내서 한꺼번에 분쇄기로 갈아버리기도 합니다. 각종 영수증도 함께요. 영수증 쪼가리는 한도끝도 없이 쌓이는것같아요. 카드영수증 같은건 아무데나 버릴 수도 없고 은근히 처리하기 성가시죠.



공연 표는 버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간직하고 있던 표를 다시 꺼내보는 일도 없으니 일일이 철하는것도 귀찮더군요. [삼등병]은 그 형이랑 만나기 며칠 전에 관람했던 연극이었습니다. 그때 가방 주머니에 들어있던 표는 [삼등병]외에도 작년에 본 공연까지 개중없이 널부러져 있었죠. 공연 전단지도 몇 장 있었는데 그 형은 [아가씨와 건달들]전단지를 보더니 예전에 예비군 갔을 때 진구랑 예비군 훈련장에서 무려 고기를(!) 구워 먹었던 일화를 말해줬습니다. 진구가 지금처럼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을 당시에 이천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에 훈련을 받으러 갔는데 진구도 왔나 봅니다. 진구가 그 근처 출신인가 봐요.



그 때는 진구가 [마더]나 [비열한 거리]를 찍기 전이었으니 인지도가 낮았던 때죠. 그래도 예비군 훈련장엔 연예인이 왔다고 삽시간에 퍼졌고 그 주인공이 진구이자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고 합니다. 다들 그게 누구냐? 며 예비군들 사이에서의 연예인에 대한 환호는 금세 사그라들었고 진구는 다행이(?) 예비군 훈련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받으며 일행과 무리없이 섞일 수 있었다는 훈훈한 과거담이었습니다. 그 형은 걸러걸러 아는 사람을 통해 예비군 훈련장에서 다른 일행과 함께 진구랑 합석하여 고기를 구워먹었다고 했는데 저는 진구를 직접 대면한것보단 어떻게 예비군 훈련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지가 하도 신기해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사전에 친구들끼리 약속을 하고 각자 준비물을 챙겨와 점심시간이 되자 일제히 버너며 부탄가스며 고기, 야채 등을 꺼내 야유회 분위기를 만들었다지 뭐예요. 추억 만들려고 별 짓을 다 떠네요. 그냥 퇴소 후 밖에서 사먹으면 될것을. 요즘은 예비군 훈련 방식이 엄격하게 바뀌어서 그전처럼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판이었죠.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 산 타고 삽질하고 땀 나고 줄 맞춰야 하고... 요즘은 많이 짜증나요. 비오면 판초 입고 훈련하고 초여름이나 그해 예비군 마지막 차수인 11월 입소로 날짜가 지정되면 개고생 하다 와야 합니다. 산이라 11월만 되도 되게 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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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 문외한인 그 형이 [삼등병]을 알리 없었는데 입장권에 적힌 제목만 보고도 웃었으니 그냥 제목 자체가 웃겼나 봅니다. 웃기긴 하죠. 전 이 작품 제목 떠올릴 때마다 한번씩 웃습니다. 어리숙한 느낌도 들고 바보같아 보여서 웃기기만 해요. 일등병도 아니고 이등병도 아닌 [삼등병]이라니 이건 뭔 말장난인가 싶었거든요. 제목만 보고도 쉽게 군대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란걸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예매처에 올라온 공연광고를 눌러보니 예상대로 군대 이야기 맞더군요.



작품 자체에는 관심 없었어요. 저도 현역 출신이라 군생활이 어떤지 아는데 군대 얘기란 어딜 가나 뻔해요. 군대 얘기는 남자도 듣기 싫습니다. 자기 얘기 할 때나 재밌지 옆에서 듣고 있으면 하품 나오죠. 군대 얘기는 아무리 다르게 만들려고 해도 [삼등병]처럼 보편적으로 호소하고자 할 때는 다 거기서 거기에요. 공감은 쉽게 하지만, 하다 못해 차인표가 복무 시절 찍은 졸작 드라마 [신고합니다]같은 작품에서도 공감대는 형성되지만 다루는 태도는 식상할 따름이죠. 재미까지 없는건 아니지만요. 전 [기다리다 미쳐]같은 영화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그러나 군대와 계급이 주축으로 돌아가는 작품을 연극으로까지 보고 싶진 않았어요. 군인이나 군대가 극의 일부 배경으로 나오면 모를까 이렇게 전면승부하는 작품들에서 독자적인 개성이나 매력은 찾아내기 어렵더군요.



이 작품을 관람한건 성기웅 극작, 연출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기웅의 문체로 군대 얘기를 풀면 그래도 뭔가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작가에 대한 신뢰가 관람 동기를 자극했던거죠. 그래서 진짜 오랜만에 대학로의 후진 극장에서 공연 관람을 감행했습니다. 괴롭더군요. 그 쾌쾌한 냄새,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간, 콩나물 시루처럼 옆사람과 밀착해서 봐야 하는 고역스러움, 공연 직전까지 처마 없는 밖에서 동동 구르며 대기해야 되는 상황, 오래전부터 넌덜머리를 내던 대학로 소극장 분위기에요. 전 이런 낙후된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할 때 어떤 낭만도, 연극적 희열도, 문화적 성취감도 느낄 수 없습니다.



[삼등병]은 누가 대학로 소극장 공연 아니랄까봐 공연 5분 전에 관객을 입장시켜서 한 10분은 늦게 시작하겠거니 생각했는데 금세 객석이 다 차서 정시에 막을 올렸습니다. 이날 덥기는 했지만 밖에서 기다릴만 했어요. 그러나 대기장소 없는 학전블루 소극장 공연을 비오는 날 관람하러 갔다면 객석으로 통하는 지하 계단에 옆사람 눈치 봐가며 빗물 뚝뚝 떨어지는 우산 들고 서있어야겠죠. 그 생각을 하니 요즘 같은 장마철엔 정말 갈데가 못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로에 신축한 깨끗한 공연장도 많아져서 요즘은 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열악한 극장 시설이 더 많은 현실이죠. 하루 빨리 개선 좀 됐으면 좋겠어요. 객석만 늘릴 생각 말고 앉아서 보는 사람의 편의사항도 고려해줘야 공연에 대한 호감을 늘릴 수 있습니다. 좌석 수 욕심을 몇 개 줄이고 팔걸이와 객석 구분만 해줘도 극장 환경 개선의 절반은 해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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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웅 극작, 연출의 연극 [삼등병]의 정식 초연은 2006년 연우소극장에서의 공연이었습니다. 이번 학전블루 소극장에서의 공연은 프로무대로는 두번째 프러덕션이죠. 요즘 식대로 표현하자면 시즌2인 셈입니다. 그 전에 [삼등병]은 2002년 12월, 성기웅의 모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실습공연으로 처음 선보인 바가 있고 이듬해엔 벨기에 리에쥬에서 열리는 20회 대학연극축제의 행사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뒤 2004년에는 국내 유수의 연극제에 연속 초청되어 수시로 소개됐지만 그때까지 이 작품은 연극제에서만 공개됐습니다. [삼등병]이 성기웅의 공식 연출 데뷔작입니다.



2011년 공연은 연우소극장에서 선을 보인 2006년 공연과는 정서적으로 많이 다릅니다. 초연 때는 1970년대 생들의 군대 이야기를 다뤘다면 5년 만에 재공연 되는 이번 공연은 1980년대 생들의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성기웅이 1974년 생이니 초연은 연출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많이 들어갔던거고 옛 정서로 재단했다면 재단장한 이번 공연은 본인의 군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뒷세대에 대한 조사가 더해져 작품 전체적으로 물갈이 했다고 보면 됩니다. 군대 이야기가 다 거기서 거기라도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애들이 모인곳이라 나이에 따른 세대차는 발생할 수 밖에 없죠. 군대 이야기도 유행을 타기 마련입니다. 다만 그 유행을 접목 했을 때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관객층이 협소하다는게 문제지만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급과 갈등, 군대의 아이러니한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이 몇이나 되겠어요.



1980년대 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정확히는 1980년대 초에 태어나 20대 초에 입대한 장병들의 이야기입니다. 초연 때 다루던 나잇대에서 5~6년 정도 년차가 벌어지는 뒷세대를 다룬거죠. 군소재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루는 육군이 배경이고 군대 소재에서 다룰 만한 갈등과 고민은 전부 다 다루려고 신경쓴 흔적이 보입니다. 너무 넘쳐서 탈이었죠. 당연히 화자가 되는 우리의 주인공은 작가를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문과 출신의 섬세하고 유약한 이등병으로 처음엔 군생활에 적응 못해 고문관으로 취급 받다가 어느 정도 적응하자 자신이 파수꾼이라도 된것마냥 군대의 악습을 바꾸려고 노력하며 혼란에 빠집니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연상되지 않나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윤진원은 일병에서 상병으로, 상병에서 병장으로 진급하면서 서서히 바뀝니다. 그 역시 획일적인 군대 분위기에 물들어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인간이란 걸 보여주고야 말죠. 이런 아이러니한 이해관계 속에서 군대의 모순과 인간의 밑바닥에 깔린 복잡다단한 심리를 파고든것도 이런 얘기에서 끝까지 끌어안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군대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인물 설정과 갈등 관계를 다루었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유머 요소도 놓치지 않고 있어서 작품 자체에 새로운건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재밌고 웃깁니다. 특히 3장은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후반부를 제외하곤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장면들이 줄을 이어요. 남녀불문하고 먹힐 만한 효과였죠. 중요한 건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관점이 진지하고 확신이 있어서 마냥 웃으면서 볼 수 많은 없는 장면들도 많고 웃음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처절한 생존방식과 구차하고 비굴한 상하관계에서 오는 굴복과 굴욕이 연민을 자아낸다는겁니다. 가볍지만 얄팍하진 않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각각 주어진 배역에 쏙 들어맞는 대사도 일품입니다. 비속어와 군대 용어가 적절히 섞였는데 구사 방식이 자연스럽고 귀담아 들을 만한 구절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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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구성으로 나눠진 작품인데 각 장이 바뀔 때마다 주인공 윤진원의 계급이 올라가고 그에 따른 인물관계도도 바뀝니다. 당연히 윤진원의 배역 성격도 계급이 올라감에 따라 정형화 된 군인 상으로 형상화 되는데 그 사이사이로 플래시 백을 통해 윤진원의 군복무 고난기가 상세하게 펼쳐지죠. 이등병 땐 그저 눈치 없고 어리숙하기만 하고 일병 땐 어린 시절 동창을 선임으로 모시며 추억을 공유하지만 친구는 하극상에 후임 구타 등 군생활에 적응을 너무 못해서 모든 걸 체념한듯 말이 거의 없습니다. 상병 땐 여유있고 병장 말기 땐 갓 입대한 취사병이 탈영하는 바람에 골치를 썩입니다. 이런 일련의 군생활 2년 동안 윤진원은 많은 일들을 겪고 그로 인해 후반엔 동일 인물이 맞나 싶게 달라집니다. 그리고 작품은 그가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에 설득력을 잃지 않으면서 극의 긴장감과 인물들간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루했다는 1장이 저는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끝까지 1장 처럼만 갔다면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을거에요. 꼭 군대 얘기 다루면서 이념이나 군체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할 필요가 있을까 싶군요. 이런식으로 은유적으로 풀어도 좋을것같은데 말이죠. 조태기와 윤진원이 작품 내내 보초 서면서 극중극을 하는겁니다. 그리고 깊은 교감과 우정을 나누면서 따뜻하게 끝내는거죠. 그러나 성기웅의 의도는 제 바람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그는 1장을 남은 장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복선으로 깔아놓습니다. 그러나 생략과 암시가 극과 밀접하게 붙질 않아서 오히려 1장이 전체 극 분위기에선 돌출돼버리고 말았습니다.



1장은 야간 초소를 함께 서는 이등병과 말년 병장의 겨울밤을 그리고 있는데 귀청 따가울 정도의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윤진원의 관등성명이 끝나면 바로 극중극으로 이어집니다. 알고 보니 제대를 두 달 앞둔 조태기 병장은 연극배우 출신이었고 윤진원은 학교 다닐 때 연극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둘은 사회에 있을 때 각자의 세계에서 이강백의 [파수꾼]에 출연한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정서적인 유대감도 전혀 없던 둘은 철저히 계급으로 구분되지만 이내 지루한 야간초소 근무지를 무대라 가정하고 [파수꾼]을 연습하며 교류합니다.



이강백의 1974년작인 희곡 [파수꾼]은 사실주의적 정치극으로 각광 받았던 작품으로 조작된 사실에 기초한 맹목적인 믿음과 획일적인 구조를 비판한 우화극입니다. 성기웅이 [삼등병]을 통해 그리고자 했던 세계관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죠. 그리고 이런 세계관은 군대 문화에 반감을 가졌던 윤진원이 결국은 군대 문화에 저항력을 상실했다는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스며들어가는 모습을 암시하는 극정 장치로 쓰입니다. 결정적인 대사는 조태기의 대사에서 드러나죠. 조태기는 이등병인 윤진원에게 "군대생활이란 건 말이야, 하자면 한 편의 연극이야. 그래서 한 번 이 군대라는 무대에 올라서면 중간에 마음대로 내려갈 수가 없지. 근데 그 연극이 좀 길다. 24개월."라고 말해주는데 이 말을 윤진원도 선임이 돼서 이등병에게 똑같이 합니다. 이때 1장에서 병장을 맡았던 조태기 역의 이현균이 이등병을 맡아서 배역 분리로 인한 극적 재미가 배가됐습니다.



[파수꾼]의 일부가 극중극으로 쓰이는걸 보면서 전 이 작품이 다른 군대 얘기와는 좀 다르게 전개될거란 기대를 가졌어요. 조태기와 윤진원이 철저하게 상상에 의지해 행복하게 연극놀이를 하는 장면이 추운 겨울밤의 묘사와 멋지게 조화되면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이현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도 한몫했죠. 몽환적이었고 근사한 장면 설정이었어요. 그런데 1장을 끝으로 더이상 이런 기특하고 대견한 극적 장치는 없더군요. 몰입도도 높았고 다층적인 의미를 분포하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할 여지도 많이 줬으며 결정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이란 가장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극이었지만 극이 후반부로 가면서 뜻을 파악하기에 불분명한 제목 만큼이나 지나친 암시와 생략으로 마무리가 흐지부지된 감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나약한 면과 체제 속에서 붕괴되는 한 개인의 모습을 담아내기엔 인물의 감정 폭이 너무 들쑥날쑥이라 감정이입을 반감시킵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이 작품이 15세 관람가인데 욕설 남발을 넘어서 수위가 생각보다 셉니다. 중간에 플래시 백으로 처리된 군대 내 성폭력 부분에서 뒷모습으로 처리되긴 했지만 구강성교를 묘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나갔죠. 거기다 윤진원이 헛구역질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암시 치곤 고약했어요. 이렇게까지 해서 윤진원의 군대 수난기를 그려낼 필요가 있나 싶더군요. 이 장면은 장면 자체가 워낙 자극적이라 집중은 확 됐지만 그 바람에 극의 전체적인 균형감은 살짝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종문과 윤진원의 관계, 이종문의 심리를 읽기에 강력한 한방은 됐겠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군대 자체가 호모섹슈얼리틱한 요소가 있고 이 작품 역시 그걸 끌어안고 가는데 군대 얘기를 다룰 때 꼭 동성애적인 풍경이 필수요소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거 없이도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제가 소속됐던 경찰청 전경대 같은 경우는 2년 이상 지냈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군대 내 성폭행 사건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모든 군대가 성희롱이나 성폭행이 있을거라고 추측하는것도 무리에요. 없는데는 깨끗하게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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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의 성급한 처리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준수한 극본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데뷔작인 윤진원 역의 김태훈은 데뷔작이란것이 무색하게 극을 잘 지탱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조태기 역을 맡았고 3장에서 박기언 상병을 맡아 끝내주는 연기를 보여준 이현균은 다음 작품을 꼭 챙겨보고 싶을 정도로 주목할 만한 호연이었습니다. 조태기와 박기언 외에도 1인 다역을 맡았는데 모든 배역이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이현균의 시시각각 변하는 캐릭터 해석 능력이 너무 감칠맛 나서 이 연극을 더욱 흡족하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진짜 이런 배우를 연극 무대에서만 보기는 아깝다니까요. 출연 배우들이 모두 현역 출신인데 다들 적역을 맡았고 실제로 군인같습니다. 배역 나잇대와 그닥 차이 안 나는 실제 나잇대라 그런지 배역에 대한 감정이입도 훌륭합니다. 극이 끝나고 인사할 때 배우들이 관등성명으로 자신의 소속 부대를 말하며 경례를 하기 때문에 이들의 군대 이력을 알 수 있죠.



작품을 보는 내내 군시절을 떠올리면서 봤어요. 자연스럽게 연상 작용이 되더군요. 사실 이 작품의 군대 내 분위기와 제가 복무했던 전경대와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극 분위기 자체는 남의 나라 얘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작품이 그리는 군대는 전방 산골짜기에 위치한 전형적인 육군의 모습이고 제가 있었던 대대는 시설 좋고 쾌적한 서울 어느곳의 전경대였죠. 계급 갈등도 겪어 봤고 겨울에 입초도 서봤고 비오는 날 교통경찰 하느라 장대비를 쫄딱 맞기도 했지만 몇개월 지나지 않아 군생활이 금방 풀려 남들에 비하면 진짜 편하게 지냈습니다.



그래도 군대는 군대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시절 느낌들이 되살아 났고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인것처럼 생생했습니다. 2년 복무기간이었지만 아직도 그 시절에 겪었던 짜증나는 일화들이 또렷합니다. 일기를 열심히 쓴 편이라 기억을 더 잘 하는 편이죠. 그만큼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추억으로 많이 남았고 자살하는 군인들의 반대지점에서 순탄하게 군생활을 마쳤다고 할 수 있지만 너무도 특이하고 괴이하고 불합리했던 이 생활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현역 출신의 대한민국 작가들이 군생활 얘기는 한번씩 짚고 넘어가고 싶은가봐요.



작품을 보고 이틀 뒤에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이 터졌습니다. 기분이 묘하더군요. 며칠 내리 김상병에 관련된 기사를 찾아봤어요. 죄질은 나쁘지만 심적으로 어느 정도 이해는 가더군요. 군대 내 사건사고가 뉴스로 접수될 때마다 21살 때 입대하여 꼬박 2년 2주를 버티던 그 시절을 반추하게 됩니다. 군생활 초기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고 정신적으로는 그보다 더하게 피폐해졌는데 군대에서 사람 정신 핵가닥 가는것도 한 순간이구나 싶더군요. 제대했을 때 아무 사고 없이 예정일에 복무를 마친것에 제 자신이 뿌듯했어요.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건 제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모함으로 전출가고 타 부대에서 전출오고 순간의 실수로 눈 밖에 나 자기 보직에서 해임되고 다른 보직에서 적응하느라 바쁜 대원들을 보면서 내 자리 지키지 위해 급급했던 일들도 떠오릅니다.



너무 많은 인간군상을 겪으면서 사람 자체에게 질려버렸고 그렇게 타 지역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공유했던것도 처음이었죠. 저 역시 [삼등병]의 윤진원처럼 어느 순간 그런대로 잘 적응해서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지만 만약 군복무 말기 때 윤진원이 겪은것처럼 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아찔해요. [삼등병]은 모두가 피해가고 싶은 최악의 상황을 주인공에게 전부 몰아줌으로써 압축적이고 보편적인 의미 전달에 무게 중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예비군 된지도 오래지만 제가 이 작품에 감정이입하며 보게 된것도 충분이 이해되는 상황과 배역 설정에 있었기 때문이죠. 후반부 처리만 좀 더 다듬으면 보다 괜찮은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것입니다.



아마도 늘어난 극을 감당 못하고 시간에 쫒겨 성급하게 마무리한 탓으로 보입니다. 원래 이 작품은 90분 공연 예정이었습니다. 예매처에도 전부 그렇게 명시돼있죠. 그런데 실제 공연시간은 5분, 10분도 아닌 30분이나 불어나 있었습니다. 관람 전에 공연 시간에 대해 물어보니 관계자가 연습하면서 분량이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은게 탈이었어요. 추후 재공연을 한다면 아깝더라도 주제에 꼭 맞는 소재만 선택했으면 좋겠군요.



- 프로그램은 발행하지 않았지만 6단으로 접힌 전단지 내용은 읽을만합니다. 예매처 정보 보다 훨씬 요긴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극 초반 다소 지루하게 루즈한 감이 없지않았지만 배우님들의 연기가 무척 뛰어나고 군인이 아닌 어리고 미숙한 청춘들.
사실과 다른것을 말하지 못하던 인물이 변해가는 모습등이 정말 좋았어요..

다시 공연이 올려지길 바랍니다 :)

플레이디비 공연초대 이벤트에 당첨되어 관람했습니다~
여자들은 모르는 군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동생이 지금 군생활을 하고 있는지라 더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여자로서 공감하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군생활 했던 남자들은 공감가는 부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후반부에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윤진원 역할의 배우님은 데뷔무대라고 적혀있던데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애쓰셨겠더라고요.
또 1인 2역을 하시는 배우님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남자들만의 세계를 살짝 엿본 기분이 들었습니다.^^

초반부에는 약간 진행이 지루한 면이 있었으나
극의 중반부에서 부터는 재미있었습니다.
결말에서 반전 효과를 노린 듯 하나 그닥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