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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먼 거리를 갔는데 왔다 갔다 한 시간이 아깝지않아요. 배우분들 연기는 두 말하면 잔소리일듯. 감동적입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배우들의 연기내공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주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세일즈맨은 죽으나 배우 이순재는 영원하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에디터 조주영




하나의 일을 60년 동안 한다는 것, 특히 ‘광대’로 60년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심정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바로 식지 않는 열정과 꾸준한 노력. 강산이 6번이 바뀌고도 남을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은 한 광대가 있다. 바로 배우 이순재이다. 평소에 사실적이며 자연스러운 연기와, 성실함, 그리고 후배를 향한 애정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는 그는 올해 탄생 60주년이 아닌, 연기인생 60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를 존경하는 후배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한 연극을 기획했다.




기념 공연을 위해서 배우 이순재가 택한 작품은 바로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왜 <세일즈맨의 죽음>이었을까? 우선, 공연을 기획한 후배이자 김태훈 배우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이 기념사업이 개인 잔치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창작극 보다는 작품성과 문학성이 있는 고전을 택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우 이순재의 개인적인 바람도 있었다. 그는 기념 공연이라면 기억될 만한 공연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미 3번 정도 공연을 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 작품이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작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컴퍼니그리다>




연극, 배우의 예술




아서 밀러는 테네시 윌리엄즈와 함께 세계대전 이후 미국 희곡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극작가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기에 세계적인 고전을 무대에 올릴 때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배우 이순재가 이번 작품을 선정한 이유가 위와 같다면 그는 자신의 연기인생 60주년 공연인 <세일즈맨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기서는 그의 연극에 대한 철학을 볼 수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연극은 배우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이 그 어느 것보다 ‘원작’에 충실하여 ‘배우’ 중심의 연극이 되길 바랐다. 이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도 연기예술의 본령인 연극을 잊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해왔던 그이기에 그리 놀랍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자료제공: 컴퍼니그리다>




우선, 이전의 공연에서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는 정확한 역할 분석과 더불어 과장된 몸짓 없이도 가능한 거부감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이는 배우로서 소위 ‘롱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삶의 무게를 상징하는 두 짐을 양손에 힘겹게 들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입장 장면부터 중간에 숨을 고르러 멈춰서는 장면까지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젊은 사장 하워드와 아들 비프에게 버려지는 장면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또한 인상 깊다. 이렇게 사소한 부분들에서 그의 연극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료제공: 컴퍼니그리다>




배우 이순재의 연기인생 60주년을 기념한 만큼 그에게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일 것이다. 캐스팅은 배우 이순재가 직접 하였는데, 그 조합이 뜻 깊다. 그는 비록 자신의 기념공연이기도 하지만 선생과 제자가 한 무대에 서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기에 세종대에서 가르친 제자들을 캐스팅했다. 그는 매일 저녁 학생들과 대학에서 연극연습을 하며 평소에 “교육은 뛰어난 학생들 뿐 아니라 부족한 학생들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는데, 이 공연을 통해 ‘사제동행’을 다시 한 번 실천한 것이다.




텍스트의 무대화




아무리 배우의 연기에 초점을 맞춘 공연이라 하여도 등장인물의 심리와 극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다른 몇몇 요소들이 눈에 띤다. 먼저 무대의 뒤쪽에 위치해 있는 윌리 로먼의 집이다. 윌리 로먼의 집은 지붕이 없으며 집의 구조가 철제 뼈대로만 나타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윌리와 가족들의 심리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윌리의 집은 뉴욕의 고층 아파트들 사이에 초라하게 놓여있다는 지시문처럼,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느낌을 줘야 할 집은 윌리 로먼 가정에서는 한없이 소외되고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제공: 컴퍼니그리다>




또한, 로먼가와 객석 사이의 무대 앞부분은 <세일즈맨의 죽음>의 극적 구조를 잘 보여준다. 아서 밀러는 시간적으로는 사건이 진행되는 서사 중간 중간에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킨다. 과거 회상은 열심히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가득했던 과거이기도 하고, 로먼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행복한 나날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윌리에게 과거는 감추고 싶은 사건이고, 비프에게 과거는 크나큰 상처를 안겨준 아버지의 외도에 멈추어 있다. 이처럼 과거회상의 장면은 작품에서도 그리고 무대에서도 희미한 경계 속에서 전개된다.




교차하는 장면들 사이로 두드러지는 것에는 음향도 있다. 윌리가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들리는 자신과 외도를 저지른 여자의 웃음소리는 공연장 전체를 에워싸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마치 윌리와 비프를 쫓아다니는 지울 수 없는 과오이자 상처임을 나타내듯이 말이다. 반대로 극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허전한 분위기는 나일론 기타와 플루트 선율로 표현된다. 플루트 소리가 상징하는 것은 윌리의 아버지이자 윌리가 가정을 이루기 전에 경험한 행복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렇게 인물들의 심리와 당시 사회를 대변하는 대본의 상징적 요소들은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답게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청각적으로 구현된다.




역설적 가능성




<세일즈맨의 죽음>은 아서 밀러의 자전적인 성격이 깃든 작품이다. 미국은 1929년에 경제 대공황의 결과로 수많은 가정이 해체되고 실직자가 생겨난다. 이 작품에서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희생양은 대표적으로 윌리 로먼과 첫째 아들 비프로 그려진다. 가족애가 풍부했던 과거와 달리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갈등은 깊어져만 간다. 그리고 더욱더 첨예해진 갈등의 정점에는 비프의 절규가 있다. 비프는 자신의 인생을 ‘싸구려 인생’이라고 칭하며 아버지도 같으니 현실을 직시하라고 울부짖는다. 이와 달리 윌리는 끝끝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자료제공: 컴퍼니그리다>




배우 이순재의 연기인생을 기념하는 기쁜 자리와 비교해 <세일즈맨의 죽음>은 쓸쓸한 작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이야 말로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 이유는 윌리 로먼과 배우 이순재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윌리와 형 벤이 바라본 성공은 과정에서의 편법이 정당화되며 타인에 의해 측정되는 인기가 중요시되는 허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윌리 로먼의 다른 면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비프의 눈물을 본 후의 윌리이다. 이 눈물은 상처뿐인 그들의 심리적 간극 속에서 역설적으로 아서 밀러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간애, 유대, 포용의 ‘가능성’을 꽃피운다.




우리는 이 점을 박병수 연출의 연출 의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윌리 로먼을 자본주의 구조에서 생산요소로 전락하는 하나의 부속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한 인간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자신의 생명조차도 내놓을 수 있는 한 아버지의 따뜻한 영혼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작품을 관람하실 관객분도 윌리 로만이 얼마나 따듯한 인간인지 한 번 들여다보셨으면 합니다.”





<자료제공: 컴퍼니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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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의 보험금과 씨앗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윌리는 마지막까지 아들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윌리와 배우 이순재 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는 새로운 연기도전을 하는 동시에 짬을 내어 동료와 후학의 공연장을 찾는다. 혹 그는 윌리 로먼에게 건네받은 ‘씨앗’을 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 연극 또는 연기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고찰하고 행동하는 그의 모범이야 말로 윌리 로먼이 심은 씨앗이자 윌리가 거두고 싶었던 훗날의 열매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점 때문에 배우 이순재는 더더욱 이 작품, 그리고 윌리 로먼에게 애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는 연기인생 60주년을 돌아보며 초심을 유지하되 후대에게 남겨줄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윌리 로먼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와 한 무대에 섰던 젊은 후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일즈맨은 죽었지만 배우 이순재는 영원하다.’ ‘작은 거인’ 배우 이순재는 연극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소중하며 특별한 이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는 자신의 롱런 이유를 ‘한 번도 정상에 서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자만하지 않으나 자신감 있는, 비굴하지 않으나 겸손한 배우이다. 그는 우리에게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환한 등불 같은 존재이다.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윌리 로먼의 마음을 지닌 진정한 어른이 연극계뿐만 아니라 한 세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밝혀주기에 그래도 참 다행이다.

[출처] 세일즈맨은 죽으나 배우 이순재는 영원하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작성자 아트엠콘서트

더 자세한 내용은 아트엠콘서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artmconcert.com)

긴 시간이었지만 재밌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