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아서일까..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생각해볼 메시지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습니다.

극단 여행자의 연극을 좋아해서 매 공연마다 관극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최효정 연출님의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을 봤었는데, 당시 제게는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는데요 ^^;;
이번 작품은 지난 작품에 비해 이해도도 쉽고 여백의 미가 한껏 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공간의 여백, 대사의 여백 등등 :) 배우분들도 너무 멋지셨어요.
아무쪼록 앞으로도 멋진 작품 부탁드립니다!

한 부부가 여유로움과 한가로움과 조용함을 즐기기 위해 찾은 그들에게 복병이 있었다.
유일한 이웃인 노의사......
첫 날은 반가운 이웃이였고, 둘째날은 이상한 이웃이였고, 나중엔 그 부부 공간의 침입자가 되었다.
그렇게 매일 어김없이 오후 네시가 되면 벨은 울린다.
문을 안 열어주면 열어줄 때까지 벨을 누르고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린다.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며 잠시 행복했다가 오후 네시를 생각하며 걱정스러워했고,
단란하게 점심 식사를 하다가도 오후 네시를 생각하며 두려워했다.
오후 네시가 그렇게 공포스러워질 정도가 된 그들 부부.
급기야 남편은 그 노의사가 죽이기까지 한다.

저 부부는 왜 노의사에게 한 번도 집 방문을 거절하지 못 했을까?
그의 방문이 부담스럽다고,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말하지 못 했을까?
사태를 그 지경까지 몰고 갔을까?
노의사에겐 반감이 강한 그들이 왜 정상적이지 않은 노부인에겐 마음이 끌렸던 것일까?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아무런 감정도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같은 노의사와
비록 정상인보다 많이 모자란 듯하지만, 싫고 좋음을 분명히 표현할 줄 할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고 느낄 줄 아는 노부인이 묘한 비교를 이룬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 노의사는 왜 항상 그 시간에 그 부부의 집을 방문한 것일까?
단순하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아내에게서 그 시간만큼은 자유롭고 싶어서?
아내가 잠을 자는 시간이라 아내의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라서?
그 의사는 정말 죽고 싶었던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난 그들의 입장이 될 수 없었다.
잔잔한 의문을 남기는 공연이였다.

배우분들 연기를 잘 하시더라구요!

사람들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협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 &#160;<오후 네시> 중에서

여행자의 신작 소식에 반가우면서도 아멜리 노통브의<오후 네시>란 소리엔 기대감 반, 우려감 반이다.
대사의 묘미를 만끽할 수도, 서서히 파고드는 &#160;섬짓함과 상상하지도 못했던 반전 가득한 결말이 매력적이지만 단조로운 이야기구조라 무대에서는 어떻게 보여질지 궁금해서다.
그간 여행자만의 스타일로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기에극단여행자만의 스타일을 입은 아멜리 노통브는 어떨지 왠지 다시 읽고 싶어진다.
<마릴린먼로의 삶과 죽음>에 이은 극단 여행자 조최효정의 두번째 작품이다. &#160;(아쉽게도 극단 여행자의 신진 연출가 조최효정의 &#160;<마릴린먼로의 삶과 죽음>을 보지 못 했다.)
처음 오후 네시로 만나게 될 새로운 연출가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도 생긴다.&#160;
극단 여행자하면 양정웅이 먼저 떠오르면서 <한여름밤의 꿈>이나 <십이야>에사 보여준 원작과는 다른 연출과 해석에 &#160;<환>이나 <상사몽>, <페르귄트>에서 보여준 이미지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시도가 독특해서 좋아했는데 새로운 연출가는 어떤 해석을 또 어떤 연출을 내놓을지 궁금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극단 여행자만큼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아멜리 노통브다.
누구나처럼 나도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이란 작품을 통해 노통브를 알게 되었고, 살인자의 건강법을 통해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오후 네시, 앙테크리스타, 두려움과 떨림, 왕자의 특권 등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그녀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오후 네시는 잔인함과 유머가 탁월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1990년대 프랑스 문학의 독특한 현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벨기에 출신의 젊은 작가에게 파리 프르미에르상 수상을 안겨준 작품이자 &#160;어떤 하나의 행동에 주목하게 되고, 적이라 불릴만한 인물이 등장한다는 노통브 소설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객석에서 무대를 볼때, 오른쪽에 2개의 의자와 난로 하나, 다용도로 쓰일 수 있는 소품하나가, 왼쪽에는 침대가 있다.
너무나 단순해서 모든 것을 상상으로 대체해야 하는 무대에 소설 속 인물과의 싱크로율 97%를 보여주는 단 네명의 배우가 노통브의 소설 오후 네시를 연기했다.

복잡한 도시 생활을 접고 호젓한 시골 마을의 마음에 &#160;꼭드는 집에서 행복한 전원 생활을 꿈꾸는 에밀과 줄리엣 부부에게 단 하나뿐인 이웃이 매일 같은 시간에 그들을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명이 만들어낸 그림자에 의해 웃는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그로테스크한 얼굴의 배우들이 내뱉는 시골 생활에 대한 느릿한 감상평으로 시작하는 이 무대의 처음이 좋았다.
처음엔 블랙 코미디나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았는데 갈수록등이 오싹할 정도의 호러물을 보는 것 같은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이 이 장면속에 다 들어간것 같아서 말이다.

오후 네시.
언제부터인가 공포처럼 다가오는 그 시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무례한 이웃의 뻔뻔한 행보는 행복하고 평온한 일상을 꿈꾸던 에밀과 줄리엣을 변화시킨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도덕, 배려, 양심, 예의가 힘을 잃고, 점점 변해가는 자신들의 모습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상상할수도 없는 이웃과의 만남은 그들이 겪는 혼란만큼이나 흥미로웠다.
도통 알수없는 베르나르댕이란 인물과 의도없는 그의 방문과 그 방문에 대한 부질없는 몸부림이 극의 전반을 차지하고, 극의 후반부를 넘어서 드디어 에밀이 베르나르댕의 방문을 저지하게 되면서 극의 의도가 드러난다.
자살하려는 베르나르댕을 불면증에 시달리던 에밀이 구하게 되고(무대에서는 생략되어졌지만 자신의 죽음을 저지한 이유로 병원비를 요구하는 등 변함이 없는 베르나르댕의 뻔뻔한 모습에) 자신이 왜 그를 구하려 했는지 고민에 빠지게 되면서 에밀의 생각,가치관의 혼란은 정점에 이른다.&#160;
그리고 마침내 새벽 네시 베르나르댕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극은 타인에 의해 드러나는 낯선 자신의 모습이 결코 에밀과 줄리엣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문득 나의 낯선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소심하다고 믿었던 나란 인간 뒤에 도망치는 버스를 향해 내뱉던 욕짓거리와 순간순간 울컥 거리게하는 배려없는 타인의 비양심 행동에 취해졌던 내모습 말이다.
나는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들 낯설게 느껴지는 나와의 만남은 그래서 불편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란 인물이 두려워졌다.
내가 알고 있던 내가 진정 나일까란 생각이 들면서 베개를 들고 있는 내모습이 무대 위의 에밀과 오버랩됐다.


"타인이란 존재는 자신과는 다른 존재, 상처를 입히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타인이란 존재가 없으면 진정한 자신을 인식할 수 없다. 타인이 없다면, '나는 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연출의 글은 이 작품속에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고스란히 보여주며 나란 인간을 돌아보게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 순간 내가 에밀이 되어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꾸 대입하게 되어 말이다.

무대 위에서는 아멜리 노통브의 촌철살인적인 문체들도, 단순화 된 이야기로 그들의 심리적 변화를 &#160;심도 있게 만끽할 수 없었기에 에밀의 마지막 행동은 힘을 잃었지만 연출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 만큼은 느낄수 있었다.

성가실 정도로 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네시 이 작품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