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봐도 즐거울 연극

너무 좋은 연극이었습니다

츠쿠다 노리히코 원작인 연극 <허물>은 일본 색채가 강한 코미디극입니다.

점점 젊어진다는 설정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올리게 하지만 연극을 보면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벤자민 버튼이 시간이 지날수록, 즉 어려질수록 성숙해보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연극 <허물>에서 점점 젊어지는 아버지는 어쩐지 점점 더 철이 없어집니다. 아들이 바람핀 여자의 엉덩이를 치며 희롱하는 모습을 보이고, 얼마나 젊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상조회사 직원과 잠을 자기도 합니다. 내가 아내 게이코였다면 온 집안을 이혼서류로 도배해도 모자랄 만큼 환장할 만한 상황이 이어지는데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중간에 함께 우쿠렐레를 치며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신은 뮤지컬 같아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아내 미츠코를 연기한 김유진 배우분은 노래도 잘 하시고 몸에 군살이 하나도 없어서 보는 내내 감탄했는데 지금 보니 뮤지컬 배우셨네요!

마지막에 허물들이 다같이 보여 냉우동을 먹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한 명이 고춧가루를 뿌리자, 다른 한 명이 ''''너 때문에 난 위에 구멍이 뚫렸어''''라는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제 자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현재의 나와 대학교 1학년 때의 나, 고등학생 때의 나, 중학생 때의 내가 만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치고받고 난장판을 만들며 싸우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무서워질 정도였습니다. 허물의 주인공들이 현재의 상황에 대해 과거의 자신을 탓하는 것을 보니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되더군요.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사는 건 물론 과거의 영향이 있겠지만, 너무 과거의 탓만 하고 있던 건 아닐까 하고요.

연극 중간에 상조회사 여직원 분의 속옷장면에서 한 번 헉하고, 20대 아버지의 엉덩이씬(?)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 원작이라 일본연극에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14세 이상 관람가 연극에서 작품의 흐름과 크게 상관없는 그러한 노출이 필요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20대 아버지가 전날 밤 같이 밤을 지낸 상조회사 여직원에게 ''''이 애(아들)랑도 한 번 해줄래요?'''' 라는 식의 대사도 정말 놀랐습니다. 중간중간 이게 14세 관람가인가 싶은 대사들이 몇 개 있어 매번 놀라게 되더군요. 연극 속 아버지가 바람기 있는 캐릭터인 설정이라지만 아들한테 너가 바람핀 여자 엉덩이가 괜찮다고 말하는 대사 등은 짜증이 났습니다.

일본 관련 영화나 드라마, 애니 등을 평소에 보았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모두 일본어 이름이고, 호칭이나 야구 팀 등도 다 일본이름입니다. 야구 팀 정도는 우리나라 야구팀 이름으로 했으면 더 잘 다가왔을 테지만, ''''미츠코짱 그 때 LG가 졌어'''' 라고 하면 아무래도 이상했을 테니 통일성을 위해 바꾸지 않은 듯 합니다.

조그만 소품까지 준비되어있던 무대가 기억에 남습니다. 빛바랜 벽지들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침대 옆 탁자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나 주방소품들, 냉장고에 붙어있던 구겨진 종이들이 정말 사람 사는 집 같아 정감있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연극은 막을 내렸지만 다시 연극이 올라온다면 나이가 있고 일본 영화/만화/드라마 등을 통해 일본 문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 본다면 더더욱 재미있게 볼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나이가 어려질수록 나의 5년 전 등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문화에 대해 일면식이 없다면 연극을 100% 즐기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관람평이 적고, 소극장 판의 좌석후기 등도 없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봤던 연극입니다. 좌석은 비지정석인데 20분 전부터 선착순으로 입장하였습니다. 왼쪽 사이드와 중간 블럭이 있습니다. 다행히 재밌게 즐기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극본, 연출, 연기 모든 것이 다 좋았던 연극!

일본적 감성이 많이 녹아있는 극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