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살은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좋은 극이다. 회식 자리에서의 대화, 간호사에게 수작을 거는 대사 등 흘려들을 법한 대사들 하나하나가 극적하고 힘있어 놓칠 수가 없다. 여자친구와 에로틱한 분위기에서 농어회를 직접 떠 먹으며 "인간에게는 항상 남의 살이 필요한 법"이라고 말한다던지, 사냥이 스포츠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죽이는게 스포츠면 살인자들은 모두 운동선수냐?"라고 말하는 ''의사친구''의 말, 살면서 먹은 고기가 수천마리이니 죽으면 화장해서 찹쌀에 비벼 산새들 먹이로 주라고 하는 어머니, "고도로 성장한 사회에서 고도를 기다리다가 고도(비만)로 죽는구나" 같은 대사를 자유자재로 치는 주인공, 섹시하다!

1,2층으로 나뉜 무대도 색달랐고(주인공이 막마다 1,2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정말 ''살'' 빠지셨을 듯. 게다가 런닝머신도 뛰어야 하고.) 층을 가로지르는 독수리의 발톱이 어머니의 병실 침상이 되었다, 첫눈이 오는 나무가 되었다 여러 색깔을 가진 오브제가 된 것도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영상을 사용한 것은 밋밋해보였다. 무대를 굉장히 넓게 사용하는 것에 비해, 영상은 배경화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 아쉽다. 무엇보다 한치의 오차도 용납치 않는 외환딜러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박력있는 군무를 사용한 부분이 가장 좋았다. 언제나 런닝머신을 뛰어야 하는 고된 삶,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낙오되어버리는 삶. 백마디 대사보다 하나의 이미지로 가슴깊이 이해된다.

근데 왜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욕망을 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지영 소설에서 튀어나온 90년대 운동권 여자 선배 같은 캐릭터가 필요한가. 마지막에 유선이 담배 피우는 클리셰 너무 싫었다. 원작 희곡의 여주인공인 안나도 사랑과 정의를 외치는 식상한 캐릭터이긴 했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외환 딜러로 일하고 ''탱고'' 입사를 위해 신우와 경쟁하는 마지막 구도가 좋았는데, 이 공연의 유선은 딱 첫눈을 맞으며 "이건 너답지 않아 - 나다운게 뭔데?"를 칠법한 첫사랑 그녀처럼 생겼다. 인류를 구원한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사랑인지 욕망인지가 왜 이토록 중요할까? 욕망과 사랑은 구별해야 할 만큼 명백하게 다른 감정인가?

생각할 거리도, 볼거리도 많은 재밌는 연극이었다. 마지막에 사랑, 사랑 타령만 좀 덜 했어도 훨씬 인상적이었을텐데!

"살" (작,연출:이해성 출연:최연식, 강애심, 김동완, 이소영, 박수영, 유병훈, 김지현, 안재현, 이대희, 홍철희, 박현덕, 송재연, 강혜련, 이지혜, 이현정, 장원경, 신장환, 유민경, 이송이, 최준수, 이운호 제작:남산예술센터, 극단 고래 극장: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별점:★★★★★) 무대는 중간에 긴 벽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나눠져 있다. 이 벽이 배우들의 등퇴장로와 영상의 스크린으로 사용된다. 무대 맨 앞에는 런닝머신이 놓여 있다. 고액연봉의 외환 딜러 신우의 얘기이다. 현대의 물질만능 주의의 욕망이 비대한 신우의 살로 표현되고, 신우를 통하여 헤지펀드, 인터넷의 익명성과 파급효과, 슬픈 가족의 아픔, 과거의 사랑등 여러가지 얘기를 서사적으로 잘 풀어나갔다. 자칫하면 복잡하고 중구난방이 될 수 있는 얘기를 일괄적으로 잘 표현한 이해성 연출님의 글솜씨와 연출력이 돋보인다. 주인공을 맡은 김동완 배우님의 연기는 이 극을 이끌고 나가는 핵심인 만큼 중요하고 잘 소화하였다. 런닝머신을 달리며 피보나치 수열의 숫자를 외치는 모습이 현대인의 자본주의와 끊임없는 욕망의 욕구를 잘 나타내고 있다. 비중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뚜렷한 발음의 강애심 배우님과 욕을 하지만 그 욕으로 많은 웃음을 주는 박수영 배우님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았다. 영상의 표현도 좋았다. 많은 얘기를 효과적으로 잘 연출한 수작이다.

고도로 발전된 사회에서 고도를 기다리다 고도로 죽는사회. 누군가의 희생을 생각하지 않고 돈으로 신을 대체한 사회. 신은 어디로 가고 언제 오는가. 그리고 내 욕망은 어디서 온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게 된 연극이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불꽃은 무엇이였을까요.

살짝 이해하기 어렵긴 했으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어 의미가 있었습니다

초연 떄의 미적지근함을 날려 버린 작품!
현대 세태에 대한 풍자와 극 자체의 재미가 적절히 섞여 있었다.
배우들의 호연도 좋았고...

잠깐 등장했지만 강애심 씨의 존재감은 역시 후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