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법정'', ''무림파혈전'', 못 본 ''괴물이 산다'',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에 이어 이번 시리즈를 잇는 연극, 혜화동1번지 5기동인의 2013년 봄페스티벌 ''국가보안법'' 시리즈, 다섯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정보 전달의 의미가 강하거나 연극이라기보다는 경험단 발표회 같은 느낌을 주었던 앞선 작품들, 그리고 코믹과 의미가 모두 있었지만 약간의 무리수도 보였던 또다른 작품, 이렇게 먼저 보았던 3개의 작품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이번 ''레드 채플린''은 언뜻 생각하면 떠오르는 연극의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머리를 싸매지 않고서도 보면서 이해와 감상을 함께 할 수 있는, 편안한 작품이기도 했다.

시작은 찰리 채플린의 꿈 속이다.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였던 캐릭터들이 꿈에 나타나, 당시 매커시즘 때문에 고민하던 채플린에게 영화를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혹시라도 숨어있는 붉은 것들을 매커시에게 넘기고 혐의를 벗자고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아마)황금광시대 같은 그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대사들을 보며 채플린 스스로가 바로 저게 바로 붉은 것이고 미국에 위협이 되는 사상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또다른 채플린은 그저 현존하는 사회 현상을 비틀어 웃음을 만들고자 한 것일 뿐이라고 변명(또는 해명?)한다. 그러면서 비판하고 풍자하여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는 곳을 찾고자 어디론가 떠난 여행에서 일제시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고통받던 신불출이라는 조선의 만담가를 만나, 이 사람과 함께 해방 이후의 남한과 한국전쟁 이후의 북한을 다니며 공연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을 갈구한다.

결국 크게 두 가지의 축이 있는 셈이다. 채플린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며 미국에 위협이 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보는 부분과 신불출을 만난 채플린이 지난 100년 정도에 걸친 한국 역사를 되짚으며 제대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때는 언제 어디에도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부분이다. 실제 매커시즘에 얽혀 미국을 떠나야했던 채플린에 대한 이야기와 이 땅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교차점이 작품 속에서 아주 잘 맞물려 있어 번갈아 나오는 채플린과 신불출의 이야기가 서로 끊기는 느낌도 없이 잘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채플린의 영화에 대한 그들의 비판과 해명이 과거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도 않고, 신불출의 불행하였던 일생이 북한 체제에 대한 이야기로만 읽혀지지도 않는다. 결국 60년전 미국과 50년전 남북한에서 있었던 일들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소재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이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국가보안법과 이 법이 제한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으면서도, 과거 있었던 여러 유사한 실례들을 보여주며 ''과연 지금은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다는 점이었다. 너무 노골적인 접근은 도리어 반감을 부르기 마련, 어차피 이 사안에 대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정보와 사례는 연극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게 훨씬 많지 않겠나. 국가보안법에 대한 연극을 볼 때 관객의 입장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상상력이 담긴 내용과 은유를 통한 비판일테고, 바로 ''레드 채플린''이 그런 부분을 보여주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채플린이 자신의 작품들에 등장시켰던 많은 은유들에 대하여 ''그저 현실에 비추어 웃음을 주려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하려고만 하는 것이었다.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변화''보다는 ''웃음''에만 중심을 두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표현의 자유라는 것을 제한할지 말아야할지 결정해서는 안되지 않나.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무제한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고, 그런 관점에서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를 통하여 미국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풍자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접근이 옳았다. 왜 그 상화에서 채플린이 자신의 영화에 대하여 ''사실은 그게 아니라...''라는 말로 변명을 해야 했을까.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 ''변명''을 해야만 하는가...

아쉬운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채플린과 신불출이라는 인물들을 통하여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은근하게 묘사한 이 작품, 꽤 괜찮았다. 게다가 채플린을 소재로 하는 작품답게 장면장면마다 웃을 수 있는 부분들도 상당하니, 한 시간의 공연 시간이 매우 빨리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채플린의 영화 중 일부분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점 역시 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장점이다.

* 기록...
출연 - 조시현, 조아라, 유명상, 노수산나. 작 - 오세혁, 연출 - 김한내, 제작 - 빠-다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