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영원한...것은 없다고... 사랑도...시한부라고 시니컬해졌던 것 같다... 갑과 을은 항상 상대적 내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신경도 안 쓰이는 가벼운 먼지 같을지도...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좌우할 하나일지도...

이민을 코 앞에 둔 어느 단란해보이는 가정에 남편의 옛 연인(로미)이 갑작스레 들이닥치면서 생기는 사건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40살을 바라보는 또는 넘은 나이에 20살 때 잠깐 만나 가볍게 사귀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왜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았냐고 따지고, 이제 자기가 나타났으니 2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부인을 떠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 여자와 갑자기 마주친 남자(프랑크)는 그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내에게는 존재를 숨기려고 하는데, 그런 남자의 행동이 그렇게 이상해보이지는 않는다. 20년 전 잠깐 만난 이후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지냈던 여자를 바로 기억해낸다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어떤 상황이든 여자와 관련된 일을 아내에게 바로 전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야 여자의 방문을 알게 된 아내(클라우디아)는 처음에 거짓을 말한 남편에 대한 불신이 더해져 더욱 과격하게 반응함으로써 남편의 심리를 더 궁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렇게 더해지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은 각 인물들의 화를 끝까지 끌어올리게 되고, 결국 프랑크로부터 배신 당했다고 여긴 로미가 복수를 위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극이 마무리 된다.

사실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품인지 쉽게 와닿지는 않았다.
이민을 앞두고 있다는 것 외에 프랑크와 클라우디아가 만든 가정은 매우 평온하고 평범해보인다. 그들의 아들인 안디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영 껄끄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티나)를 두고 이민을 가야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압박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 이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로미의 출현에 대응하는 프랑크와 클라우디아의 모습 역시 ''평범''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기억나지도 않는 20년 전의 약속을 지키라는 말에 프랑크는 당황스러워 할 수 밖에 없고, 역시 황당해하면서도 처음부터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남편을 어느 정도 의심하는 것 역시 클라우디아의 당연한 반응이다. 이러하니 이 작품 속에서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그리고 분명히 어딘가 이상한 사람은 로미 하나 뿐인 것이다. 20년 전 잠깐 만난 남자를 굳이 추적하여 찾아온 것도 그렇지만, 기억 나지도 않는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나 그런 뜻이 묵살당하고 난 후 보여주는 그의 복수심과 그 결과는 분명히 ''미친X''가 아니고서야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렇다면 연극 ''과거의 여인''은 이 과거의 여인, 로미가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작품일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서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외국의 경우에도 들어맞는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하였다면 이보다 더 어울릴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만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뭔가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 시간의 흐름을 뒤섞는 방식으로 극을 구성했을까, 안디가 흔적을 온갖 벽에 남기고 다니는게 이민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마지막까지 그들의 집을 바라보며 마치 목격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티나는 어떤 이유로 극에 들어온 것일까. ''로미가 미친X''이라는 점 외에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이런 고리들을 연결할 수 있는 또다른 의미는 짐작하건대 ''기억'' 내지는 ''망각''이 아닐까 싶다. 로미와의 약속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망각했던 프랑크와 그런 프랑크에게 분노하는 로미, 자신이 잊혀지기 싫다면서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다니는 안디, 내일이면 떠나는 남자친구를 기억하기 위해 밤새 집을 지켜보는 티나, 뭐 이런 식으로 연결될 수 있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 것, 더구나 자신은 절대 잊을 수 없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약속과 추억을 잊어버린 사람, 그런 상황에 맞닿았을 때 느끼는 분노는 상식적인 수준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그 분노에서 파생하는 복수 역시 20년 전의 가벼운 약속을 망각했다는 것에 비하여 훨씬 파괴적이고 잔인한 수준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일테고...
결국 이렇게 생각해보면 연극 ''과거의 여인''은 자신을 잊어버린 남자에 대한 여인의 광기어린 복수극, 그리고 여기에 기억과 망각이라는 소재를 얹은 것에 대한 작품이라고 봐야겠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극이 흘러가서인지,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기도 하다.
로미의 미친 것 같은 행동과 말들, 기혼자라면 매우 공감하면서 지켜볼만한 프랑크와 클라우디아가 주고받는 대사, 의외의 곳에서 사건이 꼬이도록 만드는 흐름... 게다가 집 내부로 들어온 로미가 안디에게 하는 행동이나 그 이후의 진정한 복수 장면들도 보통의 연극에서 쉽게 보기는 어려운 것들이라 집중해서 볼만했다.
특히 사건의 선후를 시간에 따라 배열하지 않고, 계속 비틀어가며 보여주는 방식이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가의 의도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하나의 에피소드를 어디에서부터 보여주는가에 따라 그 속의 인물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앞에 지나갔던 장면들에서 왜 그런 행동과 대사가 나오게 되었는지는 다음 장면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도 작품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좋은 요소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배우들의 열연... 정상인 듯 보이면서도 광기가 순간순간 보이는 로미를 완벽하게 연기해난 이정미 씨나 우유부단하면서도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프랑크 여의 한규남 씨도 좋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던 처음에서 점차 의심의 강도를 높여가며 점점 정신이 없어져가던 클라우디아의 흐름을 연기해낸 신현실 씨가 참 인상적이었다. 역할의 대소와 관게없이 언제나 작품의 중심에 있는 듯한 연기를 보여주는 하지은 씨는 말할 것도 없고~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프랑크와 클라우디아의 집과 바깥은 연결하는 현관문, 로미가 처음 들어오는 그 문이 너무 약하게 설치되어서인지 너무 흔들렸다. 극을 보면서 그 장치가 진짜 ''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덜컹커리며 내내 흔들리니 ''문''이라는 생각이 안들면서 자꾸 몰입도가 낮아지는 것 같았다. 간단한 무대장치라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 같다.

* 기록...
프랑크 - 한규남, 클라우디아 - 신현실, 로미 - 이정미, 안디 - 김결, 티나 - 하지은. 원작 - Roland Schimmelpfennig, 번역 - 이원양, 연출 - 심현우. 극단 - 유목민.

오래간만에 정극을 보았다.

과거의 여인이라는 뭔가 비밀스러운 암시를 하고 있는 제목의 연극이었다.

리뷰를 몇개 읽고 가서 분위기를 예상하고 갔다.

스토리는 이사를 준비하던 부부앞으로 남편의 과거의 여자가 나타나

24년전 영원히 사랑하겠다던 약속을 지키라고 이야기하는것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과거의 여자가 나타나면서 부터 이들 부부와 아들은 점점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다 보고나니 약간은 기괴하고 어두우며, 전제적으로는 환타지스럽지만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는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19년의 부부생활이라는 외침은 왠지 의미없이 들리고

남편은 결국은 이 모든것을 청산하려는 단계까지 가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못하며

아들은 아버지 기억속의 여인에 의해 이용당하고 살해당하기 까지 한다.

과거의 여인은 남편(아버지) 마음속의 남아있는 욕구가 상징적으로 나타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겨운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고, 그리고 가족조차도 버리고 싶은 어두운 마음의 딜레마를 나타낸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뭐 개인적으로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관점으로 보일수 있는 연극이기도 하다

무난한 연기와 개성적인 스토리로 잘 짜여진 연극을 본것 같다.

<과거의 여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아를 현대적으로 리메크한 일종의 사랑의 복수극처럼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은 것 같다. 별다른 사랑 없이 습관적인 사는 현대 부부의 모습, 자유 연애가 메데아 복수극처럼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은 호러 무비와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 장면 완전 인상 깊네요 충격.. 티나역 하지은 배우의 흡입력 잇는 서술! 롤란트 시멜페니히와 극단 유목민의 작품을 이제부터 더 눈여겨 보게 될 것 같아요 롤란트의 연출법 되감기와 반복기술은 영화 메멘토가 떠오르게도 하네요! 코믹하면서 동시에 오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