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대학로 극장 동국에서 연극 <만선>을 관람했다.
연극 만선은 미지愛시어터 제작, 김원 작, 정상훈 연출이고 공연시간은 100분이다.
이날 공연의 캐스팅은
아비 역 오세철, 어미 역 지미리, 노인 역 손인찬, 아들 역 김범, 딸 역 이진주 배우였다.
김원의 만선은 동명의 희곡 천승세의 <만선(1964)>과는 다른 작품이다.
2011년에 초연했고 제32회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 연출상, 연기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김원의 만선은 한 가족의 아픔을 코믹하게 풀어낸 비극이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동해의 바다 위에 떠 있는 통통배 위다.
무대 중앙에는 뗏목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나무 갑판으로 되어 있고 구조물 옆에는 타이어가 달려 있고 벽에는 어망이 걸려 있어서
보기에는 뗏목이지만 실제로는 보다 더 근사한 고기잡이배로 설정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갑판 구석에는 화장실도 딸려 있다.

다섯 식구가 고깃배를 타고서 바다 위에 나와 있다.
이들의 허리에는 밧줄이 묶여 있고 다섯 가닥의 밧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바다에 뛰어들어 동반자살하러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죽기 전에 포식하자며 회를 사 왔는데 상한 모양이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서로 먼저 화장실에 가겠다고 다툼이 벌어진다.

할아버지는 치매다. 젊었을 때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면서
정신줄을 놓으면 일본 군인을 죽여야 한다며 가족들을 달달 볶는다.
아버지는 한쪽 손과 다리를 사고로 잃은 장애인이다.
다치기 전엔 미장이로 공사판에서 일했었지만
사고 후로는 술만 마시고 있다. 술에 취하면 가정폭력범으로 돌변한다.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온갖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 오다가 골병이 들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그녀의 낙이다.
아들은 어제까지 형사였다.
가족의 생계에 보태려고 죄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왔는데 그게 들통이 났다.
그래서 권총을 소지한 채 도주 중이다.
딸은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공상을 하는 게 그녀의 일과다.

아들의 뇌물수수 발각을 계기로 가족회의를 한 결과 같이 죽자로 결론이 나왔다.
삶에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니가 먼저 의견을 냈고
붙잡히면 감옥에 갈 것이 뻔한 아들이 그 의견에 찬성을 했다.
반대할 줄 알았던 아버지도 찬성하자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딸을 동행하여 온 가족이 바다로 향한 것이다.
자살 방법으로 익사를 선택한 것은
물에 불기 전에 발견만 되면 그나마 시신이 온전한 상태로
저세상으로 갈 수 있는 깔끔한 방법이라는 아버지의 주장에 의한 것이었다.
아들의 행방을 경찰이 추적 중일 테니 금세 발견될 거라고 생각했고
바다에 빠진 후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서로의 몸을 밧줄로 연결했다.

마지막 장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코믹 가족극이다.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가족까리 아웅다웅하며 다투는 모습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치매에 걸린 노인은 그의 아들을 일본군으로 착각하여 죽이려고 달려드는가 하면
아들은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그 동안 벌였던 악행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다섯 식구 중 그나마 정신이 온전한 이는 딸이었다.
우리 죽지 말고 살자고 가족들에게 계속 말을 걸어보지만 무시당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야무지고 알찼다.
연극 <아부지>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지미리 배우의 연기가 역시 좋았고
실감나는 몸짓 연기를 보여준 이진주 배우와
배역 중 가장 많은 에너지 소비를 해야 하는 아버지 역 오세철 배우의 열연도 돋보였다.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에너지를 쏟아내는 배우들의 열정이 넘쳐나는 작품이었다.

이렇게 전반적으로는 웃음이 가득한 연극이지만
최종 장면에서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며 감정을 반전시키는 묘미가 또한 일품이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알렉산더 카르디날레(Alexander Cardinale)의
<Made For You>가 흥겹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아버지가 ''''만선이다!''''를 외치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웃기고 울리고 묵직한 메세지도 툭툭 던지고 배우들 연기 넘 잘하시고..정말괜찮은작품.. 같이본 분들 너무재밌었다고들...하지만 객석이 너무 헐렁. 좋은작품 좋은배우들인데..관객이 적어 안쓰럽기까지..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힘겨운 생활고에 지친 다섯명의 가족들이 털어 놓는 삶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희비가 교차합니다.비극적인 상황이 일상의 웃음과 어우러진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실제 가족 같은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모두 빛나는 작품이에요.막막하기만 한 현실에 비장한 결심을 하고 나선 이 가족의 항해에서 서로에게 속내를 털어놓게 되면서 상처와 충격이 연속되고 그 속에서 찾게 되는 희망과 절망을 엿볼 수 있답니다.

10월은 제주도 감귤 수확철처럼 온갖 공연이 폭발하듯 한꺼번에 열리는 시기이다. 극장 안팎에서 다양한 거리공연이 한창이다. 매년 호불호는 있지만 늘 화제를 모으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한창인 대학로 역시 다르지 않다. 각양각색의 작품이, 특히 기획작이 벼르고 벼르다 무대에 올라가는 가운데, 초연도 아닌 [만선]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수확이다.


혜화동 로터리 인근 극장 동국은 제작자가 아니어도 대관료가 저렴할 수밖에 없는 극장이다. 일반 건물 지하를 극장으로 변형한 탓에 객석 맨 뒷자리에서는 천장에 가려 무대 후면 혹은 배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객석 단 차이를 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허름한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무대 위 역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듯 대충 얼기설기 얽은 고깃배 갑판이 무대 세트이다. 그 위에 지린내가 역하게 날 듯한 화장실이 덩그러니 있다. 치매 걸린 시아버지, 손발이 잘린 장애인 남편, 뇌성마비 딸, 집안의 온갖 짐을 떠안은 아들, 평생 희생만 한 엄마, 아내, 며느리. 5명은 떨어지면 그만인 바다 한 가운데 작은 고깃배 갑판에 있다.


죽기 위해 배를 탈취한 이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 와중에 마지막 만찬으로 사온 회가, 쓰끼다시(반찬)가 상해 똥오줌이 줄줄 나오는 그 작은 공간은 감옥보다 참혹하다. 지리멸렬하게 살아온, 평생을 행복한 적이 있었나 싶은 ㄱ 가족이 서로 마주해야 하는 그곳은 지옥이나 진배없다.


인물들의 비극을 최대치로 끌어냈으면서도 대사는 찰지고, 연기는 또 슬랩스틱 코미디 톤이다. 인물도 대충 어디서 본 듯하고, 전개며 하는 짓이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는데, 얼추 이 정도면 됐지 싶은 지점을 자꾸만 넘어간다. 관객으로 하여금 ''어? 어?'' 안절부절 못하는 지경까지 밀어붙인다. 하여 보고 나면 웃다가 울다가 하는 지경이 아니라 묵묵하고, 먹먹하다.


저마다 사연들이 있겠지만 가슴 한쪽 구석에 밀어두었던 가족의 시큼한 무엇, 버리지도 버릴 수도 없이 결국 고아가 되어서라도 죽는 순간까지 쥐고 있어야 하는 가족의 굴레 혹은 잡동사니들이 무대 위에 튀어나와 새삼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보는 사람마다 뻔하다고 하면 그렇겠지만, 이런 게 연극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한다. 배역마다 더블 캐스팅이라 얼마나 대단해서 그런가 싶은데, 2시간 가까운 공연 시간도 그렇지만 배우들을 쥐어 짜니 그래야만 한다.

제작비 지원을 받아 무대와 조명을 달리해 좀 더 무대 다운 무대를 꾸밀 수 있는 극장에서 다시 보면 어떨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앞으로 언제 또 보게 되려나 싶으나, 이번이 초연도 아니고, 몇 번 더 무대에 설 만한 작품이다. 외국에 갈 일이 있다면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한국 연극의 코미디이자 비극이고, 동시에 지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최영준, 어머니 이선, 할아버지 정상훈, 큰아들 안두호, 딸 김지수 ? 만선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 외친 말이다! 결코 잊지 못할 한 장면! ? 무대는 배 위. 그러나 그물이 높게 올라 바다를 가리고 있다. 물론 바다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 그곳엔 다섯 명의 가족이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 사고로 손과 다리를 잃은 술주정뱅이 가장. 독실한 기독교 신자지만 대책 없이 사채를 쓰고 온갖 일을 해내는 어머니. 가족의 유일한 희망인 큰아들은 버거운 경제적인 무게에 비리 경찰이 되어 있고 작은 딸은 뇌성마비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 이들이 서로 밧줄에 묶여 자살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 마지막 만찬에 배탈이 나서 화장실 다툼으로 시작된다. ? 어쩜 이럴수있을까?를 말할 정도로 막막한 가족들. 그들은 서로 비난하며 죽고 없어지기를 바라며 살고있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가족이다. ? 다섯명의 배우들의 연기에 홀딱 빠져서 그들의 한마디, 한동작마다 눈과 귀를 기울이며 완전 집중을한다. 아주 비극적인 현실이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상황들이 자꾸 연출된다. 웃음은 터져나온다. ? 그리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들의 대화. 그리고 마지막 장면들. ? 아! 이런 것이 정말 멋진 극이구나! 뭐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오랫만에 멋진 극을 만났다. 대단하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탄탄한 내용을 내공이 깊은 배우들이 연기한다. ? 이 가을 가족을 생각해보고 잘살아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아니 그보다, 대단히 멋진 극에 폭 빠졌다 나왔다. ? 그래서, 강력히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