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사과밭
공사중인 지하벙커
종말을 대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종말을 앞두고 공사비가 부족해 대책을 논의하고
대학교수가 종말을 믿지 않는 딸을 데리고 오지만
지하 벙커는 너무 좁다.
2개월 후 행성 X가 다가오자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며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지하 벙커에 모여든다.
딸을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 박봉인 대학교수,
종말을 믿지 않고 아버지에게 끌려 온 미모의 딸,
미모의 딸을 스토킹하다 다리를 다친 카이스트 출신 천재 과학자,
바람피다 이혼당한 7급 공무원 남자,
공무원과 벙커 공사중 눈 맞은 부동산 재벌 복부인,
삶에 만족하는 사과밭 주인 남자,
꿈인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집을 나갔던
사과밭 남자의 음치 아내
지하벙커의 일부가 무너지자
서로 벙커에 들어가 살겠다고 싸우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행성 X는 지구를 비켜 가고
진지 황당 인생 코믹쇼^^
공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차라리 내일 지구가 종말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 와중에도 기본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그들이
때론 진지하게
때론 코믹하게
극을 이끌어 간다.
나
우리
대한민국
지구
우주를
생각하게 하는 연극
잘 봤어요^^
초중반까지는 지루함을 느끼게 하다가 그 후엔 반전으로 엄청 재밋게 깔깔대면서 봣네요
유명한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들의 욕구는 처음 생명에 대한 욕구에서 마지막 자기실현의 욕구까지 단계별로 진행된다고 말해요. 또다른 심리학자는 그 단계별 진행은 한두단계가 같이 진행하기도 하고 따로 진행하기도 한다고 해요. 그래도 대부분 전제하는 것은 생명의 욕구, 안전의 욕구를 가장 먼저 거론하고는 해요. 외딴 과수원에 모인 사람들도 물론 그 생명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였어요. 이제 곧 종말이 온다는데 그걸 대비해서 사람들은 지하 50미터까지 이르는 벙커를 계획해서 투자했고 투자금이 부족해서 인부들이 도망쳐 버리는 사태가 발생해서 모였어요. 다들 한편으로는 종말이 정말 오기는 오는거야? 라는 마음을 숨긴채, 종말이 오기만 하면 나라도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외출복처럼 걸치고 나왔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공사를 진행시킬까, 벙커가 완성되어서 종말이 오면 어떤 계획과 절차에 따라서 자기 목숨을 구원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나씩 내놔야 해요. 그게 정석일 거에요. 그렇게만 되면 무사히 벙커 안으로 들어가서 목숨을 구출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슬그머니,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벙커에 넣어달라고 데려와요. 그래요 자기 딸이에요. 자기 딸은 종말을 믿지도 않는데, 아빠부터 모여있는 모든 사람이 사이비라고 생각해서 “제발 정신 좀 차려” 라고 말하는데 아빠는 딸을 제발 넣어달라고, 딸만 넣어줄 수 있으면 자기는 빠지겠다고 이야기해요. 아빠는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라지만 규칙을 어기고 슬그머니 자기 욕망을 꺼내 놓았어요. 그렇게 욕망들이 하나씩 솟구쳐 나와요. 복부인은 가방 하나를 꼭 집어넣어야 했고 이 계획을 기획했던 컴퓨터 천재는 종말에 대한 계산과 더해서 사람에 대한 계산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나올 거라는 상황 설정까지 해놓았어요.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꺼냈어요. 그 사이에 초대받지 않은 과수원집 주인의 도망간 아내까지 벙커에 들어가서 살아보겠다고 싸우기 시작해요. 모두가 자기의 욕망을 끌어안고 싸우고 총질하고 아우성 쳐요. 그 모습이 제게는 더 종말 같아 보였어요. 아귀 같이 싸우고 상처내고, 그 사이에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몰래 딸이 원하지 않는 일을 했던게 밝혀지고 자기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지도 않은 임신을 했다고 말하고 그러다가 다시 이합집산하는 모습들. 어느새 배우들은 서로를 향해서 총질을 해대고 자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최후변론처럼 토해내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변명처럼 들릴 뿐이에요. 그리고 연극은 어느 순간 종말에 대한 담론에서 아수라장 같은 무대로 북적거려요.
우리가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쩌면 처음 교수가 자기 딸을 살리겠다는 욕망을 슬그머니 끄집어 낸 이후에, 각각의 회원들이 너도나도 자기 욕망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적어도 공존의 반대말이 멸망이라면, 멸망이 종말의 다른 이름이라면, 배려없는 욕망이 운석처럼 날아드는 장면을 그날이 올텐데의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뜨겁고 즐거웠던 연극, 그날이올텐데 였습니다.
상업적인 광고를 많이 안해서 예술을 추구하는 연극인가 싶었는데 뒤로갈수록 저세상 텐션 ㅎㅎㅎㅎ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뒷부분에 스토리는 정신없이 재미있긴 했지만 다소 산으로 가는 것 같았어요. 그 부분만 조금 정돈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배우들의 내공이 느껴지는 연극이었다. 사실 난 연기에 대해 잘 몰라서 어떤 연기가 좋은 연기인지 잘 모른다. 일단 지금 내 수준에서 좋은 연기의 기준은 ‘자연스러움’이다. 어색한 연기를 보면 내가 지금 연극을 보고 있고 앞에서 사람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면 그들이 연기 중이라는 걸 까먹게 된다. ‘그날이 올 텐데’의 배우들 모두의 연기가 매우 자연스러워서 그들이 연기 중이라는 걸 까먹고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가 그들의 있는 사과 밭에 심어진 배추가 된 느낌이었다..ㅎㅎㅎ (배우들이 관객석의 관객들을 밭의 배추로 비유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다가와 웃음보를 터뜨려주는 이야기 곳곳의 유머도 좋았다. 많이 무거워질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적절한 유머로 그 무게를 가볍게 하고 관객들이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연극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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