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공연 |
lo*** |
2009.06.29 |
76 |
좋은 공연 감사합니다.
작품 너무 좋습니다.
강렬한 인상으로 오래오래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공연 감사해요.
보는내내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배우분들 정말 대단한 연기 감사합니다.
강추입니다.
워낙 마라의 입장에 비중을 더하는 연출이기도 했지만 열흘 사이 <마라,사드>는 더욱 혁명의 열기로 감싸여있었다. 마라의 주장에 동조하는 기운이 강해지면서 사드의 비판(?)은 점점 힘을 잃어가더라. 연출이 조금씩 바뀌어서 관객을 선동하더라니까?! <- ^^
반복관람 하다 보니 처음에 보지 못한 것이 조금씩 보인다.
대강 보였던 배역은 몇 명.
사드는 자신의 작품이라서 극중극과 액자가 구분될 이유가 없고, 마라 또한 집중도가 매우 높은 편집증 환자를 캐스팅해서 그런지 거의 마라에 가깝게 보인다. 이 배우의 인터뷰를 보면 요즘 마라에게 집착을 보이고 있는 듯. ^^ 시몬느는 남편의 바람으로 미쳐버린 여자라 마라에게 굉장히 헌신적으로 잘 하지만 코르데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걸 결사 반대한다. 이번 공연의 코르데는 그나마 좀 덜하지만 코르데에 의한 마라의 살해에 성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풍겨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 시몬느가 싫어하는 걸 이해할 수 있겠더라. 쿠울미에의 부인은 나폴레옹 시대와 황제에 대한 충성을 외치는 여자이지만 사드가 채찍을 맞을 때 홀려서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다가 계단 중간쯤에서 정신차리고 다시 올라가 남편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한가하고 부유한 부인네가 육체과 폭력을 말하는 나쁜 귀족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거지. 쿠울미에의 딸은 젊고 어려서 집단의 열기에 쉽게 매혹되는 듯이 보였다. 마라가 혁명을 말할 때 아예 계단 밑 무대까지 내려와 무릎 꿇더라. 역시 제약이 적은 젊은 아가씨라 어머니보다 행동력이 있구나. <- 어이
그리고 눈에 확 들어오는 배역은 아코디언/전도사.
극중극의 아코디언은 마라를 둘러싸고 혁명의 노래를 부르지만 극의 전도사는 사드를 졸졸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극중극에 몰입하지 않았을 때의 전도사는 사드 근처에 앉아서 군중들과 마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의 그는 그다지 미쳐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극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전도사의 광기가 드러난 장면이다. 13장 마라의 예배 직후, 교회의 타락과 착취를 말하는 마라에게 자극 받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상황을 일으키는 전도사 말이다. 그는 아마도 썩어빠진 종교에 대한 회의와 지독하게도 끔찍한 사람들의 현실 속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다가 미쳐버린 종교인이었을 것이다. 14장 유감스러운 돌발상황. 사탄에게 바치는 주기도문을 외우고 난 그는 성화의 한 장면처럼,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체처럼 축 늘어져 환자들에게 안기고 둘러싸여 보호 받는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알려주었듯 전도사는 사탄에게 바치는 기도문을 알려주었으니 이 둘은 동급인가. 여전히 강렬하긴 하지만 미쳤다기 보다는 눈빛이 슬퍼보였다. 게다가 점점 더 예수에 가까운 자세로 환자들에게 안긴다. 흐트러진 머리와 수염, 꺾여진 고개, 축 늘어진 몸과 감은 두 눈. 뒤에서 가슴을 끌어안은 환자의 손, 몸을 다독거리는 환자의 손, 다리를 붙들고 있는 환자의 손. 바래고 갈라지고 낡은 성화의 느낌…….
15장 사드가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말할 때 죽은 듯이 누워있던 전도사가 자신을 안고 있던 손을 물어뜯고 뛰쳐나온다. "미친 짐승!! 미친 짐승!!! 인간이란 미친 짐승이야!"
그 광기 어린 모습이 아까 환자들에게 안겨있는 포즈와 연결되면서 뭐랄까…… 사탄인지 신인지 알 수 없는, 최소한 사람은 아닌 묘한 물건이 되어있는 것 같아서.
역자는 다르고 강렬함은 좀 줄어들지만 89년 판본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가지고있는대본이이것뿐이다ㅠㅠ)
ㅡ (재빨리 전면으로 뛰어나오며) 미친 짐승이야, 인간이란 미친 짐승이라니까!! 나도 몇 쳔 년 살아왔는데 얼마나 사람을 죽였는지 몰라. 아마 수백만 명은 될 걸. 이 땅 어디에 밑거름은 잘 되었을 거야. 죽은 사람들의 내장이 썩어 문드러져 진득거리는 죽 같았으니까. 거름은 틀림없이 잘 되었겠지. 몇몇 살아남은 자들은 시체가 썩어 질퍽거리는 늪 위로 걷는다. 우리 발 아래 걸음걸음마다 그 아래 썩어 문드러져 가는 뼈다귀와 재와 헝클어진 머리카락, 부러진 이빨, 빠개진 두개골. 미친 짐승이야, 난 미친 짐승이라니까! ㅡ
강렬하고 충격적인 대사가 무대를 기어다니고 뛰어다니고 자신을 학대하는 전도사의 몸짓까지 더해져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대사가 아마도 저 부분까지 일거다.
뒤의 대사까지 들어갔다면 저 광인은 정말 사람이 아닌 그 후의 무엇인가를 예비하는 '그 어떤 것'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그런 느낌은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세종에서의 전도사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냥 종교에 빠졌다가 미친 전도사 정도일 거다.
벗은 채로 달랑 들려나가서 한참 지나면 의식 없는 그가 끌려서 돌아온다. 약을 맞았던가 매를 맞았던가 둘 중의 하나겠지. 탈진할 때까지 버럭거리며 발광하는 꼴을 그들이 봐 줬을 리가 없으니까. 그는 제 자리에 앉혀지고 손에는 아코디언이 들려진다. 여전히 의식이 없지만 조금씩 천천히 정신이 돌아오는 그는 흥분한 군중이 노래할 떄 아직 혼미한 정신으로 박자를 맞춰 보려 애쓴다. 군중들 사이로 천천히 다가가 멍하니 엇박을 치고 있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방싯) 온전히 정신이 든 건 아마 채찍을 맞은 사드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혁명에 대해 말하며 코르데의 채찍을 맞는 사드를 진지하게 바라보다가 사드가 자리로 돌아갈 때 배경음악을 깔아주며 조르륵 따라가서 사드 발치의 계단에 앉는다. 대부분의 대사가 삭제되었지만 이 장면에서 사드는 그가 혁명에서 돌아서게 된 이유, 혁명의 허상을 보게 된 이야기를 한다. 사드의 대사를 들으며 전도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종교에 대한 전도사의 입장은 아마도 혁명에 대한 사드의 입장과 그리 다르지 않을 듯 싶다. 그러기에 사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다른 환자들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보여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전도사는 수녀들을 강간하지 않고 여환자들에게 다가가지도 않는다. 그는 쿠울미에를 살해하고 나폴레옹의 초상에 물건들을 집어던진다. 요양원에서 신적인 존재인 원장과 당시의 사회에서 신적인 존재인 황제에게 반항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신을 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닌가.
환자들의 병명과 직업, 극과 극중극에서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꽤 함의는 있을 것 같다만 굳이 그걸 확인하러 가고 싶지는 않고 사실 그걸 보려고 해도 대부분 마라, 사드와 전도사에게 눈길을 빼앗겨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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